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지 않는 자메이카의 봅슬레이 대표팀이 보여준 아름다운 도전을 다룬 영화 ‘쿨 러닝’. 약체 히코리 고등학교 농구부의 극적인 우승 실화를 담은 농구 영화 ‘후지어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애너하임 마이티 덕스의 끈질긴 도전을 스크린으로 옮긴 ‘마이티 덕스’까지. 약체로 꼽히던 언더독의 반전은 언제나 팬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스라엘 WBC 대표팀이 그 뒤를 이을 기세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이스라엘 대표팀은 7일 고척스카이돔서 열린 본선 1라운드 A조 대만과 경기를 15-7로 승리했다. 1회 아이크 데이비스와 타일러 크리거가 각각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며 기선을 제압했고, 7회 타자일순하며 5득점 쐐기를 박았다. 전날(6일) 한국을 2-1로 꺾으며 이변을 일으킨 데 이어 2연승. 본선 2라운드 진출이 유력해졌다.
미 스포츠매체 ‘ESPN’은 6일 “이길 가능성이 절대 없어보여도 어떻게든 노력하는 언더독들은 늘 있었다”라며 자메이카 봅슬레이 대표팀, 히코리 고등학교 농구부 등의 사례를 들었다. 이어 이 매체는 “이스라엘 대표팀도 앞선 사례의 팀들과 마찬가지로 보여준 건 아무 것도 없다”라고 덧붙였다.
세계야구랭킹 41위 이스라엘은 이번 대회가 WBC 첫 출전이다. 세계야구랭킹 20위 밖의 팀이 본선에 오른 사례도 이스라엘이 처음이다. 그런 만큼 ‘개최국’ 한국을 꺾은 결과를 두고 파란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ESPN은 이스라엘의 반전에 주목했다. 이 매체가 꼽은 이스라엘의 강점은 정신력. 이스라엘은 ‘원 팀(One Team)’으로 똘똘 뭉쳐있다. 이스라엘 선수들은 “이번 WBC는 단순한 국제대회가 아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는 여행이다”라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이스라엘 선수단 28명 중 이스라엘 출신은 슐로모 리페츠(38) 한 명뿐이다. 나머지 27명의 선수들은 조부모의 국적까지 인정하는 대회 규정 덕에 출장한 미국 출신 선수들이다. 그러나 어느 팀보다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 몇몇은 지난해 이스라엘 현지로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리페츠는 “우리에게는 독특한 정체성이 있다. 그게 우리를 한 데로 뭉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경기를 하는 건 짜릿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10살 때부터 약 30년 간 야구를 했지만 국가대표는 처음이다. 그래서 국가를 대표하는 지금이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원 팀’ 정신은 독특한 마스코트에도 깃들어 있다. 이스라엘 대표팀 벤치에는 유대인 전통 복장 차림의 거대한 인형이 있다. 이 마스코트의 이름은 멘치(Mensch). 인형이지만 성인 남성 크기인 탓에 멀리서 보면 언뜻 선수단 중 한 명으로 생각하기 쉽다. 멘치는 지난해 9월 WBC 예선부터 이스라엘 대표팀과 함께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상 첫 본선행을 이끈 일종의 부적 같은 존재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물론 미국 내 유대인들도 대표팀에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의 1월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 대표팀의 도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헤딩 홈(heading home·집으로)’이라는 이름이다. 쿨 러닝과 후지어스 같은 내용으로 팬들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을 안겨줄 전망이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이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일 것 같다. /ing@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