"타격이 타이밍이라면 투구는 그 타이밍을 빼앗는 것이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왼손 투수 워렌 스판이 남긴 야구 격언이다. 한화 새 외국인 투수 카를로스 비야누에바(34)는 KBO리그 개막 데뷔전에서 왜 메이저리그에서 최근 10년간 풀타임으로 롱런했는지 보여줬다.
비야누에바는 지난달 31일 잠실 개막전에서 우승팀 두산을 상대로 6이닝 1피안타 2사구 6탈삼진 2실점으로 호투했다. 2실점 모두 수비 실책에 따른 비자책점으로 1피안타 무자책점 역투. 한화가 0-3으로 지며 패전투수가 됐지만 꽤나 인상적인 데뷔전이었다.
이날 총 89개 공을 던진 비야누에바는 직구 37개(138~145km), 투심 12개(136~140km) 외에 슬라이더 18개(123~135km), 체인지업 14개(126~132km), 커브 8개(108~122km)를 구사했다. 직구 구속은 대부분 140km대 초반으로 빠르지 않았지만 변화구 제구가 자유자재로 이뤄졌다.
두산 타자들로 하여금 헛스윙을 15번이나 뺏어낼 만큼 변화구의 꺾이는 각이 예리했다. 여기에 몸에 맞는 볼 2개가 나오긴 했지만 우타자 몸쪽 낮게 꽂아넣을 수 있는 제구도 인상적이었다. "파워피처는 아니지만 4가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던진다. 카운트가 몰렸을 때도 변화구로 스트라이크 잡을 수 있는 투수"라던 비야누에바 자신의 소개 그대로였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무기, 변칙 투구가 있었다. 1회 닉 에반스에게 7구째를 던질 때 키킹하는 왼 다리의 무릎을 구부리지 않고 앞으로 내딛었다. 일종의 기습 투구. 슬라이더에 타이밍을 빼앗긴 에반스는 3루 땅볼 아웃됐다. 이미 지난 25일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에서 SK 최정 상대로 선보인 변칙 투구로 메이저리그 때부터 종종 해왔다.
3회 2사 3루 위기에도 비야누에바는 오재원을 변칙 투구로 삼진 잡았다. 이번엔 반대로 왼 다리를 들어올린 채 한 템포 쉬어가며 뜸을 들인 뒤 몸쪽 직구로 루킹 삼진 돌려세웠다. 구속은 140km였지만 그 어떤 직구보다도 위력적이었다. 4회에도 김재환에게 2구째 빠른 변칙 투구로 혼란을 줬다. 처음 보는 비야누에바의 타이밍 싸움에 두산 타자들도 당황해했다.
하지만 아직 비야누에바는 감춰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시속 100km 미만 초슬로 커브, '이퓨스볼'이 바로 그것이다. 개막전에는 이 공을 던지지 않았다. 비야누에바는 "아주 아주 느린 커브볼이 있다. 가끔 빠른 공 타이밍에 던져주면 타자들의 밸런스를 무너뜨릴 수 있다"며 "한국에서도 계속 던질 것이다"고 자신했다.
변칙 투구에 이어 또 하나의 무기를 감춰뒀다. 비록 개막전 불운의 패전 멍에를 썼지만 벌써부터 비야누에바의 다음 등판이 기다려진다. /waw@osen.co.kr
[사진] 잠실=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