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는 짧았다. 지옥의 펑고 데이는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8일 일본 오키나와 고친다구장. 훈련이 시작된 아침부터 보슬비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잔뜩 흐린 구름 아래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지만, 훈련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투수와 야수 가릴 것 없이 선수들은 오전-오후로 각자 파트에서 훈련을 소화했다.
그러나 오후 2시30분을 넘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우였다. 몇몇 투수들은 육상장에서 비를 맞은며 러닝을 급하게 마쳤고, 야수들은 메인구장과 보조구장에서 비를 피했다. 선수들의 표정에는 '비 때문에 훈련이 끝나겠구나'란 안도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한화 캠프에 쉼표가 있을 리 없었다. 선수들은 고친다구장 옆 실내체육관으로 급히 이동했다. 대부분 코치·선수들이 비를 흠뻑 맞았고, 몇몇 선수들은 비닐을 덮어쓴 채 체육관으로 뛰어갔다. 투수들은 웨이트장에서 기구와 씨름하고, 야수들은 체육관에서 스트레칭-밸런스 운동으로 훈련을 끝내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선수들이 체육관에 들어간 사이 거짓말처럼 폭우가 그쳤다. 이날 내내 먹구름만 가득했던 하늘에도 해가 뜨기 시작했다. 바로 젖어있던 그라운드도 빠르게 정비됐다. 오후 3시30분이 지나자 김성근 감독이 그라운드에 나타나 직접 상태를 살폈다.
체육관에서 나온 선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갠 하늘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하지만 한숨 쉴 시간도 없이 다시 메인구장으로 이동했다. 마침 이날은 전체 야수들이 1시간30분으로 예정된 '펑고 데이'였고, 내외야 가릴 것 없이 그라운드 전체에 쉴 새 없이 펑고가 이어졌다.
선수들의 유니폼은 금세 흙투성이가 됐고, 그라운드에는 기합 소리와 비명 소리가 뒤섞였다. 오전 내내 불펜에서 투수 지도에 여념이 없던 김성근 감독도 오후엔 직접 메인구장 한가운데 서서 야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관찰했다. 선수들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오후 5시를 넘어서야 펑고가 끝났다. 펑고 이후에도 야수들의 훈련은 계속 됐다. 김태균과 조인성 등 주축 베테랑 선수들이 포함된 A조는 오후 6시30분까지, 젊은 선수 중심의 B조는 오후 8시까지 타격 및 수비 훈련이 예정돼 있다. 폭우로 훈련이 잠시 중단됐지만 끝은 없었다. 해가 진 뒤 야간까지도 이어지는 '한화표 지옥훈련'이 다시 시작된 하루였다. /waw@osen.co.kr
[사진] 오키나와=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