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무한도전’과 ‘런닝맨’은 왜 다를 수밖에 없을까?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17.02.01 14: 3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MBC ‘무한도전’은 지난해 12월 21일 ‘너의 이름은’ 특집방송 이후 7주 동안 쉰 다음 속개되고, 2월 폐지를 공언했던 SBS ‘런닝맨’은 이를 번복하고 6명의 기존멤버 체제로 계속된다.
‘무한도전’의 휴식선언은 정규방송으로선 이례적이다. 군에 입대할 광희의 공백으로 인한 재정비가 표면적인 이유지만 3달 뒤면 만 11년을 맞는 장기레이스를 통해 쌓인 ‘피로’를 씻어내고 재충전하기 위한 게 속사정일 것이다.
‘런닝맨’은 지난해 제작진이 일방적으로 김종국과 송지효의 하차통보에 이어 강호동 영입설의 선제공격을 언론을 통해 펼쳤음에도 곧바로 강호동이 참여불가로 카운터펀치를 날리면서 여론의 뭇매로 무산되자 폐지로 그나마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하는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를 번복하며 명분과 체면을 잃었다. 시청률의 실속은 오리무중이다.

여러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폐지번복의 결정적인 이유는 시청자의 반대와 김종국의 설득이라고. 제작진은 종영을 아쉬워하는 국내외 시청자들의 목소리에 심경이 변화했고, 2010 ‘런닝맨’을 기획해 사실상 론칭한 남승용 예능본부장이 앞장서 먼저 김종국의 마음을 움직여 프로그램의 존속에 합의했고, 남 본부장과 김종국이 앞장서 나머지 멤버들을 설득해 현행 6인체제로 프로그램을 유지하기로 최종결정했다는 것.
행보가 그야말로 갈지자다. 예능 프로그램 하나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데 뭐 그리 ‘죽자고 달려드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민영이라고 하더라도 어엿한 지상파 방송사가 꽤 탄탄한 지지층을 거느린 프랜차이즈 상품의 존폐를 시청자와 약속하는 과정에서 자꾸 말을 바꾼다는 것은 신뢰도 상실의 심각한 패착이라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지난해 말 폐지를 공언한 배경이 시청자의 압력이나 항의가 아니라 분명히 제작진이 스스로 운영상의 실수를 인정하고 자아비판 차원에서 엄중한 판결을 내린 것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시청자 때문’이라며 강인찬(‘실미도’ 설경구)식 ‘비겁한 변명’의 논리를 펼친다.
주말 버라이어티 예능의 핵심은 역시 ‘무한도전’ KBS2 ‘1박2일’ 그리고 ‘런닝맨’이다. 이 중에 가장 막내는 ‘런닝맨’이다. 아무리 ‘런닝맨’이 기획의도가 차별화됐고, 그런 노력을 경주할지라도 버라이어티의 큰 틀에서 벗어난 완벽한 독자노선을 걷긴 힘들다.
그런 차원에서 ‘런닝맨’은 ‘무한도전’이나 ‘1박2일’에 비해 우월하다고 자타가 공인하진 않는다. 국내를 기준으로 시청률이나 브랜드 파워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내용에서 우열을 가릴 순 없지만 설정면에서 젊은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유재석은 유임스 본드로, 이광수는 광바타로 각각의 캐릭터를 갖고 ‘코스프레’를 하는가 하면, 멤버들에게 초능력을 부여하고 특수권한을 주는 ‘자격증’을 발부하는 등 다분히 학예회적 컨셉트를 지킨다.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특징인 이름표 떼기 전쟁이 결정적인 ‘젊음’이다.
젊다는 게 차별성은 되겠지만 변별성까지 반드시 연결되진 않는다. ‘무한도전’은 역사를 가르치고, ‘1박2일’은 지역사회를 알린다. 이렇게 한마디로 단순하게 규정하면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수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하는 것을 볼 땐 학교교육과는 분명히 다른 재미와 훈훈한 웃음 그리고 메시지까지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런닝맨’을 보고 뭔가 배우고 느꼈다는 시청자는 보기 드물다. 제작진이 김종국과 송지효에겐 양해와 이해를 구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언론을 통해 하차를 통보한 일이나, 강호동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도 전에 그의 영입설을 흘린 것에 시청자들이 강력하게 항의했고, 그에 제작진이 폐지로 화답한 게 그 근거고, 그래서 거기까지가 모범답안이었다.
