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의 합류는 롯데 구단에는 천군만마와 같다. 이대호가 합류하면서 팀 타선은 이전과 확연하게 다른 무게감을 가져다줬고, 선수단을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생겼다.
그러나 이대호 혼자서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가을야구로 다시 이끌 순 없다. 이대호 스스로도 이를 인정했다. 시즌을 길게 바라볼 수 있는 현장의 안목이 필요하다. 언제나 낙관할 수 없는 것이 KBO리그의 시즌이다. 긴 시즌을 무사히 보내기 위해선 예상치 못한 변수, 그리고 변수에 대처할 수 있는 다양한 플랜을 보유해야 한다. 지난해 롯데는 지난해 이 부분이 부족했다.
미국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원우 롯데 감독은 최근 "준비 부족도 있고, 안일하게 '생각대로 될 것이다'라고 확신한 것도 있었다. 한 시즌을 치러보니 생각보다 1년 동안 변수가 많이 생기더라. 부상, 부진도 있고. 백업도 충분히 만들지 못했다. 1년차 초보 감독으로 부족했다“며 지난 시즌을 돌아봤다. 결국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플랜 B, 플랜 C가 부족했다는 의미였다. 낙관론의 실패였다.
롯데는 지난해 시즌 초 계획했던 선발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송승준이 부상으로 빠졌고, 외국인 투수들도 부진의 늪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노경은을 데려왔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대체 선발들이 호투를 보였지만 일시적이었다. 불펜진에서도 윤길현과 손승락이 확실하게 뒷문을 틀어막지 못하면서 승리로 귀결되어야 할 경기들이 삐끗했다. 투수진의 계산이 확실하지 않았다. 야수진에서는 내야진의 줄부상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부상 선수들이 조금씩 빨리 그라운드로 돌아왔지만, 부실한 선수층은 여실히 드러났다. 또 강민호의 부상 시기와 롯데 추락의 시기가 맞물린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투타 모두 부실한 예비 플랜들은 시즌 내내 고전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다.
조원우 감독이 스스로 밝힌 것처럼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였기도 했고, 선수단 구성의 한계이기도 했다. 결국 조 감독은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구상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난 시즌이 끝난 뒤부터 올해 스프링캠프까지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투수진에서는 박세웅과 박진형, 박시영이 ‘플루크 시즌’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조 감독 역시 이들이 하루빨리 자리를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을 줄곧 드러냈다. 김유영과 차재용. 김원중 등 다른 영건들 역시 선발 혹은 불펜진에 언제든지 포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베테랑 투수들은 팀의 중심 역할과 팀의 위기를 이겨내게 해 줄 소방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 마운드의 무게 중심이 젊은 선수들에게 넘어간 상황이지만 노경은, 송승준, 강영식, 이명우, 이정민, 윤길현, 손승락의 베테랑 라인은 젊은 선수들이 흔들릴 때 다시금 팀을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조원우 감독 역시 “마운드에서 베테랑 선수들이 해줘야 한다”는 말로 이들의 역할을 축소시키지 않았다.
야수진 역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 내야진은 1루수를 제외하곤 모두 경쟁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2루가 주 포지션은 정훈은 3루 펑고도 받고 있고, 1루수였던 김상호도 3루에서 스스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유격수 자리엔 신본기가 주전을 노리고 있고, 기존 유격수였던 문규현은 내야 멀티 플레이어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외국인 선수 앤디 번즈가 2루와 3루 모두를 볼 수 있다는 것도 내야 구성이 다양해지는 긍정적인 요소다. 기본적으로 지난해보다 내야 포지션 당 2~3명의 1군 레귤러급 선수들 포진해 있다. 주전들이 정해지고 난 뒤에도 변수를 대처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불확실성은 당연히 감소할 수 있다.
포수진에서도 김사훈과 나종덕, 안중열의 성장과 경쟁의 시너지가 발휘되어야 한다. 강민호의 풀타임을 보좌하기 위한 이들의 역량 강화는 강민호 부재시 고전했던 지난해를 떠올렸을 때 내야진 경쟁력 강화보다 더 중요한 과제일 수도 있다.
롯데가 추구해야 할 ‘플랜의 다양성’은 결국 긴 시즌을 대비하는 예비 식량이다. 예비 식량의 효과적인 활용, 롯데의 가을야구를 좌우하는 열쇠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