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더킹’ VS ‘공조’, 흥행 쌍끌이의 반전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1.27 07: 30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더 킹’(한재림 감독, NEW 배급)과 ‘공조’(김성훈 감독, CJ엔터테인먼트 배급)가 새해벽두 극장가에서 한국영화 흥행의 쌍두마차로 내달리고 있는 중이다. 26일 박스오피스에서는 '공조' 35.5 vs '더킹' 31.8%의 매출액 점유율로 1, 2위를 달리며 쌍끌에 들어갔다. 지난 25일까지 각각 237만여 명과 16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누적관객 수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예매스코어 간극이 점점 가까워져 설 연휴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두 영화의 흥행은 참으로 공교롭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 및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가 절정을 향해 치닫는 상황이라 비교되거나 시사하는 의의가 각별하다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중이다.
이미 2015년 ‘내부자들’부터 고위층 등 사회지도층의 비리 및 사리사욕에 근거한 결탁 등이 암시됐고, 이후 ‘터널’과 ‘판도라’로 고위공무원의 안전 및 책임 불감증이 지적되는 가운데 ‘아수라’와 ‘마스터’에 이어 ‘더 킹’과 ‘공조’가 왔다.

여러 면에서 ‘더 킹’이 현실적이되 스케일은 훨씬 크다. 현재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국민의 자유가 억압되고 그 수단으로 반공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던 때를 제외하곤 보수-진보의 이념대결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아직 조기대선 날짜도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이는 ‘반 박근혜’ 대 ‘찬 박근혜’라는 외형으로 대표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고질병의 발현이고, 엄청난 빈부격차의 맨살이자, 문화-경제와 정치-사회가 따로 노는 불협화음의 절정이다. 대중은 흔히 스스로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고 그 기준으로 편을 갈라 다툰다. 마치 보수와 진보는 결코 혼합될 수 없는 물과 기름인 것처럼.
그래서 그들은 이 보수와 진보가 소위 통치수단으로써 전가의 보도로 활용돼온 역사와 정치의 현실을 모른 채 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학연 혈연 지연 따위로 이합집산하고 거기에 가장 큰 개념의 중추신경으로써 진보냐 보수냐의 이념을 우뚝 세운다.
‘더 킹’에서 대한민국의 킹을 꿈꾸는 한강식(정우성) 부장검사나 그에게 충성하는 양동철(배성우) 박태수(조인성) 검사는 서울대 출신답게 영리하다. 그들은 절대 이데올로기의 환영에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고 오로지 이기적인 이득을 지상목표로 세운다.
그들은 15대 대선 때 이회창 후보를 외면한 채 김대중 후보를 밀었고, 16대 대선 땐 노무현 후보를 나 몰라라 하고 이회창 후보의 손을 들어줬다. 이들에게 애국심이나 정의감이나 정치적 신조나 법조인 및 공무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등이 없다는 뜻이다.
그들은 헤게모니와 그로 인한 카르텔이 곧 이데올로기다. 김대중이 이회창을 이길 것 같다는 점쟁이의 점괘에 이회창의 약점을 들춘 자료를 김대중 후보 측에 건넸고, 16대 땐 이회창 후보가 될 것 같다고 하니 또 그렇게 노무현 후보의 약점을 파헤쳤다.
영화는 인트로에서 전두환부터 이명박까지 대통령의 실제 영상자료를 내보낸다. 그리곤 오로지 한강식을 중심으로 한 1%의 비뚤어진 ‘떡검’의 얘기에 집중한다. 법 앞에 공정하고 냉정해야 할 검사가 표적수사와 조작수사 등의 탈선을 그럴듯하게 포장해 사회정의구현의 선봉인 양 행세하고 인기와 부를 쌓아가며 쾌락에 탐닉하는 모습은 이미 ‘내부자들’을 통해 영화적 장치로 구동됐지만 여기선 그게 사실이었고, 지금도 그럴 것 같은 리얼리티가 넘친다. 그게 ‘내부자들’에선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이었지만 ‘더 킹’에선 검찰이라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묘하게 격랑을 일으킨다.
아직 ‘최순실 게이트’에서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은 연예계와의 커넥션 혹은 비리 등에 대중의 눈과 귀가 열려있는 상황에서 강식 일행의 연예계 개입 및 그들과의 부적절한 관계 역시 충분한 현실감을 주는 내용이다.
