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디슨 리쉘(24)에게 거짓말쟁이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의 이야기다.
IBK기업은행은 30일 화성 실내체육관서 열린 '2016-2017 NH농협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 4차전을 세트 스코어 3-1으로 승리하며 왕좌에 올랐다.
올 시즌을 앞둔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리쉘 때문이었다. 리쉘의 신장은 180cm로 올 시즌 V-리그 여자부 외국인 선수 중 최단신이다. 자연히 트라이아웃 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며 가장 늦게 지명됐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은 "우리 지명순위가 가장 낮았다"라며 "리쉘의 신장이 작다보니 걱정이 많았다"라고 당시를 추억했다. 그러나 리쉘은 742점(공격 성공률 44.19%)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였다. 득점은 리그 4위였지만 공격 성공률은 전체 1위로 순도높았다. 서브 에이스와 디그, 리시브 모두 외국인 선수 중 최고였다. 리쉘이 밀렸던 부분은 블로킹 하나뿐. 팀의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하지만 큰 경기에 들어가자 그 장점을 잃었다. 이 감독은 챔피언결정 1차전까지만 해도 리쉘의 플레이를 아쉬워했다. 당시 리쉘은 28득점을 올렸지만 공격 성공률이 38.36%에 그쳤다. 이정철 감독은 "주포에게 세트가 올라갔을 때 분위기를 가져와줘야 한다. 여태 잘해줬는데 큰 경기에 들어가니 감이 떨어졌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체력적 문제도 없었을 텐데 답답했다. 5세트도 리쉘이 잘해줬다면 듀스까지는 갔을 것이다"라며 강도높게 질책했다.
그러나 리쉘은 챔피언결정 2차전을 기해서 살아났다. 2차전 33점(공격 성공률 52.54%)을 올린 리쉘은 3차전에서도 42점(공격 성공률 44.32%)로 펄펄 날았다. 오죽하면 '적장'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조차 "리쉘의 체력만큼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라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 감독도 4차전을 앞두고 "플레이오프(PO) 때부터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그런데 그걸 털어내고 또 이렇게 활약해주니 팀에 큰 보탬이 된다"라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4차전에서도 마찬가지. 특히 승부처에서 활약이 빛났다. 이정철 감독은 경기 전 “초반부터 리쉘을 적극 활용할 것이다”라고 예고했다. 1세트 공격 점유율이 49.06%였지만 지치지 않고 긴 랠리마다 해결사를 자처했다.
이정철 감독은 4차전에 앞서 '팀 내 MVP(최우수선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주저 없이 리쉘의 이름을 댔다. 이 감독은 "5라운드 전승으로 마칠 때 내심 리쉘이 MVP로 선정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이)고은이가 받았다"라며 "아무래도 신장이나 화려함 면에서 눈에 확 띄는 선수가 아니라 그랬던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정철 감독은 평소 리쉘에게 "이번 라운드 MVP는 네가 받을 거다"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리쉘에게 유독 상복이 따르지 않았다. 이 감독은 취재진에게 "졸지에 거짓말쟁이가 됐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한 시즌 농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챔피언결정전에서 리쉘의 가치는 빛났다. 리쉘은 챔피언결정전 MVP 투표 결과 총 29표 중 21표를 휩쓸었다. 정규시즌 매 라운드 MVP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가장 높은 곳에서 MVP에 오른 것. 트라이아웃 당시만 해도 미운오리가 될 뻔했던 리쉘이 화려한 백조로 날아오른 순간이었다. /ing@osen.co.kr
[사진] 화성=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