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개는 대지를 박차고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기까지 오로지 제 힘으로 날갯짓을 해야 한다. 고공행진을 할 수 있게 되면, 기류에 몸을 내맡기고 예리한 눈으로 지상을 살핀다. 창공으로 날아오르기가 힘들지만 한 번 기류를 타게 되면 먹이사냥에 전념할 수 있다.
비유컨대, 프로야구단도 그렇다. 한 번 망가진 구단 전력을 성층권에 진입시켜 제 궤도에 올리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다. ‘김성근’이라는 승부사를 영입, 비상을 꾀했던 한화 이글스는 이유야 어쨌든 지난 2년간 성층권 진입에 실패했다.
김성근(75) 한화 감독은 2017년이 3년 계약 마지막 해이다. 그로선 그야말로 ‘마지막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올해마저 실패한다면 ‘김성근 감독’이라는 이름은 프로야구 판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패의 기준선은 물론 가을잔치 티켓 확보, 즉 5강 이상 진입이다.
한화 구단은 지난 해 11월 박종훈 전 LG 감독을 단장으로 앉히면서 구단을 장기적인 육성체제로 전환했다. 자연스레 김성근 감독의 권한은 축소됐다. 한화는 지난 3개월 동안 구단의 방향성을 놓고 적지 않은 마찰을 빚었고 진통도 겪었다.
김성근 감독은 “올해는 지난해보다 월등히 힘든 한해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로 그럴 것이 그의 말대로 한화는 ‘현상유지’인데, KIA와 LG는 보강됐고 롯데도 이대호가 귀환한데다 SK는 일본야구를 경험했던 트레이 힐만 전 니혼햄 파이터스 감독을 데려와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전력이 상향 조정된 구단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올해 KBO 리그가 한층 치열하게 전개되리라는 전망을 내리게 한다.
김성근 감독은 2월 1일부터 시작하는 일본 오키나와 팀 전지훈련에 앞서 29일에 먼저 현지로 떠난다. 25일 저녁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김성근 감독의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지만 괜찮다. 3개월 동안 지켜봤는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욕을 먹더라도 나서기로 했다.”
김성근 감독은 “그 동안 선수들이 우왕좌왕하고 눈치를 보느라 물렁물렁해졌다. 이대로 가면 (팀이) 가라앉을 것 같아 내가 나서서 끌고 다녀야 뭔가 팀이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특유의 결기를 되살려냈다.
“악재가 많아” 어려운 한해가 예상되지만, 더 이상 방관만 할 수 없다는 그의 구상의 기본은 “부상 선수들은 아예 전력에서 빼고 계산에 넣지 않겠다.”는 것이다. 해마다 시즌 초반에 부상 선수들로 인해 ‘계산’이 헝클어졌던 터여서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선언이다. 기대 전력보다는 가용 가능한 전력의 극대화를 우선하겠다는 뜻이다.
김성근 감독이 보는 올 시즌 전반적인 관측은 “두산은 여전히 최강자이고, KIA와 LG는 올라오고, SK는 달라질 것이며 NC와 넥센도 강하고, 롯데는 이대호 효과를 볼 것이며, 막강하지는 않지만 삼성은 ‘탈 최형우’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며 kt는 한화에 강했다”였다. 이렇게 본다면, 한화만 문제라는 얘기가 된다. 그동안 치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상도를 점쳐온 김성근 감독이기에 그 같은 관측, 인상비평의 개략적인 근거를 물었다. 두산과 KIA, LG가 전력 보강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그렇게 보고 있지만, SK를 경계의 대상으로 꼽은 것은 약간 뜻밖이다.
김성근 감독은 “힐만 SK 감독은 일본에서 야구를 세밀하게 했던 사람이다. SK를 ‘컨트롤’할 수 있다. SK 야구가 바뀔 것이다”면서 “NC도 김경문 감독이 있고 내가 데려오려고 했던 김평호 코치가 그리로 가 컨트롤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부상과 재활로 온전히 쉬었던 한현희, 조상우 두 투수가 복귀하는 넥센은 장정석 신임 감독의 현장 경험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심재학 코치가 옆에 있고, 감독이 직접 하느냐, 맡기느냐에 달려 있다.”고 그는 내다 봤다.
김성근 감독은 무엇보다 ‘이대호의 복귀’가 롯데 팀은 물론 KBO 리그 전반에 흥행의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대환영이다. 이대호가 돌아온 것이 프로야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좋은 뜻에서 (롯데 구단의) 전국적 인기 살아나고 선수들 사기도 살아날 것이다. 원래 롯데는 부산에서 약하고 돌아다니며 강했는데 이대호 효과가 클 것이다. 황재균이 빠졌더라도 이대호가 팀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이래저래 전력 누수가 심한 삼성에 대한 그의 진단은 오히려 ‘최형우의 탈 삼성’ 효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은 외국인 타자를 어떻게 보강할지 봐야겠지만, 이제는 걸림돌이었던 최형우가 없어졌지 않은가. (최형우가) 이승엽 하고는 말도 안 했다. (최형우가 빠져나가) 삼성 선수들이 이승엽을 중심으로 하나가 되지 싶다.”
2017 스프링 트레이닝을 앞둔 한화는 여전히 ‘부상병동’이다. 김성근 감독은 “이미 최진행이 햄스트링이 올라왔고 김경언도 부러진 게 완치되지 않았다. 이양기는 아킬레스건이 아프다고 한다. 정근우도 무릎이 안 좋아져 24일에 트레이너를 보냈다. 권혁은 계산에 넣기는 하지만 그렇게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지난해 초반 8명의 투수가 부상으로 신음, 고전을 면치 못했던 한화는 올해는 벌써 야수들도 줄줄이 부상에서 회복되지 못하고 시달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너무 우왕좌왕한다. 기본은 현장은 육성이고, 프런트는 보강인데 프런트가 다 가지려고 한다. 전력보강이 없었지만 누군가가 길잡이를 해야만 한다. 내가 나서야겠다.”
김성근 감독의 표현대로라면, “더 이상 방관이 아니라 앞장서 이끌어야겠다.”는 선언이다.
“외국인 선수 한 명이 결정 안 됐지만 (재계약한) 로사리오는 물음표다. 로사리오가 작년 후반에 못 쳤다. 올해로 연장되지 않을까 싶고, 살도 쪘다. 원래 도미니카 애들은 일본도 보니까 돈이 들어가면 태만해 진다. (새 외국인 투수) 알렉시 오간도도 도미니카 출신이다. 소문대로 믿을 수는 없고 지켜봐야 한다. 남미 선수들은 그런 위험성이 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옹색한 처지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자못 비장한 어조로 “5강에 못 들면 그만두면 되지”라는 언급도 했다. ‘저, 석양’에서 ‘승부사 김성근’이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을까. 미우나 고우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김성근. 흥행(관심 집중)은 성공했지만 막상 얻은 (가을잔치) 티켓은 없었던 그가 이 시대에 남길 유산은 무엇일까.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