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드라마]'도깨비' 신드롬, PPL 넘쳐도 꼭 봐야될 이유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2.30 15: 2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와 그 주인공들이 인기는 가히 신드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와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대중의 심리와 어떤 관계일까?
고려 장수 김신(공유)은 전쟁터에 나가 승승장구하지만 간신(천우진)의 감언이설에 판단력이 흐려진 19살 왕은 역모죄를 씌워 그를 죽인다. 그 과정에서 신의 동생이자 왕비인 김선마저도 죽임을 당한다.
신은 신(神)의 저주에 의해 가슴에 장검이 박힌 채 불멸의 존재로 환생해 현대에 이른다. 도깨비 신부를 만나야만 그 검을 뽑을 수 있고, 그럼으로써 비로소 무(無)로 되돌아가 영생할 수 있는 기구한 운명.

그는 유 씨 가문을 가신으로 삼아 ‘금 나와라 뚝딱’하는 재주로 그 집안을 재벌로 성장시키고 자신도 부를 쌓아왔다. 현재 가신 유신우(김성겸)의 손자인 덕화(육성재)와 저승사자(이동욱)와 함께 한 집에서 산다.
여고 3년 지은탁(김고은)은 19년 전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던 어머니가 신에게 부탁해 살아났지만 어머니를 잃고 이모 집에서 온갖 구박과 핍박을 받으며 자라온 고아다. 그녀는 써니(유인나)가 운영하는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수능시험을 치른다.
은탁은 도깨비 신부고 부자인 신에게 찰싹 달라붙어 경제를 포함한 보호를 받는다. 신은 은탁의 정체를 알고 오랜 저주를 끊을 기회를 잡은 것을 기뻐하지만 이내 사랑에 빠져 발검을 망설인다.
저승사자와 써니는 만나자마자 운명적 상대임을 알고 사랑을 느끼는데 전생에 써니는 선, 사자는 왕이었던 것.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듯 김은숙 작가의 필력과 적재적소의 절묘한 캐스팅이 성공의 첫째 원인이다. 더불어 판타지 멜로 코미디 미스터리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잘 버무린 상상력과 소소한 에피소드마저 그 뜻이 가볍지 않은 디테일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커플의 사랑얘기는 때론 애절한 멜로로, 때론 유치한 시트콤으로 널뛰기를 하지만 유치하다고 헛웃음을 터뜨릴 겨를도 없이 이내 심각한 인생과 연계되는 게 강점이다.
신과 왕의 관계는 신라 김유신과 김춘추의 사돈관계가 연상된다. 정략결혼은 국가유지 혹은 정복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우리 고대국가 형성과정의 신화를 볼라치면 거의 모두가 정략결혼이다. 북부여 출신의 주몽은 졸본부여로 와 공주와 결혼함으로써 왕위를 계승한 뒤 고구려를 건국한다.
이는 현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정재계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사랑보단 정략결혼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유명 스타가 재벌 혹은 정계 유력 인사와 결혼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느새 정-재, 재-재계의 결혼이 트렌드가 됐다. 어쩌다 ‘일반인’이 재벌가에 입성하더라도 이혼할 확률이 높다는 건 사회적 이슈가 입증한다.
은탁은 나이 많은 신이 그동안 숱하게 사랑을 경험했을 것이라고 오해해 “첫사랑은 원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 은탁이 첫사랑인 신은 “누가 그래, 안 이뤄진다고. 싫은데”라고 읊조린다. 그토록 불멸을 끝내고 싶었지만 막상 그 기회를 잡자 첫사랑의 달콤함에 중독돼 망설이는 것이다. 신은 삼신할매(이엘)로부터 “검을 뽑지 않으면 은탁이 죽어”라는 말을 들은 바 있다. 인간의 세속적인 이기심이다.
첫사랑은 모든 상황이 어리숙할 때 발생하기 마련이다. 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사랑은 많기 때문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그걸 경험할 당시의 정신적 미성숙과 경제적 열악함 탓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신은 939살의 30대 외모고, 은탁은 19살이다. 얼핏 보면 재벌과 미성년자의 원조교제일 수도, 불쌍한 고아의 의탁일 수도 있다. 여기엔 교묘한 자본주의의 논리가 숨어있다.
은탁은 신을 만나자마자 그의 엄청난 재산규모에 반해 “난 도깨비 신부. 사랑해요”라고 영혼이 담기지 않은 말을 쉽게 내뱉는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신의 집에 의탁한다. 드라마의 성격상 매우 건전하게 그려지지만 과연 현실도 그럴까? 만약 공유가 일반인이고, 가난하다면 현실의 여고 3년생이 그에게 그렇게 쉽게 사랑을 볼모로 내세울 수 있을까?
