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게 마지막 아냐, 마지막인데 이렇게 돼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김인식(70) 감독의 표정은 무거웠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6년 WBC, 2009년 WBC, 2015년 프리미어12까지 숱한 국제대회에서 영광의 순간을 이끈 김인식 감독이 스스로 먼저 '마지막'이란 단어를 꺼냈다.
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WBC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본 김 감독은 2021년 다음 WBC 대회 이야기가 나오자 "난 이게 마지막이다. 마지막인데 이렇게 돼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2회 WBC에서 일본과 결승전 연장에서 이치로에게 맞은 게 두고두고 생각이 났는데 이번 이스라엘전 패배가 그렇게 될 것 같다. 마지막 1점을 내지 못한 것이 계속 생각 날 것 같다. 아마 이스라엘전을 앞으로 못 잊을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은 6일 이스라엘전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1-2로 패했다. 첫 단추를 잘못 꿴 대표팀은 7일 네덜란드전에서 0-5 완봉패를 당하며 2연패했다. 안방에서 1라운드 조기 탈락이 확정적이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WBC 4강과 준우승,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을 이끌며 '국민감독' 명성을 쌓아온 김 감독에겐 씻을 수 없는 아픔이다.
김 감독은 "네덜란드와 실력 차이가 분명히 났다. 투수들의 볼 스피드도 6~7km 차이가 나더라. 네덜란드 투수들은 똑바로 오는 공이 없었다. 야수들도 수비가 대단했다. 공을 잡고서 바로 송구하는 동작이 자연스러웠다. 부러우면 우리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투수진의 힘이 떨어진 것도 인정했다. 김 감독은 "1회 대회 때는 박찬호 등 메이저리거들이 나서서 잘 던져줬고, 2회 대회에선 봉중근과 정현욱이 생각 외로 잘해줘 평균자책점이 낮았다"며 "지금은 전체적으로 투수들이 떨어져 있다. 스트라이크존도 문제가 있는데 앞으로 우리도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야 하지 않나 싶다"는 의견을 냈다.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에 질타가 쏟아지고 있지만, 김 감독은 사령탑으로서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선수들은 안 되는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모든 게 감독 책임이다.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김 감독의 말이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이날 네덜란드가 대만을 이기면 1라운드 탈락이 확정되지만, 9일 대만전을 잡고 최하위를 피해야 다음 대회 예선 라운드를 면제받을 수 있다. 김 감독은 "내일이 마지막 경기인데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픔이 있어도 우리가 해야 할 게 있다. 대만전에 모든 투수들을 쏟아부을 것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waw@osen.co.kr
[사진] 고척=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