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가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물을 안게 됐다. 우연 혹은 불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1라운드 3경기에서 확인한 건 우연과 불운이 아니었다. 한국 야구가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더 이상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영광의 순간은 없었다. 1회 대회에서의 3위, 2회 대회에서의 준우승은 과거의 추억에 불과했다. 3회 대회에서 당한 1라운드 탈락의 역사를 이번 대회에서도 똑같이 반복했다. 심지어 1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역대 최악의 성적을 냈다.
약점으로 여겨졌던 투수진은 물론 3할 타자들이 즐비한 타선까지 모두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은 이스라엘, 네덜란드를 상대로 1득점밖에 올리지 못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2점, 네덜란드에는 5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오승환 정도만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을 뿐이다.
'한 번은 실수'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한국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무너진 데 이어 최약체로 평가한 대만에도 연장 끝에 간신히 이겼다. 게다가 지난 대회에 이어 두 대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결과를 안게 됐다. 지금의 부진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고 현실인 셈이다.
그동안 한국은 야구 강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SBC)에서도 세계랭킹 3위에 올라있다. 그러나 야구 강국의 명성은 과거에 기댄 껍데기였고, 세계 랭킹은 허울뿐인 수식어에 불과했다. 한국에 패배한 네덜란드는 9위, 이스라엘은 41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구성하는 선수들의 실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지만 각자의 소속팀에서는 제 역할을 해주는 선수들이다. 하지만 승부욕과 투지 등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큰 차이가 나는 건 확실하다.
과거에도 한국을 이끌었던 김인식 감독은 "2006년 WBC에서 데릭 지터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말로만 들었던 메이저리거들을 보면서 '과연 저들과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한없이 높았던 선수들도 이길 수 있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의 스타 플레이어들을 순수한 실력만으로 이겼다는 뜻이 아니다. 강한 집념과 의지를 바탕으로 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 물론 이번 대회의 선수들이 노력을 안 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노력의 바탕이 된 선배들의 정신력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BC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좌절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당장 2018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 WSBC 프리미어 12, 2020 도쿄 올림픽 등 매년 중요한 국제 대회가 한국을 기다리고 있다.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철저한 반성, 그리고 문제점 보완 등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sportsh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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