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구의 홍수 시대지만 투수들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여전히 패스트볼이다. 그 패스트볼에 놀라운 적응력을 선보인 김현수(28·볼티모어)의 내년 전망이 밝아 보이는 이유다.
‘베이스볼서번트’에 따르면 올해 김현수의 패스트볼 계통(포심·투심·커터·싱커) 타율은 무려 3할7푼7리에 이른다. 집계된 167번의 타격 중 63번을 안타로 만들어냈다. 보통 변화구보다 패스트볼 상대 타율이 높은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는 자신의 시즌 타율(.302)보다 훨씬 높다.
이런 기록은 난다는 타자들이 모두 모인 메이저리그(MLB)에서도 최정상급이다. 패스트볼 타율 1위는 올해 내셔널리그 타격 2위였던 다니얼 머피(워싱턴)로 3할9푼3리였다. 한국인 타자 중 패스트볼 유형에 가장 강한 타자라는 추신수(텍사스)의 지난해 타율은 3할2푼6리였다. MLB 첫 해임을 고려하면 김현수의 성적은 고무적이다 못해 완벽하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잘 친 것은 아니었다. 김현수도 시즌 초 “MLB에서는 똑바로 오는 공이 없다. 포심패스트볼이라고 해도 움직임이 좋다”라고 한 단계 높은 수준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현수의 적응력은 이러한 수준을 단번에 뛰어넘었다. 이 기록은 김현수의 적응력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한가운데는 말할 것도 없고 김현수는 상대 투수의 바깥쪽 빠른 공 승부에 훌륭하게 대처했다. 스트라이크존을 9등분했을 때 바깥쪽 패스트볼 상대 타율은 위쪽부터 5할5푼6리, 4할7푼1리, 5할5푼6리에 이르렀다. 올 시즌 우측 땅볼이 많았다는 인상이 있었지만 바깥쪽 패스트볼을 결대로 밀어 치면서 성적이 좋아졌다. 시즌 중반부터 상대 시프트를 무력화시킨 것 또한 이와 연관이 있다.
상대적으로 김현수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은 투수들의 전략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실제 김현수의 안타 타구 방향을 보면 외야로 나가는 타구는 좌측 방향이 많다. 대신 홈런 및 장타 타구는 우측 방향이 압도적이다. 때로는 안타로, 때로는 풀스윙으로 상대 패스트볼을 공략한 것이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이런 스프레이 타격을 하기는 쉽지 않다. 김현수의 타격 기술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구단의 한 타격코치는 김현수의 패스트볼 대처 능력에 대해 “김현수는 상대적으로 게스히팅 유형과는 거리가 있다. 공을 보고 공을 치는 스타일인데 상황에 맞는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 KBO 리그에서 오랜 기간 좋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슬럼프도 크지 않다”라면서 “몸쪽 대처는 어느 타자나 쉽지 않지만 김현수는 선구안도 뛰어나다. 패스트볼 대처 능력은 계속 수준급을 유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현수의 다음 과제는 변화구가 될 수 있다. 특히 좌완 투수들은 시즌 중반 이후 김현수에게 패스트볼을 던지는 비중이 뚝 떨어졌다. 올해 좌완 투수들은 김현수를 상대로 전체 31%를 포심패스트볼로 던졌다. 그러나 8월 이후로 이 비율은 10%까지 떨어졌다. 대신 슬라이더 비중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슬라이더가 김현수가 고전했던 점은 분명하다. 올해 김현수의 체인지업 타율은 2할5푼8리, 슬라이더 타율은 2할, 커브 타율은 1할4푼6리였다.
체인지업은 후반기 들어 많이 극복하기는 했으나 나머지 변화구는 지켜봐야 한다. 상대 투수들이 내년에는 김현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MLB판 타격기계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다만 김현수도 한 시즌을 치르면서 적잖은 시사점을 찾았다. MLB의 분석을 이겨낼 수 있을지 관심사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