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희(54) 흥국생명 감독의 우승 도전은 한 시즌 뒤로 미뤄졌다. 하지만 분명 희망을 보여준 시즌이었다.
흥국생명은 30일 화성 실내체육관서 열린 IBK기업은행과 '2016-2017 NH농협 V-리그' 챔피언결정 4차전을 세트 스코어 1-3로 패했다. 앞선 세 경기에서 1승2패로 코너에 몰려 있던 흥국생명은 이날 패배로 왕좌를 IBK기업은행에 내주게 됐다.
박미희 감독은 2014-2015시즌을 앞두고 '꼴찌' 흥국생명의 지휘봉을 잡았다. 여성 감독으로는 2010-2011시즌 조혜정 감독(당시 GS칼텍스) 이후 두 번째. 숱한 제의를 고사해왔지만 흥국생명의 러브콜을 받아들이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박미희 감독의 색깔은 다소 특별했다. 박 감독은 온화한 '엄마 리더십'으로 눈길을 끌었다. 최하위에 처지며 패배의식이 퍼져있던 흥국생명에는 가장 필요한 리더십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박 감독 부임 첫 해, 흥국생명은 '봄 배구' 진출에 실패했지만 5할 승률에 승점 45점을 올리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전년도 7승23패 승점 19점에 그쳤던 팀의 반전이었다. 2년차에는 3위로 '봄 배구' 맛을 보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부임 3년차인 이번 시즌, 드디어 그 결실을 맺었다. 흥국생명은 6라운드 한 경기를 남겨두고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었다. 당시 박미희 감독은 눈물을 흘리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 1등 감독 만들어줘 고맙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여성 사령탑이 정규리그 1위에 오른 건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대기록. 그러나 박 감독은 "여성 감독이라 특별한 시선은 원하지 않는다. 그냥 감독, 지도자 중 하나로 봐달라"라고 밝혔다. 이어 "정규리그 우승으로 '여성 지도자는 안 된다'는 편견을 털어버린 것 같다"고 밝혔다.
챔피언결정전은 '흥국생명의 체력과 IBK기업은행의 큰 경기 경험'이 정면충돌할 것으로 전망됐다. 흥국생명은 1차전을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체력 우위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러나 2~3차전, 분위기가 달라졌다. 매 경기 1세트를 따냈지만 세트를 거듭할수록 무너지는 모습. IBK기업은행의 경험이 흥국생명의 체력을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박미희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경기 전후 인터뷰마다 "선수들이 잘해주고 있다. 이번 챔피언결정전 경험이 개개인에게 도움 될 것이다. 선수들을 믿는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꺼냈다. 1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챔피언결정전이다. 너희들은 이미 그 자체로 특별하다"라고 남긴 말은 팬들에게 감동을 안겨줬다.
4차전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박 감독은 "이 경기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선수들이 쫓길 수 있다"라며 "부족한 면을 채우는 데 집중하겠다"라고 밝혔다.
4차전, 세트 스코어 1-3 패배로 박미희 감독의 믿음은 올 시즌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러나 흥국생명의 다음 시즌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박미희 감독의 '엄마 리더십'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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