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SK는 이번 오프시즌에 큰 변화를 겪었다.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김용희 전 감독의 2년 계약이 만료됐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폭이 컸다. 오랜 기간 팀에서 동고동락했던 이른바 ‘프랜차이즈’ 코치들을 대거 교체했다. 화룡점정은 파격적인 외국인 감독의 선임이었다. 일본과 미국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화려한 경력을 쌓은 트레이 힐만 감독을 데려왔다. 연봉은 역대 최고 대우였다.
이를 진두지휘한 이는 바로 민경삼 전 SK 단장이었다. 4년 연속 성적이 기대에 못미쳤던 SK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지였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절박함은 민 단장을 의욕적으로 움직이게 했다. 미국까지 날아가 외국인 3명과 직접 면접을 봤다. 외국인 감독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던 그룹을 설득시킨 이도 민 단장이었다. 그렇게 팀에 어느 정도 새바람이 불자 민 단장은 마지막 퍼즐을 스스로 맞췄다. 바로 선수단을 총괄하는 자리인 단장의 교체, 즉 자진사퇴였다.
SK는 26일 공식발표를 통해 민 단장의 사임을 알렸다. 구단의 한 핵심 관계자는 “시즌 뒤 단장님께서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감독 선임이나 코칭스태프 개편, 외국인 선수 인선, 김광현과의 FA 계약 등 오프시즌에 산적한 현안이 많았다. 그래서 구단에서는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 단장님도 마지막까지 할 일은 한다는 생각이었고, 모든 절차가 끝난 뒤 26일 재차 사의를 밝혔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힐만 감독 영입, 그리고 대폭적인 코칭스태프 교체 당시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개혁을 강조한 민 단장이었다. 하지만 그 개혁에 자신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색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는 것으로 마지막 두 달을 보냈다. 취재진은 물론 구단 관계자 대부분이 민 단장의 사의를 몰랐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 구단 종무 후 개인적으로 여행을 다니며 머리를 정리한 민 단장은 26일 단장의 옷을 벗었다.
미묘한 시점 탓에 “사임이 아닌, 해임 아닌가”라는 다양한 추측이 나오기도 하지만 민 단장은 “이미 시즌 뒤 단장직을 사임하겠다고 구단에 전달한 상황이었다. 깔끔하게 단장이 성적에 책임을 지는 것이 맞다고 봤다. 오프시즌 중에도 팀장급 인사들과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두 달의 기간 동안 인수인계까지 끝났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12월에 발표된 조직개편에서 몇몇 큰 변화가 것도 결국 민 단장의 사임을 암시하는 사전 작업이었던 것 같다”고 추측한다.
민 단장은 KBO 리그 역사에 남을 만한 ‘장수 단장’이다. 보통 단장은 그룹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 대개 2~3년 정도 머문 뒤 팀을 떠난다. 하지만 민 단장은 2010년 1월 이후 7시즌이나 팀의 단장으로 재직했다. KBO 리그 단장회의에 가도 민 단장보다 오랜 경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또한 선수 출신 단장 시대를 연 인물로도 손꼽힌다. 여전히 비선수 출신 단장이 많은 토양에서 민 단장은 선수 출신으로 프런트에 입사해 단장까지 승격한 보기 드문 경우다. 독특한 경력으로 존재감이 미비했던 그간의 단장과는 달리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성과도 있었고 실패도 있었다. 민 단장은 단장 부임 전 운영팀장·경영지원팀장·운영본부장을 거치며 SK 왕조의 초석을 만든 이로 손꼽힌다.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시작된 SK 왕조 시기에는 구단의 핵심 인사로 팀 전반적인 부분에 관여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0년 조직의 정점에 오른 민 단장은 부임 후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2011~201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거두며 성공적인 단장 인생을 보내는 듯 했다.
그러나 2011년 도중 구단이 김성근 감독과의 마찰을 겪으며 급기야 경질 사태까지 갔고, 거센 비난 여론에 가장 먼저 포화를 맞았던 씁쓸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또한 2013년부터 올해까지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개인적으로도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민 단장은 팀이 4년 연속 상위권 도약에 실패하자 사임 결정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민 단장은 시즌 중에도 사석에서 “이제는 그만둘 때가 된 것 같다”는 힘겨운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성적과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온탕과 냉탕을 오고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끝이 좋지 않았다. 자신의 말대로 최근 4년간 성적을 내지 못한 단장이었다. 탕에 들어가는 순서가 거꾸로였다면 모를까, 화려한 성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일부 결단은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으며, 결국 실패로 돌아간 중점 사안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쩔 수 없이 쌓이는 매너리즘, 최신 트렌드에 대한 반응 속도가 다소 느렸다는 점 또한 구단 안팎에서 한계로 지적된다.
다만 SK 왕조 설계를 진두지휘한 공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한 2년 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한 팀 내 개혁 작업의 성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왕조라는 단어에 취해 있었던 SK는 2015년부터 본격적인 육성 시스템 개혁에 들어갔다. 김용희 감독과 협의해 메이저리그(MLB)식 매뉴얼을 제작하고 수정해 현재는 완성 단계에 왔고, 세이버매트릭스 도입, 육성 및 스카우트 파트 강화 등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민 단장이 구단 관계자들의 의견을 두루 수렴해 추진한 사안들이다.
한편으로는 팀의 구장 환경을 살리기 위한 점진적인 ‘장타력 증강’ 프로젝트도 비교적 빠른 성과를 거뒀다. 또한 단기간에 수없이 쏟아져 나온 내부 FA 시장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인 계약의 무게를 유지했다. 계약 당시에는 비난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SK의 FA 기조는 비교적 올바르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또한 지난해 성사시킨 LG와의 3대3트레이드, 올해 최승준의 보상선수 지명 등은 민 단장이 주도한 회심의 반격으로 뽑힌다.
다만 자신이 뿌려 놓은 성과를 확인하지 못한 채 조직을 떠나는 민 단장이다.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7년의 세월은 소중했던 것 같다. 지난 11월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에서 만난 민 단장은 “솔직히 운영본부장으로 있을 때는 참 단장이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단장을 오래했으니 복받은 사람이고, 어쩌면 이제는 머리가 더 잘 돌아가는 후배들에게 앞길을 터줄 때가 됐다”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육성 문제, 그리고 꽉 막힌 팀 페이롤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은 것 같다”고 걱정을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별의 암시였던 셈이다.
그는 성공한 ‘선수 출신’ 단장의 모범일 수도 있고, 어쩌면 실패한 단장의 반면교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에 대한 평가는 까칠한 줄타기를 반복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의든 타의든, KBO 리그의 단장 역사에 있어 어떠한 변화의 흐름에 있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7년 동안 알게 모르게 비선수에서 선수 출신으로, 현장 중심에서 프런트 균형으로 가는 새로운 물꼬가 만들어졌다. 당장 박수만 받으며 떠나기는 어렵겠지만, 평가를 할 시간은 좀 더 남아있을지 모르는 이유다. SK 담당기자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