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로 대표 되는 친환경차를 시승할 때는 왠지 소심해진다. 평소 폭발적인 퍼포먼스를 즐기는 이들도 이런 차를 몰게 되면 아주 조심스럽게 가속기를 밟게 된다. 운전자의 성격이 바뀐 건 아닐 게다. 운전 방식도 차의 특성에 맞춰야 한다는 일종의 예의에서 나오는 행동인 듯하다.
그러나 친환경차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인 운전만 해야 한다면 운전자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압박일 수 있다. 연비 신경 안 쓰고 확 밟고 싶을 때도 있기 마련이고, 살다 보면 좀 급하게 몰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럴 때 차는 어때야 할까? ‘난 타고난 친환경차’를 고집하며 끝까지 냉정을 잃지 말아야 할까?
운전자가 바라는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서 다양하게 반응해 주기를 바라는 요구가 더 현실적이다. 운전자의 필요는 머지않아 실제 차가 돼 거리를 달린다.
혼다에서 나온 ‘어코드 하이브리드’가 딱 그런 차다. 하이브리드 차의 선구자로 나서지는 않았지만 실차에 반영할 때는 가장 쓸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 냈다. ‘어코드’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은 선택부터가 그렇다. 지난 40년간 세계 160개 국에서 2,121만대 이상 팔린 어코드를 빼고 혼다 브랜드를 얘기할 수 없다.
혼다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에 하이브리드를 장착했다는 것은 어코드가 갖고 있는 기본 덕목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그 어떤 브랜드보다 변화에 신중한 혼다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팸플릿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연비, 파워, 친환경까지 동시에 달성한 압도적인 격차의 하이브리드 기술”이라고. ‘기술의 혼다’를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방금 팸플릿에 나온 문구, ‘연비’와 ‘파워’를 동시에 달성했다는 말에는 쉽게 고개가 끄덕거려지지 않는다. 두 개념은 너무나 상반되기 때문이다.
시승 첫날, 아니나다를까 가속 페달을 밟기가 조심스러웠다. 1.3kWh 용량의 배터리에서 만들어 내는 토크가 어느 정도일 지 가늠이 안 됐다. 운전자가 주저하니 차도 머뭇거렸다. “역시 하이브리드의 한계인가?”
오후에 차를 받아 아파트 주차장에서 재우고 출근 길에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밤 사이 이곳저곳을 싸돌아 다닌 덕분에 엑셀이 많이 익숙해졌다. 페달에 가해지는 첫 날의 조심성이 없어졌다. 어라, 차가 운전자를 다르게 대우하기 시작했다. 출발과 가속에서 조심스러움이 없어졌다. 하이브리드 차라는 사실을 잊어갔다. 그냥 배기량 2000cc짜리, 때로는 3,500cc짜리 가솔린 차였다. 부담없이 달리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시승차를 반납하기 전까지 154km를 달렸다. 계기반에 찍힌 트립 연비는 리터당 19.4km. 반납을 위해 주요소에서 빈 탱크를 채웠다. 8.3리터의 휘발유가 들어갔고, 리터당 2,048원짜리 주유소라 1만 7,000원을 지불했다. 시승차를 받았을 때 기름이 가득 들었다고 가정한다면 리터당 18.6km의 연비 계산이 나온다. 트립상 연비와 약간의 오차가 있다. 시승차를 처음 받을 때 연료탱크가 가득 차 있었다고 가정한 것이기 때문에 저 정도 오차는 용인 할 만하다.
연비를 보고 나니 ‘다시 하이브리드’로 마음이 돌아왔다. 혼다가 자랑한 ‘스포츠 하이브리드’라는 수식어가 실감이 났다.
소음진동 대책이나 편의사양, 각종 안전사양은 어코드 가솔린 모델과 궤를 같이 한다. 하이브리드 모델이라고 해서 디자인을 튀게 한 것도 없다. 2.4리터 또는 3.5리터 가솔린 엔진 차량과 별 차이 없이 어코드의 매력을 누리게 했다.
다만 연료비만 2,000cc 가솔린 하이브리드 기준으로 매기면 된다. 연간 자동차세도 2,000cc로 부과 되고, 신차를 구입할 때는 하이브리드 구매 보조금 100만 원을 지원 받는다. 공용주차장 50% 할인 혜택도 쏠쏠하다.
시스템 최대 출력 215마력에 공인 복합연비 19.3km/l의 효율은 상당히 ‘이상적’이다. 어코드 가솔린 모델과 비교하면 2.4리터가 최대출력 188마력, 최대토크 25.0kg.m/rpm이고 3.5리터가 최대출력 282마력, 최대토크 34.8 kg.m/rpm이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시스템 최대출력 215마력은 3.5리터 가솔린 엔진보다는 낮지만 2.4리터 엔진보다는 높다.
‘어코드 하이브리드’는 모터에서만 최대 184마력, 최대 32.1 kg.m/rpm의 토크가 나온다. 2000cc 가솔린엔진은 최대 145마력, 최대 17.8 kg.m/rpm의 토크를 낸다. 두 동력원이 만들어내는 시스템 최대 출력이 215마력이다.
연비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2.4 모델이 12.6km/l, 3.5 모델이 10.5 km/l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복합연비 19.3km/l의 절반 수준이다.
이 같은 조합을 만들어 낸 핵심기술은 하이브리드 전용엔진과 2개의 전기 모터다. 2.0리터 앳킨슨 사이클 DOHC i-VTEC 엔진에 주행용 모터 1개, 발전용 모터 1개가 달렸다. 주행용 모터는 출발 후부터 크루즈가 가능한 고속 구간까지 집중적으로 구실을 한다. 전기 모터의 뛰어난 응답성을 바탕으로 고출력과 높은 토크를 발휘한다.
발전용 모터는 엔진 동력에 의해 가동 되며 주행용 모터로 전원을 공급하거나 배터리를 충전하는 일을 담당한다. 제동시 회생 되는 에너지도 배터리로 차곡차곡 쌓인다.
크루즈가 가능한 일정 고속 수위에 오르면 가장 효율이 좋은 가솔린 엔진만 구동에 개입한다. 이 과정에는 ‘엔진 직결 클러치’가 작동한다. 엔진의 출력이 바퀴와 직결 되면 수동 변속기의 톱 기어에 상응하는 기어비가 설정 돼 고속 주행에서 높은 연료 효율을 보인다. 이 때 주행용 모터는 추가 가속이 필요한 상황에만 개입한다.
단계별로 작용하는 다양한 에너지원은 ‘어코드 하이브리드’로 하여금 ‘연비와 파워’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게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파워를 충분히 느끼기 위해 24시간의 적응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가격은 3.4리터 모델(4,260만 원)에 맞춰져 있다. 어코드 하이브리드의 판매가는 4,320만 원(부가세 포함)이다. 여기에 각종 혜택이 가해진다. /100c@osen.co.kr
[사진] 혼다 어코드 하이브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