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글로벌 IT기업 퀄컴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부터 특허권 갑질에 따른 1조 3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 과징금은 공정위 사상 최대이다.
퀄컴은 휴대전화 핵심 부품 중 하나인 모뎀칩셋을 제조하며 시장을 지배해왔다. 이에 대한 표준필수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지난해 251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통해 약 40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문제는 공정위가 이 과정에서 퀄컴의 갑질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퀄컴은 칩셋 특허 라이선스를 타사 칩셋 제조사에 제공하지 않으면서 휴대전화 제조사에게는 불공정한 계약조건을 강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제한 효과에 따른 시정 명령을 내린 셈이다.
이에 퀄컴은 즉각 반발했다. 퀄컴은 "이는 전세계적으로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온, 그리고 퀄컴에 대한 과거 공정위 조사에서 검토되었으나 문제되지 않았던 라이선스 관행들에 대한 것"이라며 "전례도 없었고 결코 유지될 수 없는 결정"이라고 공정위의 결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또 "오히려 칩사들 간의 경쟁 및 휴대폰사들 간의 경쟁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구나 퀄컴의 돈 로젠버그 총괄부사장 및 법무총괄은 서울고등법원에 불복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법정을 통해 가려질 이번 결정은 2~3년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문제가 길어질 것이란 예상이 가능한 것은 또 있다.
일부에서는 퀄컴이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란 점에서 향후 출범할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 압력을 한국에 넣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에서 비롯된 문제가 한미 양국의 무역 분쟁으로까지 번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를 자극할 수도 있다. 퀄컴은 한미 FTA 체결에 따라 미국 기업에 보장돼 있는 절차상 보호조치인 사건 기록 접근권, 반대 신문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또 다른 일부에서는 또 다른 미국 기업인 애플, 인텔 역시 퀄컴 반대편에 서 있는 만큼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빌미로 한국 정부를 압박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애플과 인텔 등 미국 기업들도 심사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퀄컴의 부당함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퀄컴으로서는 과징금보다는 시정명령이 더 문제로 여길 수 있다. 시정명령은 퀄컴의 갑질에 고개를 들 수 없었던 기업들이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자들에 특허를 앞세웠던 퀄컴으로서는 중대한 수익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퀄컴으로서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인 셈이다.
퀄컴으로서는 단순히 과징금을 내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 지배권을 완전히 잃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처럼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퀄컴의 흔들림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는 기업이 삼성전자, LG전자 등이라는 점도 공정위의 믿는 구석이다.
공정위는 지난 4월 다국적 기업인 오라클에 패해 체면을 구긴 적이 있다. 오라클의 소프트웨어 끼워팔기 혐의를 1년간 조사했지만 결국 혐의가 없다고 결정했다. 공정위는 데이터베이스 관리시스템(DBMS) 등을 판매하는 오라클의 끼워팔기식 비즈니스 모델이 공정거래법상 시장지배적 지위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유지보수나 업그레이드가 별개 독립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끼워팔기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퀄컴을 상대로 상당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지난 2014년 8월부터 퀄컴에 대해 의혹을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지난 5월 퀄컴의 공식 답변 후 모두 7차례나 전원회의를 연 후 이번 결정을 내렸다.
시장 지배력을 잃을 수도 있는 퀄컴과 이미 글로벌 기업에 자존심을 다친 만큼 만반의 태세를 갖춘 공정위가 맞붙은 결과는 어떻게 날지는 시간이 제법 걸릴 것으로 보인다. /letmeou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