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의 마지막 한국시리즈(2002년)를 뛴 경험이 있는 선수로는 박용택(38)과 이동현(34) 두 선수 뿐이다. 타자에서 박용택이라면 투수에서는 이동현이 가슴 아픈 LG의 흑역사를 '유이'하게 겪은 선수다. 박용택이 'LG의 심장'이라면 세 번이나 팔꿈치 수술을 한 이동현은 'LG의 인대'일거다.
8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글렌데일의 LG 캠프에서 만난 이동현은 "관심을 안 받는 것이 좋은데. 인터뷰를 오랜만에 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지난 2년은 부진했는데 지금은 잔부상 없이 컨디션이 좋다. 중간에서 좋은 선발들과 젊은 불펜들을 도와 강한 LG 마운드를 만들고 싶다"며 "15년 전 한국시리즈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주위에서 시간이 더 걸릴거라고 하지만 2년 내에 한국시리즈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해 맺은 FA 3년 계약이 끝나기 전에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뛰고 싶다는 희망으로 들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어제 휴식일이었는데 뭐 하고 보냈나.
"아직 시차 적응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냥 푹 쉬었다. 나는 미국이랑 잘 안 맞는 것 같다(웃음)"
-지금 컨디션은 어느 정도인가. 몸 상태는.
"예년에 비해 좋다. 겨울에 훈련하면서 작년 부족한 거 보강하고 준비를 잘 했다. 지난해 캠프 때는 무릎이 안 좋아 러닝과 피칭이 조금 부족했는데, 지금은 잔부상이 없다.
작년 시즌에 내전근, 왼 무릎, 팔꿈치 등이 안 좋았다. 후반기 안 좋아지면서 쉰 것이 도움이 된 거 같다. 팔꿈치는 캠프 초반에 고생하는 편인데, 올해는 수월하게 넘어가는 것 같다."
-차우찬이 가세하며 선발진이 많이 주목받는다. 불펜진이 조금 덜 주목받는데.
"소외감 같은 것은 없다. 원래 중간은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하게 하는 입장이다. 선발이 강해지면 중간 투수에게 좋은 일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선발진이 확고하게 틀을 잡은 경우가 LG에서 17년 뛰는 동안 처음이라고 본다.
선발진이 긴 이닝을 끌어주면 투수진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 불펜에선 지난해 지용, 정우가 좋은 성적을 냈다. 선발이 잘 하면 불펜이 체력을 비축하고 피로를 회복해서 다시 선발을 도와줄 수 있다. 주장 제국이가 매년 선발하고 불펜에게 얘기한다. 최대한 서로 돕자고 한다."
-감독이 봉중근 선수와 함께 구속이 빠르지 않더라도 경륜으로 타자를 잘 상대할거라 기대하더라.
"3번째 인대 수술하고 2010년부터 6년 정도 쉼없이 뛰었다. 기본적으로 데미지가 온다. 선발은 4일 휴식을 하면서 던지지만, 불펜은 매년 60경기 가까이 던진다. 피로가 쌓였다.
작년에도 시즌 초반에는 147km까지 던졌다. 부상을 당하면서 구속이 떨어졌지만. 시즌 후반 체력이 떨어지는 시기는 구속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포스트시즌에서 구속이 조금 적게 나왔다. 큰 경기에는 경험이 도움이 된다. 그런 부분을 감독님이 말씀하신 거 같다."
-그래도 강속구 투수로서 스피드 욕심이 나지 않는가.
"2015~16년 시즌 초반에 나 스스로 거만하게 만들었던 해였다. 슬로스타터였는데, 시범경기부터 스피드가 많이 나와 충분히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거만해졌다. 캠프 때를 믿고 했는데 결과는 최악의 시즌이었다. (2년 동안의 부진은) 2년간 휴식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좋은 계기가 올해가 될 것 같다. 예전 구속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올해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가.