중국이 ‘무한도전’이나 ‘1박2일’보다 ‘런닝맨’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분명히 사고와 고뇌의 여지를 남긴다. 중국은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 성립은 물론 고구려마저 자신들의 역사 안에 편입시키려 혈안이 돼있다. 사드배치문제로 첨예한 외교분위기가 된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대응기류의 저변엔 ‘작은 나라가!’라는 우리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간섭을 받던 시절의 지배이데올로기가 잔재돼있는 것을 부인하기 힘들다.
그런 ‘대륙기질’이 ‘작지만 강한’ 우리의 역사를 가르치는 ‘무한도전’을, ‘작지만 아름답고 버라이어티한’ 우리 국토의 방방곡곡을 무대로 삼는 ‘1박2일’을 마뜩하게 받아들일 리 만무다.
그에 비해 ‘런닝맨’은 기존 버라이어티와 좀 다르다. 애써 철학과 교훈을 담으려 노력하지 않고 오로지 재미에 집중한다. 이름표 떼기란 프레임 안에서 각종 권모술수와 이합집산을 합법으로 용납하며 꼼수와 변칙마저도 눈감아준다. 워낙 거대한 땅덩어리와 많은 민족이라 역사 안에서 '헤쳐! 모여!'가 잦았던 중국 입장에선 이게 오히려 ‘대륙적’인 컨셉트인 것이다.
‘런닝맨’은 사실 론칭 초기만 해도 실패한 ‘신장개업’이었다. 유재석과 김종국을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시청률 문제로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은 커다란 아픔이었을 테지만 제작진의 끈기와 출연진의 의지로 그걸 극복해내 대중국 수출의 확실한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제작진 입장에선 사골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아직도 몇 번 더 우려먹기 충분한 ‘엑기스’를 간직한 게 눈에 뻔히 들어오는데 포기하고, 굳이 시청자들이 숟가락을 댈지 그렇지 않을지 애매모호한 새 반찬을 만들 용기를 발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만사에는 예외가 있는 만큼 명분과 철칙과 도의의 기본은 지키면서 탄력성을 발휘하는 것 역시 옳다. 제작진은 ‘런닝맨’이 자기들의 것이라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시청자의 것이다. 다만 제작을 리드함으로써 시청에 가이드를 할 따름이다.
제작진이 애지중지해온 ‘런닝맨’을 폐지하겠다고 공언했을 땐 수지타산부터 시청자의 정서까지 전방위에 걸쳐 고르게 분석한 뒤의 결론이었을 것이다. 시동 직후 출발 때의 부진을 털어내고 고군분투 끝에 선두주자들을 따라잡아 정상궤도에 안착한 주행 중의 얘기와 이제 종점에 안착하겠다고 선언한 종지부의 선언과는 차원이 다르다.
제작진 입장에선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7년 동안 우정과 호흡을 쌓아온 현재의 멤버들을 유지하겠다는 내부정리는 나름대로 명분이 서는 결정이다. 그러나 이미 도중하차한 개리를 2번이나 게스트로 끌어들이는 궁여지책은 시청자들을 납득시키기 힘든 자가당착이다.
규칙과 유연함의 적절한 균형은 모든 가치와 행동의 규범이다. 사고의 신선한 발상은 사물의 발전적 지평(전망, 가능성)을 넓히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소소한 기득권에의 집착이 낳은 안착은 연착륙은 유도할 수 있을망정 힘찬 도약의 가능성은 희미하다. 용기와 치기, 지혜와 간계의 차이는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지는 게 맞지만 다수의 정서는 분명한 구분을 할 줄 안다.
‘무한도전’이 왜 브랜드 파워가 높은지, ‘1박2일’이 강호동 등의 주축멤버들을 모두 교체하고 나영석 PD를 잃고도 기사회생한 비결이 뭔지 명석한 분석과 고민이 필요할 때다.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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