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 빅맨계보를 이을 기대주, 이종현(23, 모비스)이 드디어 데뷔한다.
올스타전을 마친 프로농구는 본격적인 순위싸움에 돌입했다. 6위 울산 모비스(15승 16패)는 25일 오후 7시 홈구장 동천체육관에서 전반기 1위 서울 삼성(22승 9패)을 상대한다. 모비스만 만나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삼성이다. 삼성은 지난 7일 양동근이 돌아온 모비스에게 71-78로 덜미를 잡혔다. 양동근은 15점, 6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이번에는 ‘슈퍼루키’ 이종현이 데뷔한다. 발등부상으로 개점휴업 중이던 전체 1순위 신인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이종현은 어느 정도의 선수일까. 대선배들의 데뷔전과 비교하면 이종현은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까. 한국농구의 빅맨 계보를 잇는 선수들의 데뷔전을 되돌아본다.
▲ ‘괴물’ 서장훈과 현주엽의 동반 데뷔전
KBL 통산 득점과 리바운드 독보적 1위 서장훈은 설명이 필요 없는 선수다. 전성기 운동능력까지 좋았던 서장훈은 외국선수 자유계약시절에도 평균 20득점을 찍었던 괴물이었다. 현주엽도 만만치 않다. 현주엽은 통산 트리플더블 7회로 역대 공동 5위로 올라있다. 그런데 두 명의 국가대표가 함께 데뷔전을 치렀다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서장훈은 프로농구 출범 이전에 실업신생팀 청주 진로의 지명을 받았다. 진로는 서장훈이라는 대들보를 믿고 팀을 창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후 진로농구단이 SK에 인수되며 97-98시즌부터 프로농구에 뛰어들었다. 서장훈은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연세대 졸업이 늦어졌다. 1998년 실시된 프로농구 첫 드래프트서 안준호 SK 감독은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현주엽을 지명했다. 서장훈과 현주엽이 프로무대 신인으로 한솥밥을 먹게 된 배경이었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1998년 11월 14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청주 SK 대 대구 오리온스의 경기서 데뷔했다. 당시 SK는 외국센터 숀 재미슨, 혼혈가드 토니 러틀랜드를 보유, 외국선수 네 명이서 뛰는 팀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장훈(24점, 14리바운드, 2어시스트, 3블록슛)과 현주엽(26점, 6리바운드, 8어시스트, 2스틸)은 무려 50점을 합작하며 외국선수를 능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SK는 95-94로 이겼다. 특히 현주엽은 종료 1분 5초전 결승 자유투 2구를 모두 넣고, 종료 9초전 결정적 수비리바운드까지 잡아 수훈갑이 됐다.
서장훈과 현주엽 ‘슈퍼콤비’를 보유했음에도 SK는 98-99시즌 8위에 그친다. 두 선수는 걸출했지만 외국선수와 코트밸런스는 맞지 않았다. 두 선수를 맞춰줄 가드도 없었다. SK는 다음 시즌 신인 황성인을 뽑고, 현주엽과 조상현을 맞바꾸며 비로소 최상의 전력을 구축했다.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까지 보유한 99-00시즌의 청주 SK는 KBL 역대 최강팀 중 하나로 꼽힌다.
▲ 데뷔와 동시에 우승 김주성, 하승진, 오세근
프로농구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2미터가 넘는 걸출한 토종빅맨이 필수다. 2002년 등장한 김주성은 데뷔와 동시에 리그 판도를 송두리째 뒤집었다. 신인시절 김주성은 빠른 기동력과 순발력, 높은 점프로 덩크슛과 블록슛을 해내는 선수였다. 정교한 슈팅을 주무기로 삼는 서장훈과는 또 다른 스타일로 프로농구를 평정했다. 김주성을 뽑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허재의 모습은 지금도 전설로 남았다.
김주성의 데뷔전 또한 특별했다. 2002년 10월 26일 창원실내체육관에서 TG삼보의 신인 김주성은 주전으로 나왔다. 그는 19점, 11리바운드, 2어시스트, 1스틸, 1블록슛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통산 1천 블록슛 돌파의 시작이었다. 중앙대 선배 송영진도 김주성을 막지 못했다. 삼보는 77-75로 승리했다. 데뷔전에서 더블더블을 기록한 김주성은 거침이 없었다. 결국 신인 김주성은 데뷔시즌 허재에게 마지막 우승을 선물했다. 김주성은 1순위 빅맨 = 우승이라는 공식을 만들었다.
프로농구 역대 최장신(221cm)이자 한국이 배출한 유일한 NBA리거 하승진의 데뷔도 특별했다. NBA에서 뛰던 선수가 데뷔한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화제였다. 하승진을 1순위로 뽑은 KCC는 환호했다. 다른 팀들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분위기였다. 같은 선수들도 ‘쟤를 어떻게 상대하나?’ 싶은 심정이었다.
