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투수의 가치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KBO리그에서 불펜진이 지니는 중요도는 부문별로 따져 봐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 특히 뒷문을 단단히 봉쇄해야 하는 확실한 마무리 투수, ‘클로저’에 대한 가치는 이제 평가 절하되지 않는다. 단순히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는 역할을 떠나 팀 투수진의 근간이 되는 보직이다.
마무리 투수에게 필요한 덕목은 타자들을 언제든지 삼진으로 잡아낼 수 있는 구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과 담대한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이들에 대한 감독들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 자리이기에 신뢰를 보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팀의 승패를 뒤바꾸는 보직이기도 하다.
10개 구단 사령탑들은 모두 마무리 투수들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 어린 시선도 거둘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신뢰와 걱정이 공존하는 자리가 바로 마무리 투수다. 10인의 마무리 투수들에 대한 고민은 정말 없을까.
▲ 반짝 활약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때
넥센 히어로즈는 손승락이 FA(프리에이전트) 자격을 얻어 롯데로 떠나며 마무리 공백기를 가지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자리를 손승락보다 더 완벽하게 틀어막은 선수가 생겼다. ‘만년 유망주’였던 김세현이었다. 김세현은 지난해 36세이브로 세이브왕 자리에 올랐다. 여러 보직을 전전하다 풀타임 마무리 첫 해에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150km가 넘는 빠른공의 구위를 선보였다. 올해 역시 마무리 투수는 김세현. 고민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한 시즌 반짝이는 성적을 기록했다는 것이 오히려 불안요소다. 단순히 ‘플루크 시즌’이 아니었음을 확실하게 증명해야 한다.
이젠 삼성 불펜진의 에이스로 거듭난 심창민도 마찬가지다. 과거 주요 선수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팀을 이탈하자 심창민은 팀의 가장 믿음직스러운 투수가 됐다. 올해도 김한수 감독의 신뢰를 받으며 사실상 마무리 투수로 낙점이 됐다. 지난해 25세이브나 달성했는데, 역시 이를 꾸준하게 이어갈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 반등 절실해진 이들의 자존심 회복?
KIA 타이거즈 임창용의 ‘뱀직구’는 여전하다. 마무리 투수로 경험은 두 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지난해 해외 원정 도박 파문으로 시즌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일까. 15세이브를 거뒀지만 평균자책점은 4.37로 높았다. 이닝 당 출루 허용율(WHIP) 역시 1.57에 달했다. 한승혁이라는 예비 후보가 있지만 임창용의 존재감이 다시금 발휘되어야 할 시즌이다.
5년 연속 20세이브에 도달했지만 지난해 60억 원이라는 FA 금액에 대한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한 롯데 손승락이다. 과거의 손승락은 위기를 맞이해도 이를 끈질기게 넘어갔지만, 현재의 손승락은 쉽게 압도할 수 없는 투수가 됐다. 평균자책점은 4.26으로 역시 높다. FA 계약에 대한 부담감이 성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마무리 투수 보직에 애정을 가진 그에게 올해는 구겨진 자존심을 펴는 시즌이 돼야 한다.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패는 ‘판타스틱4’의 선발진의 힘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두산은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었는데, 마무리 이현승의 컨디션 난조가 이유였다. 25세이브에 평균자책점은 4.84다. 마땅한 불펜 자원도 더 이상 없는 가운데, 김태형 감독의 뚝심이 지난해와 비슷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 ‘뉴 페이스’의 등장과 어쩔 수 없는 결단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마무리 투수를 교체했다. 베테랑 좌완 박희수에서 영건 우완 서진용으로 바꿨다. 140km 중반대의 묵직한 빠른공과 씩씩한 투구가 힐만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패기 하나만큼은 힐만 감독도 인정을 했고 SK 스프링캠프 수확이었다. 박희수가 부상은 아니지만 결국 서진용의 구위가 마무리 투수로 활용할 정도로 손색없다는 의미였다. 아직 세이브를 한 개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의 경험은 관건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SK가 마무리 투수 교체를 진행했다면 LG는 임정우의 어깨 부상 악재로 어쩔 수 없이 마무리 투수 구도에 혼란이 생겼다. 양상문 감독은 ‘집단 마무리 체제’로 임정우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보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 확실한 마무리 투수? 생각하기 나름
NC 다이노스는 임창민에게 최근 두 시즌 마무리 투수를 맡겼다. 임창민은 주어진 역할을 곧 잘 해냈다. 2015년 31세이브, 2016년 26세이브를 거두며 NC의 확고부동한 마무리 투수임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확실한 상황이 지속될 지는 지난해 막판 모습이 걸린다. 임창민은 지난해 막판 마무리 투수에서 보직을 옮겨 중간 계투로 뛰기도 했다.
한화 이글스 정우람도 지난해 잦은 등판에도 16세이브 평균자책점 3.33을 기록했다. 그러나 언제나 벌떼 마운드 체제를 운영하는 김성근 감독에게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은 구상에 없을 지도 모른다. 정우람의 등판 시기는 수시로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우람이 뒷문에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화에는 큰 힘이 된다.
kt 위즈 김재윤도 묵직한 돌직구를 앞세워 지난해 풀타임 마무리 투수를 소화했다. kt 선수단 내에서도 신뢰는 대단하다. 그러나 역시 일천한 경험이 문제다. 마무리 투수로 김재윤만한 적격의 자원도 없지만 장시환, 조무근, 엄상백 등 대체 자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확고부동하다고 볼 수 없는 kt 뒷문 현황이다. /jhrae@osen.co.kr
[사진] 김세현(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임창용-이현승-심창민-손승락-김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