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선수들에게 큰 영광이다. 일생일대의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개인 성적에는 위협이 되기도 한다.
시즌 전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그런 양날의 검을 숨기고 있는 대회다. 대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시즌 중반이나 막판인 여름이나 가을에 열린다. 2015년 신설된 프리미어12는 아예 시즌이 끝난 뒤 개최된다. 컨디션 조절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WBC는 개막 직전인 3월에 열린다. 선수들은 시즌에 맞춘 각자의 예열 방식이 있다. 하지만 WBC는 그 루틴을 깨고 좀 더 빨리 발전기를 돌려야 한다.
당연히 부담이 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WBC에 불참하는 이유, MLB 구단들이 WBC 차출에 부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력적 문제가 가중될 수도 있고, 부상에 노출될 수도 있다. 어찌됐건 선수들의 연봉은 구단이 지급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이기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올해는 두산이 그런 딜레마를 안고 있다. WBC에 가는 건 좋은데, 차출 선수가 너무 많다.
KBO(한국야구위원회)는 20일 소속팀의 반대로 대회 출전이 어려워진 외야수 추신수(텍사스) 대신 박건우(두산)를 대체 선수로 선발했다. 박건우는 지난해 132경기에서 타율 3할3푼5리, 20홈런, 83타점, 17도루를 기록하며 단번에 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발돋움했다. 당초에는 예비 엔트리 명단에도 없었지만 김현수(볼티모어) 추신수의 이탈로 최종 엔트리까지 올라섰다.
이로써 두산은 이번 대표팀에 총 7명(장원준 이현승 양의지 김재호 허경민 민병헌 박건우)이 차출됐다. 지난 3회 대회 당시 삼성 소속 선수들이 6명 차출됐었는데 이를 뛰어 넘는다. 물론 뛰어난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대표 발탁에 대한 특별한 이의는 없다.
하지만 소속팀으로서는 그렇게 반갑지 않은 일이다. 위험도와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애리조나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두산이기에 7명의 선수들은 사실상 올해 팀 전지훈련에 엉덩이를 붙이기 힘들다. 한 관계자는 “선수들은 소집되는 기간 동안 FA 일수도 보상받는다. 대놓고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각 팀 프런트는 이것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종전 WBC에 출전했다 성적이 떨어진 스타 선수들도 부지기수다. 두산으로서는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2005년과 2006년 KBO 리그에서 모두 뛴 투수들의 성적을 놓고 보면 거의 대부분의 평균자책점이 전년보다 높아졌다. 박명환 배영수 손민한 오승환의 경우는 소폭이지만 평균자책점이 올랐고 승수도 떨어졌다. 세 선수 중 10승을 거둔 투수는 손민한 뿐이었다. 전병두는 3.00에서 4.35로, 정대현은 0.37에서 1.94로 올랐다. MLB에서 뛰던 선수들도 정작 시즌 기록에서는 손해를 봤다. 서재응의 성적은 사실상 추락이었다.
타선에서는 주축으로 뛰었던 김태균(0.317→0.291), 이종범(0.312→0.242), 이진영(0.291→0.273), 이범호(0.273→0.257) 등의 타율이 꽤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이들의 전반적인 기여도는 2005년에 비해 못했다. 나머지 선수들도 거의 대부분 타율이 떨어진 축이었고 유의미하게 오른 선수는 박진만 정도에 불과했다. 김동주는 대회에서 슬라이딩을 하다 어깨를 다쳐 2006년 시즌을 사실상 날리기도 했다.
가장 많은 경기를 소화하며 가장 치열한 대회를 펼쳤던 2회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유독 WBC에 출전한 선수들이 시즌에 들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회에 출전한 투수 13명 중 10명은 전년도에 비해 평균자책점이 올랐다. 장원삼(2.85→5.54), 윤석민(2.33→3.46), 오승환(1.40→4.83), 이재우(1.55→3.88), 손민한(2.97→5.19)의 저하는 도드라졌다. 타석에서도 15명 중 11명의 타율이 떨어졌다. 타율만 놓고 시즌을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최정 고영민 강민호 박기혁 이용규 이종욱 등의 하락폭은 너무 컸다.
1라운드에서 탈락해 몇 경기 뛰지 않은 제3회 대회는 그나마 후폭풍이 덜했다. 하지만 박희수 유원상 노경은 서재응 윤석민 장원삼의 평균자책점은 올라갔고 진갑용 강민호 강정호 이승엽 김태균의 타율은 2~5푼 정도 떨어졌다. WBC에 출전했던 선수들도 “분명 여파는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삼성의 경우 2013년 통합 우승을 차지했던 경력도 있다. 두산의 2017년은 어떻게 흘러갈지 관심이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