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년 전부터 말했다. 한국야구는 위기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스프링캠프를 이끌고 있는 한화 김성근 감독은 지난 6일 WBC 대표팀의 첫 경기 이스라엘전을 지켜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붉게 상기된 김인식 감독의 얼굴을 보며 "나도 속이 쓰리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모든 화살은 김인식 감독에게 향할 것이다. 그 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내가 몇 년 전부터 '한국야구는 위기'라는 말을 계속 해왔다.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류현진과 김광현 이후로 제대로 된 투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이번 대표팀 멤버들을 보면 투수력이 모자라다. 컨디션도 좋지 않고, 김인식 감독도 마운드 운용이 정말 어려울 것이다. 단기전에서 투수 없이 싸우는 게 이렇게 힘들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류현진·김광현이 나온 베이징 올림픽 세대 이후로 투수들의 씨가 메말라간다. 김 감독은 "아마추어에서부터 변화구를 던지는 투수가 대부분이다. 리틀야구에서도 어린 아이들이 10개 중 8개는 변화구로 던진다. 직구는 1~2개밖에 안 던진다. 당장 경기는 이길지 몰라도 투수를 버리는 것이다"며 뿌리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수는 모자란데 KBO리그 경기수는 나날이 늘어가며 투수 황폐화를 야기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김 감독은 "5000개 이상 고교팀이 있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50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게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경기를 많이 하면 투수가 클 수 없다. 야구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크다"며 투수 육성의 환경을 문제삼았다.
선수들의 의식도 김 감독의 눈에는 성에 차지 않는다. "진정한 프로라고 할 만한 선수가 얼마나 되나. 지금 우리나라 야구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못할 때 창피함이 없다는 것이다. 왜 안 되는지 끝없이 연구해야 하는데 그런 의식이 없다. FA 선수들도 사명감이 모자라다. FA 하고 나서 배 나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 돈 많이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KBO리그는 지난해 역대 최다 833만9577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최고 스포츠 입지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그때마다 "관중수에 너무 도취돼 있다. 팬들이 만족할 만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르겠다. 팬들은 언제든 떠날 수 있다. 선수들부터 구단들까지 그런 의식들이 모자란 게 아닌가 싶다"고 경고장을 던졌다.
이번 WBC에서 한국야구의 안타까운 현실,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났다.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김성근 감독의 경고대로 한국야구 전체가 의식을 바꿔야 할 때가 왔다. 더 늦어지기 전에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각성해야 할 시기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