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뮤직]악동뮤지션과 개코&황광희, 음악의 진정성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7.01.07 08: 3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악동뮤지션의 ‘오랜 날 오랜 밤’과 개코&황광희(피처링 오혁)의 ‘당신의 밤’이 가요 차트에서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K팝이 이끄는 한류열풍의 선두엔 아이돌그룹이 우뚝 서있고, 그 인기는 이미 국내 가요계를 그들이 주도하는 현상에서 충분히 입증되고 있지만 가요 차트나 음원판매는 사뭇 양상이 다르다. 그 이유는 음악의 진정성에 있다.
최근 가요 차트 선두권엔 위의 두 곡과 더불어 tvN 드라마 ‘도깨비’의 주제곡인 크러쉬의 ‘Beautiful’이 등재돼있다. ‘당신의 밤’은 MBC ‘무한도전’이 최근 진행한 ‘역사×힙합 프로젝트: 위대한 유산’의 일환으로 제작된 곡이다. 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은 것은 맞지만 그 속엔 음악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지에 대한 답이 담겨있다.
‘오랜 날 오랜 밤’은 ‘밉게 날 기억하지는 말아줄래요/ 아직도 잘 모르겠어/ 당신의 흔적이 지울 수 없이 소중해‘라는 가사에서 보듯 헤어진 연인을 잊지 못하면서도 함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대중가요의 단골 소재는 사랑과 이별이다. 이별 노래는 대부분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상대방을 원망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기 마련이다. 하지만 악동뮤지션의 노래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다. 아픈 건 아픈 거고, 헤어진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니 당당하게 현실로 받아들이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자는 긍정의 메시지다.
‘오랜 날 오랜 밤’도 마찬가지. 멜로디는 밝은 메이저 코드로 진행되고, 미디엄 템포가 16비트의 경쾌한 리듬을 타면서 빠르기와 느리기를 오간다. 이수현의 목소리는 청아하고, 이찬혁의 그것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도깨비’ 같은 메가톤급 히트 드라마의 지원사격도,자극적이거나 원색적인 요소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힐링 송’이라며 열광하는 이유다.
편곡은 매우 정형화된 패턴이다. 잔잔한 피아노의 인트로에 이어 이수현의 리드보컬이 등장하면서 어쿠스틱 기타의 배킹이 더해진 뒤 드럼이 입혀지고 이어 일렉트릭 기타와 스트링이 사운드를 풍부하게 채워준다. 마치 중세 후기의 미뉴에트 소곡을 듣는 상쾌한 느낌을 준다.
이찬혁이 직접 작사 작곡하는 악동뮤지션의 창작곡들은 ‘K팝스타’의 이진아의 음악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게 강점이자 개성이다. 거의 모든 뮤지션들이 장르라는 케이지 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족쇄를 한탄하는 아이러니한 자가당착(언행불일치의 모순)을 범하지만 악동뮤지션은 절대 그렇지 않고 매우 자유스럽다.
그들의 음악은 클래식과 재즈에 기반을 둔 유재하에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장르 파괴를 넘어 고유의 장르 아닌 장르를 창조한다는 점에선 요즘 뮤지션 중 단연 유니크한 개성을 자랑한다. 뉴에이지 크로스오버 제3세계음악 등 세상의 모든 음악을 녹여 넣거나 초월한다는 점에선 독보적이다.
틀에 박힌 정규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만든 가정교육의 힘이 많은 보탬이 된 듯하다. 이찬혁은 자유와 정서에 근거한 창작에 노력하는 것을 역력히 드러낸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인생과 물 흐르는 듯한 자연과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마인드로 접근하는 진정성에 근거한 창작이 거짓과 무질서에 지친 대중의 피로감에 회복제로 제대로 작용한다.
‘록 윌 네버 다이’는 록의 저항정신의 영속성을 주장한 로커와 록마니아들의 캐치프레이즈다. 이걸 잘못 해석한 사이비로커들은 그냥 머리를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채 괴성에 욕을 섞는 게 록이라고 착각한다.
힙합은 반항의 문화다. 기성세대의 기득권 지키기와 각종 차별과 사회적 불평등에 반기를 들자는 정서다. 이걸 곡해한 사이비들은 무조건 경찰과 싸우고 부자의 돈을 빼앗자고 덤벼든다. 가사엔 온통 폭력조장과 폭행맹신과 편 가르기 뿐이다.