하승진은 2008년 11월 1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데뷔했다. 하승진이 데뷔했던 KCC에는 FA로 영입한 서장훈까지 있었다. 하승진은 벤치로 밀려 식스맨으로 데뷔했다. 그는 사실상 서장훈과 출전시간을 나눠가졌다. 그럼에도 하승진은 22분 51초만 뛰면서 14점, 9리바운드, 2블록슛을 기록했다. 초장신을 활용한 공격리바운드와 블록슛은 위력적이었다. 오리온스 국내빅맨 중 최장신이 198cm의 백인선이었으니 도저히 막을 수준이 아니었다. 서장훈은 14점, 6리바운드를 기록했으나 KCC가 85-90으로 패했다.
하승진과 서장훈의 공존은 불가능했다. KCC가 하승진을 1순위로 뽑을 줄 알았다면 FA로 서장훈을 데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서장훈 역시 이상민이 보상선수로 삼성에 타의로 이적하며 당초 원했던 그림을 KCC서 그리지 못했다. 결국 서장훈은 시즌 중 전자랜드로 트레이드됐다. 이 때 부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나선 하승진은 결국 데뷔시즌 KCC에 우승트로피를 안겼다.
오세근의 데뷔도 충격 자체였다. 중앙대시절 오세근은 2미터의 신장에 파워풀한 신체와 운동능력을 겸비한 만능 센터였다. 힘과 몸싸움하면 오세근이었던 시절. 여기에 김태술, 박찬희, 이정현, 양희종에 노장 김성철, 김일두까지. KGC는 초호화 멤버를 자랑했다.
오세근은 2011년 10월 15일 안양에서 동부를 상대로 데뷔했다. 오세근 대 김주성의 대결이 초미의 관심사였다. 오세근은 12점, 3리바운드로 썩 인상적이지는 못했다. 대신 야투율 45%로 안정적인 경기를 펼쳤다. 적어도 오세근이 KGC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란 확신을 심기에는 충분했다. 김주성은 12점, 6리바운드를 올렸지만 오세근의 데뷔에 위기의식을 느껴야 했다. 동부가 67-65로 이겼다.
결국 오세근은 데뷔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승승장구했다. 맞상대는 44승 10패로 한 시즌 최다승, 한 시즌 최고승률 81.5%, 한 시즌 최다 16연승을 달성한 동부였다. 오세근은 KGC에 첫 우승을 안기며 김주성으로부터 빅맨계보를 넘겨받았다. 오세근은 신인 중 유일하게 챔프전 MVP에 오른 독특한 기록을 갖고 있다.
▲ 1순위 빅맨 = 신인왕 전통
1순위로 뽑힌 대형빅맨들은 대부분 어렵지 않게 신인상을 수상했다. 서장훈은 데뷔시즌 평균 14리바운드로 외국선수 포함 전체 1위에 올랐음에도 신인상을 신기성에게 내줬다. 당시 ‘서장훈은 신인이 아니다’라는 이미지가 작용했다. 동료 현주엽 역시 나쁜 팀 성적으로 각광받지 못했다. 이후 김주성부터 김종규, 이승현에 이르기까지 대형선수들은 모두 신인상을 독식해왔다.
KBL은 ‘빅3’ 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을 더 빨리 데뷔시키기 위해 드래프트 일정을 기존 2월에서 10월로 당겼다. 그 결과 졸업도 하지 않은 대학생 선수들이 프로데뷔를 하게 됐다. 김종규는 2013년 11월 1일 홈구장 창원에서 데뷔했다. 후보로 나온 김종규는 20분 25초를 뛰며 9점, 6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대학시절 라이벌이었던 오세근과 대결이 관심사였다. 오세근(4점, 4어시스트, 2스틸)은 몸이 좋지 않아 12분 출전에 그쳤다. LG는 72-85로 대패를 당했다. 김종규에게 잊고 싶은 데뷔전 기억이다.
최근에는 ‘두목 호랑이’ 이승현이 돋보이는 빅맨이다. 이승현은 2014년 10월 11일 고양에서 프로 첫 상대로 삼성을 만났다. 장재석이 선발로 나왔고, 이승현은 후보였다. 이승현은 슈팅난조로 4점, 3리바운드, 3스틸, 2블록슛을 기록했다. 지금처럼 궂은 일이 돋보였으나 3점슛은 아직 장착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오리온이 79-72로 이겨 이승현은 데뷔승의 맛을 봤다.
자, 이제 이종현 차례다. 지명 후 3개월 이상 재활에 매달려온 이종현은 이미 신인상 수상 자격을 박탈당했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종현 시대’는 이제 막 시작이다. 과연 이종현의 역사적인 데뷔전 성적은 어떨까. / jasonseo34@osen.co.kr
[사진] KBL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