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한 번에 미래가 바뀔 수 있을까.
권순태(33, 가시마 앤틀러스)를 설명하는데 있어 전북 현대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일본 가시마로 이적한 권순태는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있던 상주 상무 시절을 제외하고 2006년부터 계속 전북에서 뛰었다. 권순태는 전북에서 두 차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세 차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권순태과 전북은 전성기를 공유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권순태와 전북의 작별이 주는 충격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북은 권순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시마에서 권순태에게 제안한 조건이 엄청났다. 전북에서의 대우와 가시마가 약속한 대우는 실질적으로 3~4배의 차이가 났다. 계약 기간 등을 고려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권순태를 위해서라면 보내주는 것이 맞았다. 게다가 전북의 성공을 이끈 선수인 만큼 막을 명분도 부족했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구단에서도 권순태를 놓아 줄 수 없다고 했다. 코치들도 보내면 안 된다고 했다. 계약기간이 남은 만큼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축구 선배로서 그럴 수는 없었다"면서 "계약기간이 남은 만큼 보낼 수 없다면서 안 보낸다면 권순태가 예전과 같은 마음으로 뛸 수도 없을 것이다. 전북은 애절함이 없는 선수는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작별이다. 구단과 선수 모두 앙금을 남기지 않고 웃으면서 작별했다. 낯을 붉힐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권순태는 전북 출신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권순태는 가시마 입단 직후 가진 인사에서 "2016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 전북에서 온 권순태입니다"고 말했다. 굳이 전북 출신이라는 걸 밝힐 필요가 없었지만 권순태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전북과 권순태의 작별은 좀 더 빠를 수도 있었다. 2012년 전북으로 복귀한 이후 최은성(현 전북 코치)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시의 권순태가 자신이 경기에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강희 감독은 2013년 여름 전북에 복귀한 이후에도 권순태를 기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3년 시즌을 마친 후 다른 골키퍼의 영입을 검토했다.
최 감독은 "전북에 복귀하기 전부터 순태가 경기에 뛰지 못해 불만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복귀 이후에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013년 시즌이 끝나고 김영광(현 서울 이랜드 FC)에 대한 이적 제안이 왔다. 이적료도 처음 제안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그래서 순태와 담판을 짓고 영입을 결정해야 됐다"고 말했다.
김영광의 영입이 눈앞까지 다가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 그러나 전북은 김영광의 영입을 추진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최 감독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순태가 방문을 노크했다. 경기 운영에 대해 질문을 하더라. 그래서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하고 권순태의 태도에 대해 혼을 냈다. 2시간이나 혼을 냈다. '죄송하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더라. 못 고치면 경기 못 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권순태를 제대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음날 김영광 영입을 하지 않기로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모두가 아는대로다. 다음해에도 권순태는 최은성과 함께 로테이션으로 기용됐다. 그러나 태도는 전혀 달랐다. 불만을 드러내지도 않았고, 실점에 대해서도 동료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책임으로 여겼다. 권순태의 변화에 만족한 최강희 감독은 2014년 상반기에 최은성이 코치직을 맡고 권순태를 제대로 된 골키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권순태는 최강희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2014년 정규리그 34경기에서 19골밖에 내주지 않은 권순태의 활약에 전북은 K리그 클래식 정상을 탈환한 것은 물론 다음해에도 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는 피로골절의 고통 속에서도 전북 골문을 지키며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안겼다. 최 감독은 "순태가 그 때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현재 골문은 김영광이 지키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권순태가 큰 힘이 됐다는 사실은 틀림 없다.
전북만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다. 전북의 성공은 권순태 개인의 성공으로도 이어졌다. 가시마가 권순태에게 약속한 조건은 모두가 부러워할 수준의 것이다. 3년 전 권순태가 최강희 감독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노크 한 번에 권순태의 미래가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sportsher@osen.co.kr
[사진] 전북 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