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WBC 대표팀이 2패로 1라운드 탈락 위기에 놓였다. 스포츠는 승패가 있기 마련,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기 내용이 실망이다. KBO리그의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모인 대표팀 타선은 6일 이스라엘, 7일 네덜란드와의 2경기 19이닝 동안 고작 1득점에 그쳤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먼저, 이스라엘과 네덜란드 투수들의 실력이 월등했을까. 일단 상대 선발은 수준급이었다. 이스라엘 선발 제이슨 마키는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의 경력, 주무기 커터와 안정된 제구력이 돋보였다. 이미 그의 장점을 알고 있었지만, 대표팀 타자들은 3이닝 동안 침묵했다.
네덜란드 선발은 릭 밴덴헐크. 150km 강속구를 지닌 그의 공을 치기 쉽지 않으리라 일찌감치 예상했다. 최고 153km의 구속에다 낮게 깔리는 힘있는 밴덴헐크의 직구를 3월초에 대표팀 타자들이 제대로 공략하기는 어려웠다. 4이닝 무실점.
문제는 그 다음 불펜 투수들에게도 무기력했다.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의 불펜은 마이너리그나 자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이스라엘 불펜의 쏘튼(트리플A), 블라이시(트리블A), 크라머(싱글A), 캐츠(하이싱글A), 자이드(전 메이저리거)가 줄줄이 나왔으나 서건창의 적시타로 1점을 뽑는데 그쳤다.
네덜란드의 밴덴헐크 다음으로 나온 마크웰(네덜란드리그), 마르티스(독립리그), 스타위프베르헨(네덜란드), 룩 판밀(네덜란드리그)은 자국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5회 무사 2루 외에는 이렇다할 찬스도 잡지 못한 채 무득점 굴욕을 당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이 시기(3월)에는 몸을 빨리 만드는 더블A 선수들이 무섭다. 네덜란드 투수들의 수준이 높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대표팀 타자들의 집단 부진이 설명되기는 어렵다.
타자의 타격감과 컨디션은 경기마다 오르락내리락 한다. 하지만 타선 전체가 슬럼프에 빠지기는 쉽지 않다. 2월 중순부터 한 달 가량 합숙과 평가전을 치른 대표팀 타자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월 11일 소집돼 12일 일본 오키나와로 합숙을 떠난 대표팀은 7차례 평가전을 치렀다. 일본에서 요미우리, 요코하마와 두 차례 연습경기를 가졌다. 23일 귀국 후에는 곧바로 훈련에 돌입, 25~26일 쿠바 2연전, 28일 호주와 평가전을 치렀다. 3월 2일 상무, 4일 경찰청 상대로 시범경기도 가졌다. 타자들이 투수의 빠른 공에 적응하는 시간이었지만, 제대로 쉬는 날 없이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대회 직전 대표팀의 전체적인 느낌은 '피곤'이었다. 개최지 장점이 있었지만, 제대로 쉬지 못했다. 실전이 타격감을 찾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충분한 휴식 없이 강행군이었다. 이러다보니 최형우 등 평가전에서 부진했던 타자들은 부담감까지 더해졌다.
이스라엘전에서 전체 7안타 1득점에 그쳤다. 톱타자 이용규, 중심타선의 김태균과 이대호가 무안타였다. 서건창(2번), 손아섭(5번), 민병헌(6번)이 나란히 2안타였다. 이스라엘전 1-1 동점이 된 1사 1,2루에서 김태균이 포수 파울플라이 아웃, 이대호가 1루수 파울플라이 아웃으로 물러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장면이었다.
네덜란드전은 6안타 무득점이었다. 멀티 히트 타자도 없었다. 이용규(1번), 이대호(4번), 손아섭(5번), 민병헌(6번), 박석민(7번)이 1안타씩 때렸다. 힘든 출루 속에서 병살타가 3차례나 나왔고, 9회 대타로 나온 최형우가 마지막 6번째 안타를 기록했다.
손아섭과 민병헌이 나란히 7타수 3안타(0.429)로 대표팀 내 가장 타율이 높으나, 5~6번에 나란히 배치된 두 선수가 연속 안타를 친 것은 한 번도 없다. 엇박자 안타였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타순 변화도 거의 하지 않고(부상으로 하위타순 조정) 선수들에게 믿음을 가졌지만, 타자들의 컨디션은 대회때까지 올라오지 않았다. /orang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