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SK랩북] 불펜 포수의 노력, 캠프의 ‘알파’가 되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7.03.15 07: 00

선수들보다 최소 1시간 일찍 일과가 시작된다. 아직은 싸늘했던 새벽 공기를 벗 삼을 수밖에 없었다. 공을 나르고, 훈련 장비를 제대로 된 위치에 배치한다. 능숙한 손놀림에 한치의 오차도 없다. 이런 과정이 끝날 때쯤, 선수들은 하나둘씩 경기장에 도착한다. 깔끔하게 정리됐던 그라운드는 어느새 다시 흐트러진다.
그런 그라운드를 수시로 다잡느라 일과는 쉴 새가 없다. 장비를 정비하고, 코치들을 돕고, 투수들의 피칭이 시작되면 마스크를 쓰고 불펜에 앉는다. 간혹 선수들의 말동무나, 장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훈련이 끝나면 장비와 그라운드를 정비한다. 출근이 빨랐으면 퇴근도 빨라야 하는 것이 우리네 상식인데, 이들은 그런 평범한 상식과도 거리가 있다. 선수들이 숙소에 개인정비를 하고 저녁식사를 시작할 때 함께 테이블에 앉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일상은 캠프 기간 동안 계속된다.
캠프의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선수들이다. 그 주인공을 그림자처럼 돕는 이들을 많이 알려지지 않는다. 사실 구단 출입을 오래한 취재진도 구단 직원들의 도움 없이는 웬만하면 그들의 일상이나 배경을 알기 쉽지 않다. 워낙 음지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어서다. 하지만 그들이 없으면 캠프는 돌아가지 않는다. 적어도 캠프에서 선수들을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부르는 것은 틀렸다. 시작이 되는 ‘알파’는 따로 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만으로 나뉘어 진행된 SK의 1·2차 캠프도 수많은 음지의 조력자들이 있기에 무난히 마무리될 수 있었다. 그나마 1군은 선수들이 많은 만큼 지원 인원도 많았다. 선수당 프런트 비율이 2군보다는 훨씬 나았다. 반면 2군은 제한된 인원 속에서 불펜포수들과 지원 프런트들이 ‘1인2역’을 해야 했다. 선수들이 “대만 캠프의 최대 공신은 권누리 불펜포수”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권누리 불펜포수는 이번 대만 캠프의 살림꾼이었다. 허드렛일은 물론, 불펜에서 투수들의 공까지 받았다. 몸이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역시 인력 부족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는 다른 파트의 인원들까지 안쓰러워 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캠프 MVP는 임치영(투수)과 하성진(야수)이었지만 숨은 공신은 따로 있었다. 아니, 대놓고 빛나는 공신이었다.
허웅 퓨처스팀 플레잉코치는 “이점은 꼭 강조하고 싶다.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누리가 워낙 알아서 잘 하기 때문에 캠프 일정에 펑크가 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가장 일찍 나와서 저녁에 가장 늦게 들어간다. 성실함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인데 해병대 출신으로 워낙 성실하다. 여기에는 이제 누리보다 후배들도 있는데 후배들의 부탁도 잘 들어주는 편이다. 또 투수들의 공을 의욕적으로 많이 받아주려고 해 투수들에게 인기가 많다. (김)광현이도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재활로 참가, 이번 대만캠프 투수 중 최고령이었던 백인식도 “정말 고생을 많이 하는 후배다. 투수들의 공을 도맡아 받는데 투수들이 많이 고마워하고 또 다 좋아한다. 귀찮은 내색, 싫은 내색 한 번 안 하고 우리를 도와주는 점이 가장 고맙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투수들은 캠프가 끝나기 전 조금씩 돈을 모아 선물을 샀다. 대상은 코칭스태프가 아닌, 권누리 불펜포수였다. 선수들의 진심, 그리고 그 선수들의 진심을 끌어낸 당사자의 진심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시즌에 들어가서도 사실 근무여건이야 별로 나아질 것이 없다. 인원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이들의 고군분투 노력은 계속된다. “선수들보다 더 체력이 좋아야 버틸 수 있다”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뒤에서 노력하는 자들이 있기에 선수들이 뛸 근사한 무대가 만들어진다. SK의 이번 캠프 테마는 ‘따뜻한 울림, 뜨거운 질주’였다. 뒤에서 고생한 지원 인력들의 ‘따뜻한 울림’에, 이제는 선수들이 ‘뜨거운 질주’로 보답하는 일만이 남았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