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쎈 테마] '초구 지영'은 사실일까? 초구에 얽힌 이야기
OSEN 최익래 기자
발행 2017.02.09 06: 00

[OSEN=최익래 인턴기자] 초구 공략에 왕도가 있을까?
지난해 KBO리그의 초구 타율은 3할7푼3리였다. 리그 타율 2할9푼보다 높다.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로 범위를 좁히면 타율은 3할9푼1리로 뛴다. 또, 2016시즌 팀 OPS(출루율+장타율)가 0.801인 반면 초구 타격시 OPS는 0.973이다.
팬들은 초구에 방망이를 자주 내는 이지영(삼성), 김주찬(KIA)을 '초구지영', '초구찬'이라고 부른다. '섣부른 공략'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별명이다. 이들의 '초구 사랑'의 결과와 함께 타자들의 빠른 승부가 팀 공격 생산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다.

▲가장 적극적인 팀은 SK…초구 OPS 1위는 두산
지난해 가장 적극적이었던 팀은 SK였다. SK는 809번의 초구 공략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랐다. 반면, 롯데는 SK보다 200번 적은 608번으로 리그 최저에 그쳤다. 이 자체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승부를 빠르게 가져간다고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도, 반대의 경우에 나쁜 성적이 나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의 결과는 아쉬웠다. '최저 공략팀' 롯데의 초구 병살타는 32개, 리그에서 가장 많았다. 가장 적은 기회에 가장 많은 병살타를 친 것. 첫 공부터 병살타가 나오면 공격에 찬물이 제대로 끼얹어진다. 롯데가 지난해 777득점으로 리그 7위에 머물렀던 것은 이처럼 짜임새 없는 공격도 한 몫했다. 반면 LG는 626회로 상대적으로 신중한 편이었고 병살타도 14개로 가장 적었다.
▲'초구찬' NO, '초구지영' YES
한때 '초구찬'이라 불렸던 김주찬은 지난해 초구를 60번 공략했고 한 번 몸에 맞았다. 규정타석을 채운 55명의 타자 27번째로 딱 중간. 이 경우 OPS는 0.986으로 시즌 기록(0.952)보다 약간 높았다. 대단한 혜택을 누리지는 못한 셈. 편견과 달리 초구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초구지영'에 담긴 삼성 팬들의 답답함은 그저 '느낌'만이 아니었다. 이지영은 지난해 KBO리그에서 10번째로 초구에 적극적이었다. 86번 타격했고 두 번 몸에 맞았는데 타율은 2할8푼8리였다. 이 때 OPS는 0.668로 시즌 기록(0.710)보다 나빴다. 초구로 만든 병살타도 무려 4개(전체 13개)였다. 삼성 팬들이 답답함을 담아 부르는 '초구지영'은 사실이었다.
▲적극적인 이대형…'비율 미남' 신재영
지난해 초구를 가장 많이 때린 타자는 이대형(kt)이다. 이대형은 118번 중 48개를 안타(타율 4할2푼1리)로 만들어냈다. 출루율이 3할6푼8리로 높지 않은 이대형에게 초구는 득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무기다.
반면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 중 가장 신중했던 타자는 김민성(넥센)이었다. 김민성이 초구를 타격한 건 단 31차례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한 건, 김민성이 이 경우 타율 4할6푼4리로 준수했다는 점이다. 나지완(KIA)이 33차례 타격으로 그 뒤를 이었다. KIA의 '눈 야구'를 이끌 선수답게 방망이를 자제했다.
35차례 이상 초구를 타격한 선수 78명 중 타율 1위는 에릭 테임즈(밀워키)였다. 테임즈는 44번 공략해 타율 5할2푼6리, 7홈런, 27타점, OPS는 1.808에 달했다. 81번 초구를 때린 김재환(두산)은 36개의 안타를 만들어내며 타율 4할5푼6리를 기록했는데, 14홈런으로 이 부문 1위였다.
성급함을 극구 말려야 할 타자도 있다. 35차례 이상 타격한 타자 중 최저 타율은 김상수(삼성)가 기록한 1할3푼3리(30타수 4안타)다. 이 명단 중 유일한 1할대. 김상수의 이 부문 OPS는 0.394로 시즌 OPS 0.658에 비해서도 현저히 낮다.
신재영(넥센)은 초구 스트라이크 488개, 볼 235개를 기록했다. 비율은 2.08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17명 중 가장 좋았다. 헨리 소사(LG)는 초구 스트라이크 540개로 리그에서 가장 적극적인 승부를 펼쳤다. 그만큼 공략도 가장 많이 당했다. 소사의 초구가 타격으로 이어진 건 총 127번. 이 중 47번이 안타로 이어졌다. 소사의 이 부문 피안타율은 3할9푼5리로 다소 높았다.
규정이닝 투수 가운데 초구 피안타율이 가장 낮은 선수는 양현종(KIA)이었다. 111번 타격 중 안타는 24번이었다. 피안타율 2할2푼6리, 허용 OPS 0.575로 안정적이었다. 바꿔 말하면, 타자들이 양현종을 빠른 타이밍에 공략해도 큰 재미를 못봤다는 의미다. 한편, 이 부문 피홈런 1위는 브룩스 레일리(롯데)와 윤성환(삼성)이 허용한 8개였다.
▲'초구 타율 3할7푼3리' 이것이 정답일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KBO리그 평균 타율은 2할9푼이었고 초구 타율(3할7푼3리)은 이보다 8푼 이상 높았다. 타격 결과 전체에서 초구 타격 결과를 뺀다면 타율은 2할7푼8리로 떨어진다. 즉, 초구 타율과 나머지 볼카운트 타율은 1할 가까이 차이나는 셈이다.
그렇다면 '초구 타격 결과가 좋으니 무조건 노려라'가 정답일까? 신동윤 한국야구학회 데이터분과장은 이러한 시각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타율은 볼카운트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하지만 인플레이 타구 타율(BABIP)은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따라서 볼카운트마다 타율이 달라지는 것은 '타격의 질'이 아니라 볼넷과 삼진의 문제다. 초구 역시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타자 성향에 따라 득실이 달라진다"며 "2스트라이크 이후의 대응능력과 장타생산능력이 관건이다"라고 밝혔다. 단순히 타율만으로 ‘초구 공략이 더 좋다’고 판단하는 태도를 지양하는 것이다.
신 데이터분과장은 "투수들은 장타력이 낮은 타자를 상대할 때 승부를 빠르게 건다. 이 경우 타자들의 적극적 대응이 유리한 결과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대형이 지난해 초구 공략 1위에 오른 건 이런 점에서 의미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초구 타격의 이점은 '타격의 질 상승'이 아닌 '삼진 가능성의 감소'다. 반대로 볼넷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은 단점이다. 즉, 2스트라이크 이후 삼진률이 높거나, 볼넷을 잘 고르지 못하는 타자라면 가능한 빠른 볼카운트에서 승부를 거는 게 유리하다. 반면 눈 야구가 자신 있는 타자에게 빠른 승부는 손해다.
초구는 팀 공격력을 올려주는 '마법의 묘약'도, 반드시 신중히 대해야 하는 '신줏단지'도 아니다. 다른 공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라이크일 경우 투수가, 볼일 경우 타자가 유리해지는 것뿐이다. '타자의 유형에 맞게 초구 공략법을 달리 가져가는 것.' 어쩌면 이게 초구 공략의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i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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