은탁은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이모와 사촌들의 압박 속에서 자라서 어리지만 영악하다. 첫사랑인 대학 야구선수보다 잘생기고 부유한 아저씨 신을 선택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유머는 부족하지만 평소 책을 가까이 하고 음악과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 지성과 교양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다. 게다가 아직 숙맥이다. 신을 바라보는 여자 시청자의 시선이다.
남자는 롤리타신드롬이다. 가식 없고 할 말 다 하는 은탁은 귀엽기 그지없다. 도발적으로 사랑한다는 말도 수시로 내뱉고 과감하게 먼저 입을 맞춘다. 천박한 자본주의적 애정관이다.
인간은 산모의 자궁 안에서 여성으로 잉태된 후 일정기간이 지나야 성별이 가려진다. 그래서 동성애자가 존재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잘생긴 공유, 그보다 더 잘생긴 걸로 설정된 이동욱이 티격태격하며 ‘브로맨스’를 펼치는 것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각종 ‘맨’이 설쳐대는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영화의 흥행법이 차용됐다. 공간이동을 하고, 투명인간이 되며, 단칼에 자동차를 이등분하는 초능력은 항상 나약한 인간의 욕망에 불을 지피기 마련이다.
도깨비나 저승사자는 빌려온 설정일 따름이다. 우리 민속설화 속 도깨비는 사람이 죽어 된 귀신과 달리 자연의 사물 혹은 인간의 손때가 묻은 유품 등이 변한 초월적 존재다. 저승사자는 그야말로 사람이 죽어야만 나타나는 사후세계의 안내인이다.
둘은 공존할 수 없다. 도깨비는 다소 어리바리하면서 심술궂고 장난기가 넘치지만 정의감이 앞서고 인간에게 무해한 경우가 더 많으면서 아무 인간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설정돼있다.
이렇게 슈퍼맨이나 좀비가 아닌, 우리에게 친근한 설화 속 주인공에서 차용한 슈퍼히어로에게 멋진 수트를 입혀 등장시키니 남자들은 환상에 빠지고 여자들은 환장하는 것이다.
어쩌면 주변에 한 명쯤 있을 법한 ‘착한 조폭’일 수도 있다. “왜? 다들 아는 도깨비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라는 대사다. 하도 생계형 조폭이 많다보니 적지 않은 사람들의 친분리스트엔 그리 악질적이지 않은 깡패 친구 하나쯤은 있을 수 있다. 때론 그 깡패는 선의의 수호천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오히려 일부 공무원이나 권력자가 더 조폭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이번 최순실게이트다.
귀신은 작가의 영리함을 잘 보여준다. 남은 자식의 생활고가 걱정돼 로또번호를 알려달라는 엄마 귀신, 자신의 텅 빈 냉장고를 보고 가슴아파할 어머니에게 미안해 냉장고를 채워달라는 고시원 귀신, 학생 귀신 등은 이 사회의 차가운 단면을 그대로 반영하는 고발뉴스다.
마지막은 미스터리다. 신용카드에 집착하는 철없는 재벌 3세로 그려졌던 덕화가 할아버지와 달리 신에게 반말을 하며 삼촌이라 부르는 데서 그의 정체가 궁금증을 더해주고, 간신에서 비서로 환생한 자가 전직 사채업자였으며 덕화를 감시하는 가운데 은탁을 극진하게 보필하는 점에서 궁금증이 증폭된다.
삼신할매에게 “난 당신 아이가 아닌가?”라고 신이 묻는 데서, 그리고 삼신할매와 덕화와의 심상치 않은 관계에서, 또 삼신할매가 사자와 써니의 첫 만남에서 뭔가를 암시하는 장면 등에서 미스터리는 깊어만 간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의 체계를 해부하면서도 결국 그 당위성을 역설하는 산업과 이념의 프로파간다의 복합체로 비친다. 무시로 등장하는 아이스크림, 샌드위치, 건강 음료, 카페, 설렁탕, 수건, 치킨, 인스턴트커피, 화장품, 가구부터 사자가 그토록 집착하는 가구회사의 명함까지 한도초과의 PPL이 방점을 찍는다.
‘드라마는 욕하면서 본다’고 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민'에게 연예인의 실제 삶과 또 그들이 꾸민 환상의 세계는 동경할 수밖에 없는 디즈니랜드 그 이상이니까./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tv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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