개코는 힙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다. 이게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바로잡자는 정신을 실천하는 ‘무한도전’ 제작진의 웅대한 프런티어 정신의 산물이라고 하더라도 김정희의 실사구시(사실에 입각해 진리를 탐구하는 태도) 정신을 제대로 이어받은 철학적 뮤지션의 자세임은 분명하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모티프를 얻은 ‘때론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할 때/중략/ 난 왜 느끼지 못하고 외우려했을까/ 용기내지 못하고 뒤로 숨으려 했을까/중략/ 나의 이름 나의 나라가 부끄럽지 않게 오늘도 나아가야지/ 뒤돌아 걸어가는 시대 뒤에 고개 숙인 내가 밉다’라는 가사는 정말 온몸이 전율하도록 만든다.
정권찬양 노래를 만들라는 박정희의 겁박을 무시한 채 ‘아름다운 강산’이란 대서사시를 만든 신중현의 독립음악인적 정신을 계승한다. 역사와 현실의 진정성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동주’를 통해 무려 110분이란 시간 속에서 윤동주의 삶과 시적 세계와 나라 잃은 젊은이의 고뇌를 담아냈다면 개코는 고작 4분여 안에 그에 못지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예술적 콘텐츠를 담아냈다.
북한의 역사는 이성계를 반역자로 가르친다.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의 반면교사다. 가요 하나가 이렇게 역사와 민족혼을 바로잡으려하고 강조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대중문화 종사자와 창작자들에게 훈육(교육이 아니다)하는 바가 크다.
‘매일 울리는 벨벨벨/ 이젠 나를 배려해줘/ 배터리 낭비하긴 싫어/ 자꾸만 봐 자꾸자꾸만 와/ 전화가 펑 터질 것만 같아/ 몰라 몰라 숨도 못 쉰대/ 나 때문에 힘들어/ 쿵 심장이 떨어진대 왜/ 걔 말은 나 너무 예쁘대’. 가온차트 집계 지난해 스트리밍 서비스 1위를 차지한 트와이스의 ‘Cheer up’ 가사 일부다.
한국인이라고 반드시 김치와 된장찌개만 먹으란 법은 없다. 때론 햄버거로 배를 채운 뒤 디저트로 롤리팝을 깨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식단이 서양식 인스턴트식단으로 바뀌면 곤란하다. 건강도 문제지만 전통문화의 순차적인 붕괴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의 첫째 순기능은 감동과 공감이고 반드시 치유와 휴식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취미를 말할 때 ‘음악감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낚시 등산 등은 감상이라고 안 한다. 음악감상과 영화감상은 행동이나 엔조이와 달리 가슴으로 느낌으로써 즐기는 정신적 명상행위에 가깝다.
따라서 뮤지션이나 창작자들이 대중을 움직이고 그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공감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은 진성정과 정서에 있다. 오랫동안 우리가 소울뮤직을 홀대했던 이유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 정서에 있다. 샘 오취리의 최근 발언이 증거다.
하지만 현재 소울에 근거한 R&B와 힙합은 우리 대중가요의 주류다. 심지어 발라드도 ‘소몰이창법’으로 부른다. 그 이유는 유럽인들에 의해 아메리카대륙에 노예로 끌려와 갖은 설움을 이겨내며 창조한 음악이 블루스고, 그게 록을 만들었으며, 록이 K팝을 비롯한 세계대중음악의 근거가 됐다는 역사는 몰라도 블루스와 록의 정서와 진정성을 가슴으로 저절로 느끼게 됐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독립의 역사 대신 유럽의 흑인노예의 강제이주 역사를 먼저 배웠다면 보다 더 빨리 블루스와 힙합의 진정성에 접근했을지도 모른다.
악동뮤지션은 제도권 음악계와 다른 길을 걷는 악한 뮤지션(크리에이터)이 되겠다는 뜻일 것이다. 개코는 별 볼 일 없이 하찮은 것을 경멸하는 개뿔과 같은 비속어다. 이런 자아비판은 사실 상업성에 물든 제도권의 음악인들에게 비아냥대는 은유다.
대중이 전적으로 악동뮤지션의 음악성과 개코의 역사의식을 이해하고 그에 근거해 이들의 음악을 열렬히 성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철학과 메시지를 떠나 음악 자체의 진정성 하나만큼은 제대로 감지했기 때문인 것만큼은 자명하다./osenstar@osn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Y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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