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래가 창창한 에이스였다. 그러나 한순간의 잘못된 유혹에 빠진 대가는 참담했다. 결과적으로 다시는 야구공을 쥘 수 없는 신세가 됐다. 박현준(31)의 이야기다.
사이드암으로 강속구를 던지는데다 명품 포크볼까지 장착하고 있었던 박현준은 2011년 29경기에서 163⅔이닝을 던지며 13승10패 평균자책점 4.18을 기록, LG의 차세대 에이스로 우뚝 섰다. 그러나 그 화려한 성적 속에 ‘부정’이 섞여 있었다. 고의로 볼넷을 주는 방식으로 경기 일부를 조작했고, 결국 이 사실이 들통 나 KBO(한국야구위원회)로부터 영구실격 처분을 받았다. 승부조작으로 영구실격된 첫 케이스였다.
잠깐은 화제를 더 모았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부정적인 이미지만 꼬리를 물었다. 그랬던 박현준은 13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3일 대전에서 열린 ‘2017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무대였다. 부정을 저질러 KBO에서 영구 실격된 박현준이다. 미래가 창창한 신인 앞에 서는 것은 이론적으로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쩌면, 박현준은 다른 선수들과 다른 방식으로 진심 어린 ‘속죄’를 하고 있었다.
KBO는 이날 프로선수가 갖춰야 할 도덕성, 부정방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박현준을 불렀다. 사실 이 교육은 매년 있었다. 다른 ‘도덕적인’ 이들이 선수들의 귓전이 따가울 정도로 ‘부정방지’를 외쳤다. 그러나 생생함은 덜했다. 경험과 아픔이 없는 초빙인사의 이야기는, 뭔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KBO도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박현준에게 이날 강연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현준도 용기를 냈다. 박현준은 이날 강연에서 “제가 KBO에서 연락을 받고 부정방지 교육을 해달라고 했을 때 '내가?' 이런 생각이었다. 여러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라면서도 “생각을 해보니까 내가 여기 와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 같다. KBO에도 상처였고, 안 좋은 선례를 남겼기 때문에 내가 지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여기 오게 됐다”고 후배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짧았지만, 강렬했다. 후배들도 경청하며 또 한 번 다짐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이날 강연이 박현준의 신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전혀 없다. 더 이상 언급이 되지 말았으면 하는 박현준의 바람대로, 다시 내일이면 그의 이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박현준은 진심을 보였고, 자신의 아픈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후배들에게 생생한 메시지를 남겼다. 쉽지 않은 일을 했다. KBO도 과오를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과거의 반성을 통한 건전한 미래를 모색했다. 작지만 의미가 큰 자리였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일탈 행위가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음주운전, 약물, 승부조작, 불법도박까지 팬들을 한숨짓게 하는 죄목도 다양하다. 다만 승부조작을 제외한 선수들은 거의 대부분 현장에 돌아왔다. 그러면서 “야구를 잘해 야구장에서 빚을 갚겠다”라고 한다. 물론 그것도 속죄의 방법 중 하나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야구만 잘하면 다 된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오히려 박현준의 케이스가 더 큰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다. 박현준의 강연이 묘한 메아리를 던지는 이유이자, 연단에 설 다음 선수가 기대되는 이유다. /skullboy@osen.co.kr
[사진] 대전=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