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더킹' 감독 "말 타는 장면 편집..시국 때문에 웃더라"
OSEN 이소담 기자
발행 2017.01.28 08: 09

 영화 ‘더 킹’(감독 한재림)에는 우연히 시국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꽤나 많이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시국을 풍자하기 위한 요소가 아니었다는 것. 이 영화가 권력자들의 지질한 단면을 보여주며 낄낄 대고 조롱하는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우리가 시국과 연관 지어 놀랐던 소재들은 비리를 저지르는 권력자들이 얼마나 별 거 없는 인물들인지를 표현하는 요소로 사용된 것들인지 깨닫고 나면 더욱 씁쓸하다.
극중 권력의 중심에 서 있는 부장검사 한강식(정우성 분)은 소위 라인을 타기 위해 대선을 앞두고 차기 대통령이 누구인지 예측하려 한다. 이 방법으로 동원된 것이 무속인의 굿이다. 현 시국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실제로 무속인이 내린 답은 한강식을 비롯한 그의 사람들을 이끄는 이정표가 된다.
실제로 영화에는 이밖에 강식의 무리들이 도심에서 말을 타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이 역시 단번에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해당 장면을 본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트렸다고. 영화의 내용에서 튕겨져 나올 것을 우려해 아쉽게도 이 장면은 볼 수 없을 전망이다.

다음은 한재림 감독과 나눈 일문일답.
-영화는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취재 과정이 궁금합니다.
▲일단은 각종 신문과 언론에서 얻을 수 있는 비리 검사들에 관심이 많이 갔어요. 자료조사를 하다보니까 법이라는 것이 되게 무섭더라고요. 보통 정의와 진실을 찾는 과정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잖아요? 법조인들은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법리 싸움인 거죠. 어떻게 보면 시나리오를 쓰듯이 얼마나 논리적으로 잘 써서 판사를 설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판사 역시 증거를 보고 법리적 해석을 하지만 그것이 실체적 진실인지 아닌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조작하거나 은폐할 수 있겠다는 무서움을 느끼고 실제 검사를 만났죠. 대부분의 99% 검사들은 정말 평범하고 자신들이 그렇게 중요한 임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되게 신중해요. 제가 물어봤어요. 만약 선배 검사에게 전화가 와서 ‘이거 좀 묻어줘’하면 어떡하겠느냐고요. 그렇게 말하는 분위기가 사실 잘 없고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는 된다고 하더라고요. 또 한 번 전화하면 소문이 나서 되게 안 좋게 찍힌다고요. 그런데 영화에서처럼 선배 검사가 찾아와서 무릎을 꿇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하니 엄청난 혼란스러움이 올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과연 이렇게 까지 한 사람에게 모질 게 인간적으로 면박을 줘야 하나, 묻어야 하나 대답을 잘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사람과 사람의 일로 바뀔 때 사건이 묻히기도 한다는 거죠. 태수의 심리 과정의 변화를 통해 어떤 식으로 권력을 조종하고 라인을 바꾸고 유지해 나가는지 우화로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에 이토록 역대 대통령이 그대로 다 나오는 영화가 있을까 싶어요. 그중에서도 앞서 언론시사회에서 언급했듯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서거가 영화의 시작 계기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영화 속 시간적 배경에서도 당시 등장인물에게 가장 비극적인 내용이 전개되는 것인가요?
▲제 나이가 40대 초반인데 초등학교 때 대통령이 해외를 한 번 다녀오면 아이들이 동원돼요. 태극기 휘날리고 퍼레이드 차가 오고 꽃가루가 막 터지는 거죠. 9시 되면 뉴스에서 대통령들이 나오고 극장가면 애국가를 부르고 대한늬우스를 보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자라왔어요. 김영삼 대통령이 당선되고 이런 게 싹없어지더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가고 ‘세상에 대통령이 이럴 수도 있는 구나’, ‘변화는 구나’하는 과정을 감수성이 예민할 때 봤어요. 제가 처음으로 뽑은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이에요. 2002년 월드컵이 열리던 해에 광장에는 데모가 아닌 축제를 벌이는 세상이 됐어요. 서민의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세상이 바뀌겠다고 생각했죠. 감격스러웠어요. 그러나 1년 만에 탄핵의 위기에 섰고, 많은 세력들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공격했고 결국에 퇴임하고 정말 잠시 행복한 모습을 보다가 서거하시게 되면서 이렇게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것은 내 착각이었구나, 우리나라 기득권이라는 것이 얼마나 막강하고 거대한 지 참혹함과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세상은 하나도 안 바뀌었는데 착각한 거죠. 그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하나의 오류일 뿐인 것이었는데. 우리나라 기득권들은 어떻게 권력을 쌓고 유지하는지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표현하고자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실 우리도 이제는 프레임이 그러지 않냐. 정의 그런 걸 왜 하냐고. 잘 먹고 잘살지가 중요하다고. 그런 마음이 비극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최순실 사태 또한 곪아서 터졌다고 생각해요. 그게 현대사인 거예요. 강식의 대사에서도 나오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이 권력 앞에 서야 하고 그래야 성공하는 게 기득권의 진리인 거죠. 그래서 이런 사태가 터지고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원래 분량은 많이 길었다고 하던데요.
▲현장 편집본은 3시간 반 정도 됐어요. 호흡을 줄여가다 보니까 2시간 40분 정도 됐고, 여기서 신을 들어낸 게 지금 버전이에요. 사실 2시간 40분 버전에는 태수와 상희(김아중 분) 비중이 많았죠. 도심에서 말을 타고 노는 완전히 막나가는 장면도 삭제됐어요. 아쉬운 건 김아중 씨 분량이에요. 메시지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축약했지만 연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한 신 한 신 되게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되게 섬세하고 감독과 아주 디테일한 연기까지 이야기하고 또 그걸 되게 정확하게 표현하더라고요. 좋은 배우죠.
-감독판 볼 수 있을까요?
▲만약 감독판을 하려면 단순히 들어낸 신을 끼워넣는 게 아니라 호흡을 다시 만져야 해서 작업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감독판을 내는 건 좀 힘들 것 같아요. 만약 DVD 블루레이로 나온다면 보여드리고 싶긴 하죠.
-말 타는 장면이 꼭 보고 싶네요.
▲그 부분에서 사람들이 너무 웃는 거예요. 최순실 사태에서 정유라가 말을 탔잖아요. 굿 장면이야 워낙 맥락상으로 뺄 수 없었지만, 말을 타고 도심을 뛰어다니고 ‘미친 거 아냐?’라는 반응이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걸 보는 게 아니라 정유라 사건을 보는 거죠. 그 순간 영화에서 빠져나오고 영화를 탁 놔버리니까 아마 말 장면은 못 보실 거예요.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의 욕망이 궁금합니다.
▲저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욕망을 꿈꾸면 얼마나 힘든지 알죠. 지금을 행복하게 살려고 해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여행 좋아하고. 과거에 행복했던 걸 생각해봐야 옛날에 행복했던 걸 그리워할 수도 없고 어떡하나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지금 물으시니까 갑자기 생각나는 건데 저는 그걸 영화로 풀어내는 것도 같네요. 욕망이 사람을 얼마나 망치고 좌절하게 하는지 봐왔고 또 많이 괴로워했었고 지금은 많이 컴해진 것 같아요. / besodam@osen.co.kr
[사진]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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