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으로 선두를 질주하는 우리은행. 하지만 가장 승리에 굶주려 있다. 이유가 있다.
아산 우리은행은 5일 아산 이순신체육관에서 벌어진 삼성생명 2016-17 여자프로농구 4라운드서 청주 KB스타즈를 71-51로 물리쳤다. 6연승을 달린 우리은행(19승 1패)은 새해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최하위 KB스타즈(6승 14패)는 4연패의 늪에 빠졌다.
가뜩이나 선수가 모자란 여자프로농구는 유망주들의 잇따른 이탈로 비상이 걸렸다. 비시즌 국가대표 주전가드 이승아(25, 전 우리은행)이 임의탈퇴를 했다. KDB생명은 전보물, 구슬, 허기쁨, 최원선 등 퓨쳐스리그 우승주역들이 대거 운동을 그만뒀다. 여기에 4일 부상치료 중이던 홍아란까지 임의탈퇴를 결심했다.
우리은행은 이승아의 이탈에도 불구 굳건하게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대표로 성장한 가드 이은혜가 공백을 메웠다. 이은혜가 부상으로 빠진 뒤에도 다른 선수들이 대신 활약하고 있다. 통합 4연패를 이룬 우리은행이지만, 올 시즌 전력이 가장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그럼에도 독보적 선두질주는 변함이 없다.
비결로 우리은행의 팀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박혜진, 임영희, 양지희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랭킹 1위를 유지하는 선수들이다. WNBA에서 뛰는 두 외국선수로 프로의식이 강하다. 여기에 ‘최고’라는 자부심이 더해져 빈틈을 찾을 수 없다. 대승을 거둬도 경기내용이 나쁘면 반성하는 것이 우리은행 주전들이다.
과거 프로무대를 잠시 떠났다가 복귀한 절실한 선수들도 많다. 2014년 우리은행을 떠났던 최은실(23)은 복귀 후 맹활약하고 있다. 공백기간 피자가게 등을 전전했던 그는 운동에 대한 절실함으로 실업팀을 거쳐 복귀를 결심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던 홍보람도 마찬가지. 은퇴 후 카페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2014년 이후 프로무대를 떠났던 이선화는 공백기간을 거쳐 실업팀에서 뛰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올 시즌 우리은행으로 돌아왔다.
사회의 냉정한 현실과 마주했던 세 선수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뛰고 있다. 선수가 운동을 그만뒀을 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 농구공에 수 십 년 인생을 바친 선수들은 결국 농구공을 잡을 때가 가장 행복하기 마련이다. 1쿼터 후반에 투입된 최은실은 악착같이 코트를 누볐다. 상대를 집요하고 쫓고, 기회가 되면 3점슛도 성공했다.
최은실은 “나가서 생활해보니 더 힘들었다. 학생부터 성인 될 때까지 농구를 해오다가 밖에서 해보니 더 힘들었다. 무작정 쉴 수 없어 알바도 해봤다. 확실히 처음 하다 보니 힘들었다. 부모님이 운동을 계속하라고 하셨지만, 내가 아무것도 안 들리는 상황이었다. (프로에서) 안 나갔으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내 생각이 짧았다. 돌아오니까 좋다”며 빙긋이 웃었다.
우리은행의 훈련은 독하기로 소문났다. 복귀한 선수들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하고 있다. 위성우 감독은 “최은실이 ‘전 절대 관두지 않습니다’라고 하더라. 고교 졸업 후 운동만 하던 선수들은 대학에 다녀오는 것도 방법이다.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느껴봐야 운동도 잘할 수 있다”고 했다.
홍아란의 선택에는 한국여자농구가 갖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도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프로에 직행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은 사회생활을 해볼 기회 자체가 없었다. 프로생활의 대부분이 선후배 문화 안의 합숙생활이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어린 선수들이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신세대 선수들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이 지도자 및 고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배경도 있다.
다만 홍아란이 뚜렷한 대책 없이 시즌 중에 운동을 관둔 것은 너무 책임감이 없다는 지적이다. 여자프로농구선수들이 ‘프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아울러 WKBL도 선수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시기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최은실(위), 홍보람(중), 이선화(아래) / 아산=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