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몰라봐서 미안하다' 3연승 이스라엘의 3박자 하모니
OSEN 한용섭 기자
발행 2017.03.09 15: 20

 "2017년 이스라엘은 마치 2006년 한국 대표팀을 보는 것 같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복병 정도로 치부했다. 그러나 이름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의 열정과 실력은 어느 팀에도 뒤지지 않았다. 아니 경기력은 네덜란드에도 뒤지지 않았다. 최고였다.
단기전에서 강팀이 약팀에 잡힐 수도 있다. 낯선 투수에 말리거나, 아직 선수들의 100% 몸 상태가 아닌 3월초, 이변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은 많다. 그럼에도 2017년 WBC 1라운드에서 보여준 이스라엘의 경기력은 단순히 이변, 돌풍으로만 볼 수는 없다.

2006년 제1회 WBC에서 메이저리거들이 대거 나선 미국, 멕시코를 연파하며 4강에 올랐던 한국 대표팀처럼 벤치의 지략과 전(前) 메이저리거 베테랑의 경험 그리고 확실한 동기부여로 인한 '원 팀'이라는 조직력 3박자가 최상의 하모니를 이뤘다.
# 웨인스타인 감독의 지략
사실 이스라엘은 다른 팀과는 정반대인 타자 12명, 투수 16명으로 꾸린 엔트리 구성으로 이상한 팀이라는 시선까지 받았다. 이유가 있었다. 월등한 투수는 없지만, 짧게 던지면서 자기 몫을 해내는 투수들의 물량공세가 가능했다. 대신 타자는 꼭 필요한 베스트 선수로만 꾸렸다.
제리 웨인스타인 감독의 선택이었다. 웨인스타인 감독은 콜로라도의 스카우팅&선수 개발 특별 보좌역을 맡고 있다. 그는 16명의 투수진에 대해 "단기전의 경우 투수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투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16명을 잘 활용한다면 특별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다"고 밝혔다.
뜻대로 됐다. 대표팀과의 첫 경기에서 적재적소에 투수 교체로 맥을 끊었다. 과감한 결단도 있었다. 마무리 조시 자이드를 8회부터 투입해 연장 10회까지 3이닝을 밀어 부쳤다. 한국전 승리를 위해 투구수 50개를 넘겨 4일을 쉬어도 좋다는 과감한 작전. 자이드는 마지막 타자 이대호를 삼진으로 잡으며 투구수 49개로 종료, 네덜란드와의 마지막 경기에도 등판할 수 있었다.
웨인스타인 감독은 9일 네덜란드전에는 선발 마키를 1이닝 만에 내리고, 매 이닝 다른 유형의 투수를 올려 네덜란드 강타선을 잘 막아냈다. 1이닝씩 끊어 던지기의 진수로 빅리거 타자 5명이 포진된 네덜란드 타선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전(前) 메이저리거의 경험
이스라엘 대표팀의 28명 엔트리에서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는 아무도 없다. 지난해 빅리그에서 뛴 선수는 타이 켈리(뉴욕 메츠), 아이크 데이비스(뉴욕 양키스) 2명 뿐이다. 하지만 과거 빅리그에서 뛴 경험을 지닌 베테랑이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다.
에이스 제이슨 마키는 ML 124승의 관록을 자랑했다. 한국전 선발로 나와 3이닝 무실점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마무리 자이드는 2013~14년 휴스턴에서 불펜 경험이 있다. 지난해 9월 영국과의 WBC 예선 최종전에서 마키는 선발로 나와 4이닝 퍼펙트, 자이드는 마무리로 3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하며 본선행 티켓의 주역이었다.
타선에서는 데이비스와 켈리를 비롯해 포수 라이언 라반웨이, 4번타자 네이트 프라이먼, 중견수 샘 펄드, 내외야 멀티 코디 데커가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다. 특히 라반웨이는 안정된 리드와 타자와 수싸움, 볼배합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데이비스는 2012년 32홈런을 치는 등 지난해 뉴욕 양키스에서 뛰며 ML 통산 81홈런을 기록한 파워 타자. 데이비스는 이번 대회 3경기 9타수 5안타(0.556) 2타점 3득점 4볼넷으로 맹활약 중이다.
이들이 투타에서 중심을 잡자, 싱글A와 더블A 위주인 마이너리거들은 자신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봄, 마이너리거들은 빨리 몸 상태를 끌어올릴 시기, 거침없이 자신있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 One Team & 조직력 & 동기부여
이스라엘은 자국내 등록선수가 800여명에 불과할 정도로 야구 불모지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 진출한 유대인들은 야구계에도 많이 있다. 이스라엘의 WBC 엔트리 28명 가운데 자국에서 태어난 선수는 우완 투수 슬로모 리페츠 밖에 없다. 나머지 27명은 모두 미국 태생으로 부모, 조부모 중에 유대인이 있어 이스라엘을 대표해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One Team'이 됐다. 지난해 본선 티켓을 따낸 후 10여명의 선수들은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데이비스는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들어온 이야기의 배경(성지)을 실제로 본 것이다. 어쩌면 이번 WBC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야구가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 선수단의 소망이다. 어쩌면 작은 변화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진 큰 목표"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선수들은 “이번 WBC는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여행이다”라고 공공연히 밝히며 '원 팀'이 됐다.
‘원 팀’ 정신은 독특한 마스코트와 함께 한다. 이스라엘 대표팀 벤치에는 유대인 전통 복장 차림의 마스코트 멘치(Mensch)가 함께 하고 있다. 멘치는 지난해 9월 WBC 예선부터 이스라엘 대표팀과 함께 하고 있다. 사상 첫 본선행을 이끈 부적 같은 존재다.
앞서 말했지만 28명 중 현재 빅리거는 없다. 대회가 끝나면 마이너리그로 돌아가거나, 캠프 초청 선수로 빅리그를 노크해야 하는 처지다. 스카우트들이 대거 모인 WBC는 그들의 쇼케이스이기도 하다. 데이비스는 이에 대해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많은 관중 앞에서 내 플레이를 보여주고, 기회를 누리는 것 모든 것이 좋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본선에 진출한 이스라엘 선수들은 그들의 뿌리로 인해 하나로 뭉쳤고, 확실한 동기부여를 갖고 뛰었다.  
WBC 대회를 앞두고 웨인스타인 감독은 "우리를 약체라고 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단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경기장에서 이를 증명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신들이 내뱉은 말을 실력으로 당당하게 증명해보였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orange@osen.co.kr
[사진] 고척=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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