"몇 년 전 LG 불펜이 나랑 원상이, 중근이 형이 중심일 때 강했다. 이제 내가 투수에서 2번째 나이 많더라. 지난해 FA 첫 해였는데 2017년~18년이 되어도 한결같구나 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다. 1군 엔트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것이 항상 변하지 않는 나의 목표였다. 올해도 마찬가지. 지용이가 좋은 모습이어서 뒤에서 도와주면 좋을 거 같다."
-지금 LG 선수단에서 2002년 한국시리즈를 뛴 유일한 투수 아닌가.
"2002년 KS 멤버는 박용택 선배와 나 둘이다. 내가 2001년 고졸 신인으로 들어와 연차수로는 LG에서 가장 많다. 올해 17년째다. KS는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다. KS까지 올라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선수로서 팬들에게 보답하는 것인데, 팬들에게 미안하고 아쉽고 그렇다. 지금이야 포스트시즌에 몇 번 올라왔지만...지금 선발이 좋아지고, 어린 선수들이 불펜에서 잘해주고, 어린 야수들도 많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KS를 가야 한다."
-언제쯤 다시 한국시리즈에 갈 수 있을 것 같나.
"작년에 우리 팀이 1994년 분위기가 난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초반 부진하자 괜히 말했다 싶었다. 그러나 후반기 반등으로 올라갔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994년 내가 선수가 아니고 학생 시절 팬이었지만 지금의 팀과 비슷했다고 생각된다. 빠르면 올해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내년, 2년 내에는 한국시리즈에 갈 수 있다고 본다."
-LG 선수들의 열정이 느껴지고, 내부 결속이 달라져 보인다.
"제국이가 주장을 맡아 선수들에게 맡기고, 스스로 찾게끔 분위기를 끌고 간다. 과거 이광환 감독님이 자율야구를 주장했는데, 지금 LG 야구도 자율야구라고 본다. 피칭 페이스가 늦다고 하지만, 그것에는 책임감을 갖고 선수가 알아서 단계별로 준비하고 있다. 지금 자율야구를 하는 셈이다. 우리 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라고 본다."
-봉중근, 박용택 등과 함께 고참들이 뒷받침해줘서 가능한 것 아닐지.
"주장이 가고자 하는 길을 고참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제국이를 따라 가는 거에 좋은 성적이 나오고, 분위기도 좋고, 제국이가 힘들게 잘 하고 있다. 예전 선후배 사이의 빡빡한 시절 야구와 지금을 비교하면 말이 안 될 정도로 가깝게, 허물없이, 살 부대끼면서 우리 선수들이 좋아지는 계기가 됐다고 본다."
-지난해 많이 출장하지 못해 아쉬움은 없었나.
"엔트리에서 2번 빠지고, 부상으로 한 달 쉬기도 하고 그게 속상하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뛰는 것이 목표인데 속상했다. 어린 친구들에게 내 자리를 내주고, 한 순간에 없어지는가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선배들이 팀을 떠나면서 내 자리가 없어지는 건가.
지난 2년을 돌이켜보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더 잘해야 할 지 계기가 되고. 내 동기들이 아직도 야구를 잘 하고 있고, 고참급이지만 베스트로 잘 하는 친구들이다. 나도 뒤지지 않고 해야겠다는 자극도 된다."
-조금씩 인지도가 떨어지는 것 같나.
"솔직히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근이 형은 튀고 싶어하지만(웃음). 별명이나 수식어가 없는 것이 부담없어 좋다. 내 할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처럼 주위에 팬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많이들 관심 가져 주더라. 지금 정도만 해도 감사하다."
-LG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고 싶나.
"이상훈 형처럼...선배로서 동생들 잘 하게끔 엉덩이 쳐 주는 것. 내가 선배에게 받았던 것을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것. 후배 챙기는 것. 그런 모습. 지난해 2군에 내려가서 이상훈 선배와 편하게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았고, 도움도 됐다." /orange@osen.co.kr
[사진] 글렌데일=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