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윤(31·SK)의 2016년 시작은 사실 모든 것이 불투명했다. 2015년 7월 SK로 트레이드된 이후 4번 타자로 맹활약하기는 했지만 풀타임은 처음이었다. 4번의 짐을 이겨낼 수 있을지도 뚜껑을 열어봐야 알았다. 정의윤은 “지난 시즌 전에는 주위에서도 우려가 있었고, 솔직하게 나 자신도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떠올렸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성적은 괜찮았다. 정의윤은 지난해 타율 3할1푼1리, 179안타, 27홈런, 100타점을 기록했다. 모두 개인 최고의 성적이었다. 무엇보다 144경기 전 경기에 뛰었다. 중간중간 아픈 곳도 있었지만 기나긴 페넌트레이스를 완주했다. 마치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실험해보고자 하는 듯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후반기 다소 부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4번 타자로 100타점을 쌓았다.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귀중한 자양분을 얻은 시기였다.
그러나 정의윤은 만족하지 못한다. 지난해 어느 정도 성적이 나 한결 여유를 가질 법은 한데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오히려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지우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시즌 준비를 똑같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상 불안하고,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야구와 싸우는 모습도 지난해와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어쩌면 아직 스스로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안함이 그 결정적 이유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욕심만 앞세웠다는 것이 정의윤의 솔직한 고백이다. 정의윤은 “한 시즌 동안 꾸준하지 못했다. 팀에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중심에서 그렇게 야구를 하는데 팀이 잘 될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전 경기 출전이라는 개인의 야심찬 목표가 어느덧 팀이라는 대명제에 앞서 있었던 것이다. 정의윤이 처절하게 반성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그럴까. 정의윤은 한층 성숙해졌다. 개인보다는 팀 성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말한다. 올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는 정의윤이지만 개인적인 욕심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일단 팀이 잘 돼야 개인적인 과실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정의윤은 “개인적인 부진도 있지만 지난해는 팀 성적이 너무 아쉽다. 아무리 잘해도 팀 성적이 안 나면 팀 분위기가 살지 않더라”고 입술을 깨문다. 그간 큰 경기 경험이 별로 없었는데 그에 대한 욕심도 덩달아 생겼다.
이처럼 ‘팀’이라는 단어에 새로 눈을 뜬 정의윤이다. 그런데 나머지 가슴 한켠도 새로운 단어가 채우고 있다. 바로 ‘가족’이다. 2015년 말 혼인신고를 한 정의윤은 팀의 가고시마 마무리캠프에 합류하느라 제대로 된 결혼식도 하지 못했다. 그런 사정을 이해해준 아내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지난 시즌 막판에는 귀여운 딸도 얻었다. 정의윤은 “딸이 예뻐 죽겠다. 비시즌에는 육아에 전념했다”라고 껄껄 웃는다.
정의윤은 그라운드에서 스트레스가 많은 선수다. 운동이 잘 안 될 때는 다른 방법도 찾아보는 것이 좋지만 정의윤은 시즌 끝까지도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냥 성이 풀릴 때까지 야구 방망이와 씨름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정의윤은 요즘 그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정의윤은 “가족들의 얼굴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는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팀과 가족. 적어도 FA라는 단어보다는 더 따뜻한 글자들이 정의윤의 2017년을 이끌고 있다.
2017년 프리뷰
부동의 4번 타자가 됐지만 정의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트레이 힐만 감독의 부임으로 팀이 새 판을 짤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의윤도 “새로운 감독님이 오셨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의지를 다진다. 지난해 풀타임 경험이 한 시즌을 풀어나가는 방법론적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면 올해는 더 나은 성적을 예상할 수 있다. 타점 생산 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을 마쳤다. 공격적인 성향을 좀 더 현명하게 이용해 출루율을 끌어올리면 금상첨화다. 타율·홈런·타점에서 지난해 수준의 성적을 유지하고 출루나 수비에서 더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임을 증명한다면 FA 시장도 그리 춥지 않을 전망이다. 리그의 우익수 중 정의윤만큼 장타를 쳐낼 수 있는 선수는 많지 않다. 건강하게 한 시즌을 보내는 것은 기본 과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