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영광이 여러 곳에서 희미해지고 있는 SK가 갈림길에 섰다. 2017년은 점진적 리빌딩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이자, 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립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SK의 향후 5년, 10년을 좌우할 가능성이 크다. 좀처럼 중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성적에 구단 관계자들도 이 명제에 공감하고 있다. 지난 해 감독 및 단장 동시 교체라는 강수는 조직 내부의 긴장감과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이 ‘골든타임’에 SK를 관통할 5가지 물음을 뽑았다.
물음 ① 힐만 바람은 일어날 것인가
SK는 외국인 감독 선임으로 첫 단추를 뀄다. 미국과 일본에서 모두 감독직을 경험한 인물이자, 지도자 경력이 풍부한 트레이 힐만 감독에 2년 180만 달러(약 21억8000만 원)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감독 교체는 그 자체로 팀 분위기를 바꾼다. 하물며 파격적인 외국인 감독 선임에 코칭스태프까지 대대적으로 개편했으니 분위기 쇄신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주장도 이제는 80년대 중·후반 선수들이 바턴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래나 저래나 변화가 크다.
외국인 감독의 기본적인 장점은 ‘선입견’이 없다는 것이다. 고정관념도 상대적으로 옅다. 과감한 쇄신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본 토대다. 또한 그간 KBO 리그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다양한 방법론이 나올 수 있다. 힐만 감독은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시절에도 그런 단계를 거쳐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이끌었다. 때로는 위로부터 부는 바람이 더 강력할 때가 있다. 왕조 시절과는 뭔가 다른 문화가 팀을 지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물음 ② 깜짝 선발은 나타날 것인가
SK는 비교적 괜찮은 마운드를 가지고 있다. 불펜 쪽은 어느 정도 세대교체도 이뤄지고 있는 흐름이다. 그러나 선발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새롭게 나타난 선수라고 해봐야 박종훈 정도다. 비교적 짜임새 있게 돌아갔던 선발진은 역설적으로 새 선수의 등용을 막았다. 하지만 올해는 ‘에이스’ 김광현이 팔꿈치 부상으로 빠진다. 큰 위기지만, 그간 하지 못했던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외국인 선수 두 명(메릴 켈리·스캇 다이아몬드), 그리고 토종 우완 에이스인 윤희상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선발 3년차를 맞이하는 박종훈은 이제 두 자릿수 승수를 목표로 해야 하고, 지난해 임시 5선발을 맡았던 문승원 임준혁은 존재감을 더 높여야 한다. 그 외 이건욱 김성민 김태훈으로 대표되는 신예 선수들의 성장 여부도 관심사다. 4·5선발의 선전은 팀 미래는 물론 올 시즌 팀 성적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물음 ③ 위기의 베테랑, 존재가치 증명할까
왕조의 주역들을 이뤘던 베테랑 선수들은 지난해 나란히 고개를 숙였다. 부상 및 부진으로 기대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한 탓이다. 이제 30대 중·후반의 나이가 된 1981·82년생 선수들이 기로에 섰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 반등한다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다. 반면 올해도 그래프를 꺾지 못할 경우 세대교체의 구호 속에 급격히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중견수 김강민 정도를 제외하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경쟁이 될 공산이 크다. 박재상 조동화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후배 외야수들과 경쟁해야 한다. 2군에서 올라올 선수들도 가파른 상승세라 경쟁률은 지난해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지 않다. 박정권은 한동민과 경쟁하고, 이대수는 20대 초반 내야수들의 기세를 꺾어야 한다. 다른 구단도 마찬가지지만, SK가 젊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2017년은 생존을 위한 사투가 될 공산이 크다.
물음 ④ 공갈 타선 오명 씻을 수 있나
SK는 지난해 팀 홈런 2위를 기록했다. 장타력 증강 프로젝트가 효과를 봤다. 팀 방향성 변화의 첫 성공이었다. 올해 장타력은 지난해 이상을 기대할 만하다. 최정 정의윤이 절정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한동민 최승준 김동엽이 부상 없이 한 시즌을 소화한다면 적어도 지난해에 비해 20개 이상의 홈런포를 더 기대할 수 있다. 팀 200홈런도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장타력은 그만하면 됐다.
문제는 출루율, 주루 등 세밀한 플레이에서의 개선이다. SK는 지난해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했다. 한 방에 의존한 야구는 공격력의 기복, 나아가서는 경기력의 기복을 부르며 주저앉았다. 힐만 감독이 강조한 것도 “팀 경기력의 일관성”이다. 출루율과 주루 부문의 개선은 올해도 타선의 가장 중요한 화두다. 어찌 보면 몇 년째 향상되지 않고 있는 난제인데, 올해는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더 늦으면 ‘다 뜯어고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수 있다.
물음 ⑤ 시스템 정비는 순탄할까
2년 전부터 육성에 전력투구하는 동시에 구단 시스템도 하나둘씩 바꿔가고 있는 SK다. 선수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시즌 운영에 대한 매뉴얼도 수정·보완하고 있다. 세이버매트릭스를 도입하고, 올해는 구단 조직까지 획기적으로 바꾸는 등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전체적으로는 메이저리그식을 지향하는 움직임인데 이제 조금씩은 정착 단계로 가야 한다. 이런 시스템에 ‘호흡’이 잘 맞을 수 있는 힐만 감독의 부임은 SK에 커다란 기회다.
그러나 더 정교해져야 한다. 힐만 감독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받을 만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지는 검증이 된 것이 없다. 올해의 승부처는 여기가 될 수도 있다. 한편 MLB 방식을 한국에 접목시킨 참신한 아이디어도 꾸준히 나와야 한다. 또한 그 시스템을 오랜 기간 유지하고 보수할 수 있는 장기적 인재 육성과 배치도 필요하다.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시스템이 대표적인 과제다. 결국 숫자를 해석하는 것도,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도 사람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