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첫 날부터 충돌한 김성근-박종훈
단장 역할론 시각차, 공통 목표는 5강
한국프로야구에서 단장의 역할은 무엇일까. 급격한 시대 변화에 맞춰 상징적인 충돌이 났다.
한화는 지난 1일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 첫 날부터 현장과 프런트의 수장이 정면 충돌했다. 지난해 11월3일 한화가 프런트 개혁을 선언하며 박종훈(58) 단장을 선임한 뒤로 김성근(75) 감독과 불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려대로 캠프 첫 날부터 고성이 오가는 신경전이 펼쳐졌다.
이날 아침 박 단장이 훈련장인 고친다구장 그라운드에 들어온 게 발단이었다. 김 감독은 "훈련장 밖으로 나가 달라"고 요구했고, 박 단장은 "단장은 안에서 볼 권한이 있다"고 맞받아쳤다. 김 감독은 전에 없는 격노를 했고, 박 단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수장의 말다툼은 일찍 경기장을 찾은 몇몇 선수들과 스태프들도 지켜봤다.
선수 출신 단장 시대가 열린 이 시점에 빚어진 충돌, 김 감독과 박 단장의 이야기를 오키나와 현지에서 직접 들어봤다. 단장의 역할론에 대한 시각차가 뚜렷했다.
▲ 김성근, "선수 체크는 감독의 영역"
김성근 감독은 예부터 현장의 영역이 침범받는 것을 좌시하지 않았다. 프런트 월권이 일상화됐던 1980년대부터 프로야구 감독을 해온 김 감독에겐 낯설지 않은 일. 그런 김 감독이 이날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건 이례적이다. 김 감독은 "야구장에서 바깥에 소리가 들리도록 말싸움한 것은 SK 때 이후 두 번째다. 그 이전에도 다툼은 있었지만 안에서 다 해결했다"며 고성이 오갈 정도로 신경전을 벌인 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단장 역할론은 확고하다. 그는 "선수 체크는 감독의 몫이다. 단장이 왜 그라운드 안에 들어와 선수를 확인하려 하나. 그건 내가 하면 되는 것이다. 1군에서 감독까지 한 야구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하는 부분이다. 상식대로 하지 않으니 답답한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조금은 좋아질 줄 알았는데 잘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현실적으로 향후 관계 회복이 어렵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김 감독이 박 단장에게 날을 세우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들이 있다. 김 감독은 "지금 선수가 6명이나 연봉 계약이 안 된 상태로 훈련을 하고 있다. (김광수) 수석코치도 아직 계약하지 않았다. 외국인선수 영입도 아직 한 명이 마무리되지 않았다. 하다 못해 훈련장을 구하는 것도 내가 여기저기서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녔다. 정작 단장이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훈련장에서 선수를 체크한다니, 이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박종훈, "월권 아니다, 감독님과 시각차"
박 단장도 할 말이 많다. 박 단장은 "감독님께서는 단장이라도 운동장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단장은 장기적으로 팀의 '뎁스'를 강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 부족하고 넘치는 부분들을 직접 확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선수들이 어떻게 하는지 가까이에서 보고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단장도 당연히 그라운드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단장 중심의 미국 메이저리그에선 경기 전 단장이 그라운드에서 코칭스태프나 선수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어 박 단장은 "단장이 감독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으면 월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예전부터 현장과 프런트 트러블을 자주 봤다. 단장이랍시고 구두 신은 채 운동장에 들어와서 감독에게 뭐라 말하는 것을 나도 싫어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행동이 아니다. 아침 일찍 나와 운동장을 둘러보고, 그라운드 상태와 훈련 시설, 환경도 다 살펴봤다. 이 역시 야구단의 모든 일을 총괄해야 하는 단장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박 단장은 정장 차림의 일반 고위 프런트들과 달리 캠프에서 트레이닝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움직인다. 선수단과 함께 호흡하기 위함이다. 박 단장은 "어느 조직이든 역할과 책임이 있다. 그건 나한테도 감독님한테도 있는 것이다. 지금은 감독님과 내가 갖고 있는 개념의 차이가 너무 크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기준이 뚜렷하게 정립돼 있지 않아 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단장 역할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과도기란 것이다.
▲ 시각차 떠나 공통 목표는 5강
캠프 첫 날부터 충돌한 김 감독과 박 단장 사이에는 냉기류가 흐른다. 박 단장은 김 감독과 충돌 이후에도 소신대로 가끔 훈련장 안에 들어와 선수들을 지켜본다. 2일 훈련에서도 김 감독이 자리를 비웠을 때 박 단장이 훈련장에서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불어넣고 몸 상태를 물어보며 세심하게 체크했다. 다나베 노리오 인스트럭터와 배팅케이지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기술적인 지도는 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는 김 감독은 "말해도 바뀌지 않는다"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박 단장은 훈련을 마칠 때마다 김 감독에게 모자 벗어 인사를 하며 예를 갖추고 있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김 감독은 "이럴 때일수록 야구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훈련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며 "다행히 선수들의 분위기는 무겁지 않다. 선수들과 한마음이 돼 부상 없이 한다면 5강까지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박 단장도 같은 생각이다. 박 단장은 "감독님께서 5강을 말씀하신 건 고무적인 일이다. 선수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주신 것 같다"며 "올해 한화 성적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1차 목표는 5강, 포스트시즌 진출이라고 했다. (단기전에 강한) 감독님 능력이 있기 때문에 5강만 가면 더 좋은 성적으로 마칠 수 있다. 선수들과 함께 잘 뭉치면 올해 우리 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고 시즌을 기대했다. /waw@osen.co.kr
[사진] 오키나와=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