강식 일행의 무모한 폭주를 보면 절망감과 낭패감만 들 따름이지만 태수의 환골탈태와 그 과정에서 보여준 안희연(김소진) 감찰부 검사의 사명감과 소신, 그리고 취임 후 검찰개혁에 무게중심을 실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은유로써의 중견검사의 일상에 지친 지하철 탑승 장면 등이 관객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준다.
특히 안희연은 수많은 국민들에게 ‘그래도 검찰을 믿자’는 한줄기 광명의 빛을 보여준 ‘도가니 검사’ 임은정 검사를 모델로 했다고 해서 더욱 반갑고 친숙하다.
‘공조’는 북측에서 탈출해 남측으로 숨어든 테러조직 두목을 잡기 위해 양측의 형사 2명이 공조수사를 벌인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북측 형사 림철령(현빈)과 남측 형사 강진태(유해진)의 목적 사상 개념 등이 같을 리 없다. 아니, 두 사람의 모든 생활방식과 목표는 완전히 다르다.
그건 같은 민족이면서 서로 주적으로 규정한 남과 북의 상징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처음엔 으르렁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임무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통의 목표는 공존이란 공동체적 가치관에 있음을 깨닫곤 명령을 깨뜨린 채 서로 돕게 된다.
그들의 타깃인 차기성(김주혁)은 범죄자로 그려지지만 사실 그는 북측 소속도, 그렇다고 남측에 귀순하고픈 변절자도 아닌, 그저 아나키스트일 따름이다. 젊은 시절 목숨을 바쳐 충성했던 북측은 그러나 세습 독재자와 그들을 추종하는 정치세력들만 배부르고 인민은 항상 배고픈 나라였다. 결코 먼 나라 얘기 같지 않다.
그걸 깨달은 그는 슈퍼노트 동판으로 큰돈을 거머쥔 뒤 묵묵히 자신을 따라와 준 부하들과 자본주의의 체제에서 호의호식하며 잘살겠다는 생각일 따름이다.
‘공조’는 결코 남측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자유민주국가고, 북측은 그 반대이니 주민들조차 그런 수준일 것이라고 정치적 선전에 앞장서지 않는다. 오히려 북측을 어루만지거나 북측 주민도 우리 민족이라고 보듬는다.
진태를 외모도 내면도 지질한 생계형 가장으로, 철령을 반듯하고 신념에 충실하며 잘생긴 캐릭터로 각각 설정한 것부터 그렇다. 게다가 철령은 지금까지 그려진 맹목적이고 앞뒤가 꽉 막힌 북측사람의 이미지를 벗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며, 특히 인간적이고 의리를 지키는 면에선 남측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면모를 보인다.
시내 곳곳에 설치된 CCTV를 보고 진태는 철령에게 “(감시당하며 사는 건 북측이나 남측이나)똑같네. 그래서 한민족인가?”라고 엉뚱한 유머를 펼치거나 논쟁 중 “대한민국에 죄수는 없고, 있는 놈과 없는 놈으로 구분된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더 나아가 철령은 진태에게 “남측 나라 빚이 얼만 줄 아냐? 그래도 북측은 평등하게 가난해”라는 유머 아닌 유머로 ‘웃기게 슬픈’ 웃음을 자극한다. 결국 그는 “북조선 동포들도 코카콜라 맛에 중독됐다”고 자본주의화의 물결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지구상의 마지막 사회주의국가의 허망함을 인정한다.
‘더 킹’과 ‘공조’는 이렇게 대한민국이란 사회가 안고 있는 보기 드문 분단국가로서의 운명, 그렇기 때문에 지배세력의의 크레덴다를 위한 스케이프 고트 등의 프로파간다와 아젠다 설정으로 애먼 남북 국민들의 이질감과 반감만 증폭되는 점부터 남측 내부에서마저 분열조장이 극심함을 꼬집고 있다.
결국 두 영화는 공생과 평등이란 주제에서 만난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공화국이고, 북측의 공식국명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뭐가 어쨌건 양측은 민주주의를 기초로 모든 이가 함께 잘사는(공화) 나라를 추구한다. 그건 전체주의가 아니라 인권과 인격이 동등한 공동체사회와 맞닿아있다.
검사나 형사는 공권력을 이용해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지도층이 아니라, 일반 국민과 똑같은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다수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대가로 국민의 세금에서 급여를 받는 직업이다. 그건 국회의원도 국무총리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더 킹’은 ‘킹덤’인 일본이나 영국이나 네덜란드에서조차 상징일 뿐 실권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고자 하는 제목이다. ‘공조’는 재밌고, ‘더 킹’은 통쾌하다는 관객의 반응은 바로 현 시국의 냉정한 반영이 아닌가?/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더킹' '공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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