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에이전트(FA)라는 단어와는 인연이 없었다. FA 자격을 얻은 용덕한(36)과 조영훈(35)이 FA 시장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계약에는 수많은 변수가 있다지만, FA 보상제도의 문제점이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NC는 13일 조영훈과의 FA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2년 총액 4억5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중장거리 유형의 좌타 1루 자원으로 가치가 있었으나 시장은 냉정했다. 계약금 1억 원을 빼면 2년간 연봉은 3억5000만 원. 조영훈의 지난해 연봉이 1억1000만 원임을 고려하면 FA를 통한 연봉 인상폭은 크지 않았던 셈이다.
그나마 조영훈은 현역 생활을 이어간다는 측면에서 낫다. 조영훈과 마찬가지로 30대 중반의 나이에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용덕한은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불러주는 구단이 없었고 결국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채 코치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야구계에서는 “차라리 FA 자격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현역을 더 이어갈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두 선수가 시장에서 찬밥 신세가 된 것은 역시 FA 보상제도 때문이다. 현행 FA 보상규정은 해당선수의 연봉 200%에 보상선수 1명, 혹은 연봉 300%로 규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팀들이 전액 보상금보다는 보상선수 1명을 받기를 원한다. 두 선수로서는 이게 걸림돌이었다. 냉정히 두 선수의 현재 기량이 특급은 아니다. 개다가 30대 중반의 선수를 영입하면서 보상선수 출혈을 감수할 만한 팀은 사실상 없었다. 고전은 예견된 일이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최근 논의되고 있는 ‘FA 등급제’가 시행됐다는 가정이다.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두 선수가 이렇게까지 고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용덕한의 지난해 연봉은 8500만 원, 조영훈은 1억1000만 원이었다. 연봉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눈다고 해도 A급은 아니었을 것이 확실하다. 어떤 식으로든 보상선수가 필요하지는 않은 영입이었다.
폭이 확 넓어진다. 우선 조영훈은 타격에서 꾸준히 가치를 뽐내왔다. 2015년에는 103경기에서 타율 2할8푼2리, 지난해에는 109경기에서 3할3푼5리를 기록했다. 2015년 장타율은 0.540, 2016년 장타율은 0.497이었다. 물론 에릭 테임즈라는 확실한 1루수에 가려 주로 백업 신세였지만 1루가 약하거나 왼손 타자 보강 필요성이 있는 팀에게는 괜찮은 자원이다.
실제 기록을 보면 2년 4억5000만 원 이상의 가치는 충분하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다는 점은 있지만, 조영훈의 지난해 RC/27(동일타자로 라인업을 구성했을 때 아웃카운트 27개당 득점 추정치)은 7.94였다. 이는 에릭 테임즈(11.89), 박석민(8.33)에 이은 팀 내 3위 기록이었다. 나성범(7.68)이나 이호준(7.37)보다도 높았던 셈. 조영훈의 RC/27과 wRC+ 수치는 웬만한 타 팀 주전 1루수들을 넘어선다.
용덕한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용덕한은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프로 통산 653경기에 출전한 경험 많은 포수다. 그렇다고 무리한 연봉 조건을 요구한 것도, 무리한 다년 계약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주전이라고 생각하기도 어려운 처지였다. 포수가 약한 팀, 특히 젊은 포수를 키우는 팀으로서는 ‘백업 포수’로 용덕한이 매력적일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실제 오프시즌 중 포수 자원 확보에 나선 팀들도 적잖이 있었다. 삼성은 최경철을 영입했고, kt는 테스트 끝에 이준수와 계약했다. 계약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SK도 두 명의 포수를 공개 테스트하는 등 리그의 포수난이 실감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용덕한은 저렴한 연봉, 짧은 계약 기간 등 몇몇 측면에서 계약적 이점이 있는 선수였다. 그러나 보상규정이라는 장벽은 견고했다. 리그 전체적으로 잉여 전력이 많아지고, 도태된다는 점에서 손해가 될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용덕한(왼쪽)-조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