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모 취중한담]‘하숙집 딸들’, ‘여배우들’의 ‘룸메이트’?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2.15 11: 04

[OSEN=유진모 칼럼]올해 예능왕국을 선언한 KBS2의 새 예능프로그램 ‘하숙집 딸들’이 14일 시작됐다. 심야편성치고는 그다지 서운하지 않은 5.4%의 시청률을 올리긴 했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그래도 시청자 반응은 호의적이다.
주인공은 미모의 네 딸 박시연 장신영 이다해 윤소이와 홀로 그녀들을 '지키는' 이미숙, 미숙의 남동생 이수근, 그리고 장기 하숙생 박수홍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하숙집을 운영하는 미숙은 딸들 때문에 하숙 문의가 쇄도하지만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만은 없는 상황. 그래서 지원자들의 습관 버릇 취향 등 모든 신변조사에 신중을 기한다. 결국 다섯 여자 모두에게 합격점을 받아야만 하숙생으로 입주할 수 있다.
이 기획의도는 첫 회라 그런지 아직 제 색깔을 발휘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매우 애매모호했다. 회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잡아간다면 큰 기대를 걸어봄직하다.

여배우들은 모두 예능 초보자. 그래선지 예능 첫 고정출연에 모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첫 회는 출연자들이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를 쌓으며 호흡을 맞추는 데 집중했다. 그건 이해가 가능하다. 문제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이었다.
7명은 하숙집 입주 전 이다해의 으리으리한 집에 모여 공식 첫 상견례를 했다. 여자 중 셋은 이혼(혹은 소송 중)했고, 둘은 아직 미혼이다보니 자연스레 결혼 육아 살림 혹은 연애 얘기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박시연은 이혼소송 중이라는 얘기를, 장신영은 11살 아들을 혼자 키우며 강경준과 공개연애 중이란 얘기를 각각 풀어놨다. 이미숙은 그녀들을 “미친 애들”이라고 표현했다. 이다해는 “첫 예능이지만 촬영하는 것 같지 않고 노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장신영은 “친구 집에 놀러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랬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방송공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효자상품이 아니라 그녀들의 표현대로 ‘그냥 노는’ 프로그램이었다. 전 국민을 상대로 수신료 정상화를 외치며 ‘여러분의 소중한 수신료로 운영되는 어쩌고’ 하는 공영방송사가 제몫을 하겠노라고 만들어낸 예능치곤 아직은 수준미달이었다.
고작 보여준다는 게 ‘몰래카메라’였다. 리더 격인 이미숙은 “우리가 보여줄 건 연기밖에 없다”며 제안해 지각한 윤소이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박시연은 박미선이, 이다해는 변다혜가, 윤소이는 문소이가 각각 본명이고 장신영은 아예 신자에서 개명한 사실을 공개했다.시청자가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어가는 포털사이트에서 그녀들의 이름 석 자만 치면 나오는 내용이다. 심지어 장신영은 빨간 내복을 입고 웃기겠다고 나섰다. 웃겼다.
2013년 1월 시작돼 2달도 채 못돼 슬그머니 사라진 MBC ‘토크클럽 배우들’이란 프로그램이 있었는지조차 시청자들은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황신혜 심혜진 예지원 송선미 신소율 고은아 등 다수의 여배우들을 전진배치해 별장 같은 곳에서 게스트를 맞는 토크쇼 형식이었지만 내용이 없었다.
같은 해 4월 강호동과 윤종신을 앞세워 거창하게 시작된 SBS ‘맨발의 친구들’은 멤버들을 베트남 등으로 내보내 자급자족하도록 ‘개고생’을 시키는 포맷으로 진행되더니 그게 안 먹히자 스타들의 집을 막무가내로 찾아가 ‘집밥’을 얻어먹는 형태로 바뀌었지만 역시 식상한 포맷이라 7개월을 채 못 넘기고 막을 내렸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여배우들’(2009)은 유명 패션월간지 화보촬영차 모인 6명의 스타 여배우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내용을 그리는 가운데 화려한 은막 뒤에 가려진 그녀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속사정 등을 보여주는 ‘몰래카메라’의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펼쳐져 한편에선 신선한 시도란 평가를 받았지만 관객 수 51만4000여 명으로 퇴장됐다.
2014년 5월 시작돼 딱 1년 만에 끝난 SBS ‘룸메이트’가 있었고, 케이블TV O’live ‘셰어하우스’도 있었다.
기획의도와 시놉시스가 확실하고 이미 4회까지 대본이 나와 있어 어느 정도 검증이 가능한 드라마와 달리 예능은 기획의도와 연출진, 그리고 고정출연자만으로 편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전점검이 덜 치밀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
더불어 제작진의 신선도와 시청률에 대한 고민 역시 충분히 이해는 된다. 이미 예능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지 오래됐기에 그만큼 상큼한 기획의도가 나오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하숙집 딸들’은 식상해도 지나치리만치 구태의연하다.
이미 ‘착한 예능’은 ‘무한도전’이 할 만큼 했기 때문에 쉽지 않다. 리얼리티관찰예능은 ‘1박2일’이 정점을 찍었다. 가요드라마예능은 ‘복면가왕’ 이상 나오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런닝맨’을 찍을 순 없다. 고민거리는 충분하지만 의도보단 시각이 그걸 해결하기 쉬울 수 있다는 걸 간과했다.
한 자리에 모이기 쉽지 않은 여배우들을 그러모았다. 이게 ‘여배우들’이나 ‘룸메이트’가 되지 않기 위해선 왜 하숙집을 설정한 것인지, 거기서 어떤 재미를 줄 것인지, 그 재미를 주는 과정에서 어떤 메시지와 공감대형성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것인지 확실한 목적과 주제의식이 있어야 했고, 왜 꼭 그 출연자들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존재해야 했다. 프로그램의 정체성과 고정출연자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출발이 잘못된 것이다.
‘흉내 내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룸메이트’는 지나치게 화려한 집안에 멤버들을 모아놓은 탓에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을 받긴 했지만 그나마 요즘 유행하는 셰어하우스가 도대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메시지는 던졌다.
‘이제 첫 횐데’라고 핑계를 댄다면 첫 회에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있는 욕, 없는 욕 먹어가며 안간힘을 쓰는 드라마 제작자들의 머리가 빈 것이다. 첫 회에 고작 보여준 게 낡고 낡은 신변잡기 털기나 몰래카메라 수준이라면 향후 기대할 건 ‘웃으면 복이 와요’수준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겉으로 드러나길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청렴하지 못해서 실망하지만 사실 국민들을 가장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정치인들의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됐기 때문이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하숙집딸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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