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리그에서 갑자기 ‘강속구’가 주목받고 있다. 젊은 피들의 생생한 어깨에서 역동적인 구속이 찍히고 있다. 구속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원초적인 힘에 팬들의 기대도 커져가고 있다. 어쨌든 투수의 가장 큰 무기이자, 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빠른 공이기 때문이다.
전지훈련부터 빠른 공으로 주목받던 한승혁(24·KIA)과 이동원(24·두산)은 15일 시범경기 맞대결에서 모처럼 강속구의 향연을 펼쳤다. 한승혁은 최고 156㎞, 이동원은 최고 157㎞를 던졌다. 물론 구속과 경기 결과는 별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자치에 팬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는 것은, KBO 리그에서 ‘스피드 경쟁’ 자체가 벌어진 것이 상당히 오래간만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메이저리그(MLB)의 경우는 장기적 그래프를 봤을 때 평균구속이 점점 오르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100마일(161㎞)의 공을 던지는 선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는 추세다. 신체적 조건의 성장은 물론, 트레이닝 기법이 발달과 효율적인 투구수 관리 등도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KBO 리그는 선수들의 구속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우려를 모으기도 했다. 오히려 과거보다 위력적인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들이 줄어들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이러한 세계수준과의 괴리감은 이번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고교 시절의 혹사, 체계적이지 못한 프로의 투수 육성 등이 주원인으로 뽑힌다. 그러나 기대를 걸 만한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20대 후반에 이르면 모든 신체적 성장은 다 끝났다고 봐야 한다. 가뜩이나 선천적인 재능에 영향을 받는 것이 구속인데, 그 나이에 들어 획기적으로 구속이 올라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렇다면 20대 중반 이하, 지난해 기준 만 25세 이하 선수를 한정으로 했을 때 ‘파이어볼러’의 가능성을 지닌 선수들은 누구였을까. KBO 공식기록업체 ‘스포츠투아이’의 통계를 보면 기대를 걸 만한 몇몇 선수들이 보인다.
지난해 기준, 만 25세 이하 선수 기준으로 패스트볼 평균구속이 가장 빨랐던 선수는 역시 한승혁이었다. 평균 148.98㎞, 즉 평균 149㎞를 던졌다. 올해는 평균 150㎞ 이상을 기대할 수도 있다. 두 가지 이유다. 우선 기술적으로 팔스윙이 짧아지면서도 간결한 동작에서 더 강한 공을 던지고 있다. 두 번째는 몸 상태다. 한승혁은 “지난 2년간은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는데 올해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감을 보여주고 있다.
2위는 김택형(21·넥센)으로 147.95㎞였다. 구속의 성장세는 리그에서 으뜸이다. 프로 입단 당시만 해도 패스트볼 구속이 130㎞대 후반에 머물던 김택형이다. 그러나 프로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체격이 좋아졌고 구속이 점차 늘어 지난해에는 최고 150㎞를 던졌다. 김택형은 아직 만 21세에 불과하다. 지금의 성장세라면 ‘평균 150㎞’를 기대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후보다.
3위는 역시 프로 입단 후 파이어볼러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는 안상빈(22·kt)으로 평균 147.09㎞가 찍혔다. 체격 조건이 좋은 선수라 힘을 쓰는 방법을 더 터득할 수 있다면 지금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는 선수로 뽑힌다. 안상빈은 사이드암이라는 특징도 있다. 150㎞를 넘나드는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4위는 서진용(25·SK)으로 146.64㎞였다. 강력한 패스트볼과 포크볼의 조합을 인정받는 투수다. 이미 구단에서는 차기 마무리로 점찍었다. 서진용의 구속도 올해는 더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에는 토미존 서저리에서 복귀한 첫 해였다. 아직은 상처가 여물지 않았다. 보통 토미존을 받은 투수들은 복귀 2~3년차부터 이질감이 사라지며 팔에 완벽한 힘을 준다. 서진용은 상무 시절 150㎞를 넘는 공을 던졌다. 불펜투수인 만큼 역시 구속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외 이민호(24·NC·145.32㎞), 임정우(26·LG·144.76㎞), 장현식(22·NC·144.42㎞), 김승현(25·삼성·144.38㎞), 하영민(22·넥센·144.13㎞)도 평균 144㎞ 이상의 빠른 공을 던진 만 25세 이하의 투수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아직 몸이 완벽하게 자라지 않았거나, 더 발전할 여지가 있다. 구속은 그 발전 속에서 자연스레 오를 것이다.
여기에 이동원이라는 새 얼굴을 가세했고, 패스트볼의 위력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검증된 파이어볼러 조상우(23·넥센)가 팔꿈치 수술에서 건강히 돌아온다. 또한 이번 전지훈련에서는 전체적으로 각 구단의 어린 선수들의 구속이 많이 올라왔다는 평가가 더러 나온다. 그 발전 속에서 2~3년 뒤 새 얼굴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구속이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엄정욱(158㎞)이 가지고 있는 국내 투수 최고 구속 기록이 올해 경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런 타고난 어깨를 유지하면서 제구와 변화구, 경기운영능력 등을 갖춰 완성형 투수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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