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투수 김지용(29)은 곱상한 외모에 체구도 크지 않고 아담한 편이다. 그러나 그의 공은 묵직하고 예리하다. 슬라이더 하나는 일품이다. 지금의 그가 있게 만들어준 필살기다.
김지용은 지난해 LG 불펜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2010년 입단했으나 2015시즌에서야 패전조로 1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항상 자신은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시즌 중반부터 필승조로 도약한 그는 51경기에 출장해 63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3.57 3승4패 17홀드를 기록했다. 당당한 셋업맨 역할을 해냈다.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글렌데일의 LG 캠프에서 만난 김지용은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슬라이더와 배팅볼로 양상문 감독의 눈도장을 받은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직 가볍게 훈련하는 것 같다. 불펜 피칭은 언제쯤 하나.
"다음 턴에서 던진다. 12일 파파고로 이동한 후에 던질 것 같다. 작년에 많이 던진 투수들은 코치님이 배려해주셔서 조금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고 있다."
-스프링캠프가 3번째라고 했나. 지난해 큰 성과를 냈는데 올해 캠프는 좀 어떤가.
"올해까지 3년 연속이다. 준비하는 자세는 지난해와 달라진 건 없다. 조금 페이스를 천천히 올리는 것 외에는. 똑같이 경쟁한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지난해 잘 던졌기에)책임감도 조금 생긴 것 같다."
-2010년 입단했다. 첫 해 잠깐 던지고 2015년에서야 1군에 올라왔다. 빛을 보는데 오래 걸린 것 같은데.
"군대도 갔다오고 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기 보다는 아팠을 때 빼고는 야구는 즐겁게 해왔다. 2010년 입단하고, 2011년 어깨가 아파서 구속이 안 나와 2군에서 고생을 한 편이다. 2012년 군대 가서 2014년 복귀했다. 복귀 첫 해는 2군에서만 던졌다."
-2014년 시즌 후반 1군에 올라와 배팅볼을 던진 것을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사실 그때 자존심이 좀 상했다고 해야 하나. 2군에서만 던지다가 배팅볼 던지려 1군에 갔다. 하지만 반대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 더 열심히 던진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해 아시안게임 대표팀의 연습 파트너로 참가했다. 대표팀 상대로 공을 던지는 것을 양상문 감독님이 보시고, 내 공을 조금 더 보고 싶어서 1군에 올라와 배팅볼을 던지라고 한 거였다."
-양상문 감독이 그 때 슬라이더 하나 보고 '이 선수 될 수 있다'고 점찍었다더라.
"뒤에 들었다. 저를 좋게 봐주셨다는 것에 감사하다. 높게 평가해주셔서."
-당시에는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배팅볼 잘 던져서 기회를 잡은 것 아닐까.
"내 야구 인생의 변곡점이 된 셈이다. 그 기회가 아니었으면 (1군에 올라오는 시기가) 조금 더 걸렸을 수도..."
-자신의 슬라이더, 어느 정도라고 자신하는가. 우투수들의 슬라이더 중에서 꼽는다면.
"슬라이더 좋은 투수들 많다. 김광현, 우투수는 윤석민 등. 각자 주무기가 하나씩 있듯이 나는 슬라이더에 자신있다. 제구에 자신있고 각을 조금씩 다르게 조절한다. 횡으로 휜다거나, 종으로 떨어지는 게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고 본다.
대신 다른 변화구는 스플리터, 커브를 던질수는 있지만 어쩌다 던진다. 불펜으로 짧은 이닝을 던지기에 직구와 주무기 슬라이더로 상대하는 편이다."
-특별한 비법이 있는가.
"글쎄, 던지는 방법은 다들 비슷하다. 다만 손의 감각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 타고 난 선수들도 있다. 나는 대학 때부터 슬라이더를 많이 던지면서 감각적으로 내 것을 만든 것 같다. 소중한 자산이다. 이거 없으면 힘들다."
-지난해 초반에는 패전조로 시작해서 승리조까지 올라갔다. 어느 시점에서 자신감이 확 생겼나.
"자신은 원래 있었다. 1군에서 던질 기회가 별로 없었지만. 지는 상황에서 주로 던졌고. 2015년에도 경기 출장 기회가 적었다."
-지난해 코칭스태프가 자신을 기용하는 것이 달라졌구나. 중요한 순간에 나를 찾는구나 라고 느낀 시기가 있나.
"올스타 브레이크 끝나고. 후반기 첫 경기를 하는데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몸 풀라고 하더라. 넥센전이었다. 동점일 때 등판했는데, 1사 만루였다. 지는 상황이 아닌 중요한 상황에서 나가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볼넷, 안타 맞고 점수 주고 내려갔다. 당시 어깨 힘이 많이 들어갔다."
-중요한 시점에 기회를 줬는데 경기를 망친 셈이었다. 다시 기회가 안 올 것 같다고 실망하진 않았나.
"그런 생각은 안 하고, 계속 내 공을 자신있게 던지자 생각했다. 오히려 잘 됐다. 첫 경기를 망치고 나니 편하게 던지자 마음 먹었다. 그 이후로 잘 됐다. 결과적으로 첫 등판에 실패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한 시즌을 치르면서 패전조에서 셋업맨까지 올라간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특별히 좋아진 것은 없는데, 한 시즌을 치르면서 갑자기 공이 좋아진다는 것은 힘들지 않나. 내가 갖고 있는 것을 경기에서 긴장하거나 떨지 않고 다 보여줘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 같다.
중요한 순간에 위축되거나 긴장하면 자신의 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지 않나. 나는 처음이라 나에게는 기회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그냥 내 공을 던졌고, 결과가 좋았다."
-올해 목표라면.
"작년에 후반기부터 이기는 상황에서 나갔다. 올해는 시즌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역할을 해보고 싶다. (홀드 평균자책점 등) 숫자는 생각하지 않고 많은 경기에 나가서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 /orange@osen.co.kr
[사진] 글렌데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