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호의 룩 패스] '관행이라 괜찮아' 유명무실한 사전교섭 금지 규정
OSEN 허종호 기자
발행 2016.12.27 05: 59

#프로축구연맹 규정. 제 2장 선수.
제 18조 자유계약(FA)선수 교섭 기간.
① 원소속 클럽은 FA공시 일부터 12월말까지 소속 선수 중 다음 연도 FA자격 취득 선수에 대해 우선 교섭 기간을 갖는다.

② 12월말까지 원소속 클럽과 재계약을 체결하지 못한 FA자격 취득 선수는 다음 연도 1월 1일부터 2월 말일까지 원소속 클럽을 포함한 전체 클럽과 입단 교섭을 할 수 있다.
제 22조 사전 교섭에 대한 제재.
① FA자격 취득 선수에 대해 교섭 기간을 위반하거나 사전 접촉 등을 하였을 경우, 물의를 발생시킨 클럽 및 선수, 중개인은 상벌 규정 유형별 징계기준 제8조 가.항에 따른다.
프로축구연맹은 FA선수와 원소속팀의 교섭 기간을 명문화해서 보장하고 있다. 해당 규정을 위반하는 선수는 5년간 K리그 등록 금지, 구단은 6개월 이내 선수 영입금지와 해당 선수와 영구 계약 금지, 제재금 5000만 원 부과, 중개인에게 6개월 이상 자격 정지, 대한축구협회에 자격 취소 요청으로 징계를 내린다.
징계의 규모가 매우 강력하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FA선수와 계약할 수 있는 겨울 이적시장에 참여하는 이들은 사전 교섭 금지 규정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프로축구연맹이 사전 교섭을 적발하고 징계를 내릴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FA선수의 이적이 기사화까지 되도 방법이 없다. 올해는 예년과 다르게 FA로 공시된 몇몇 선수들이 다른 팀과 계약을 체결했다는 보도가 1월이 되기도 전에 잇달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소문만 듣고 조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은 2001년부터 시행됐지만 지금까지 적발 및 처벌 사례가 한 번도 없다. 
규정을 위반하더라도 관행적으로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은 최근 취재진과 만나 박준태(전남 드래곤즈)와 접촉 사실을 밝혔다. 박준태는 전남의 FA선수로, 규정대로라면 12월 31일까지는 전남을 제외한 다른 구단과 교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프로축구연맹은 이 경우가 꼭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의 위반으로 볼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프로축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규정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원소속 구단에서 계약 의사가 없음을 밝혔을 경우에는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의 위반으로 볼 수 없기도 하다.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사항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전남은 시즌 종료 전부터 박준태 측과 협상을 했지만 조건에 대한 의견 차가 커서 '계약이 힘들겠다'는 뜻을 통보했다. 전남의 한 관계자는 "박준태 측과 이야기가 되어 있는 사항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의제기를 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남과 박준태은 양측이 합의 하에 결별했지만, OSEN의 취재 결과 다수의 FA 선수들이 원소속 구단의 허락을 받지 않고 새로운 팀과 가계약을 체결하거나 이미 협상에 들어갔다. 이와 같은 경우는 사전 교섭에 해당돼 선수와 구단, 중개인 모두 징계 대상이다.
K리그의 한 관계자는 "올 시즌이 예년보다 일찍 끝나는 바람에 다음 시즌 준비에 들어간 구단들이 여럿이다. 그러나 FA 선수와 교섭이 허용되는 1월까지는 시간이 너무 길다. 이 때문에 선수단 구상도 일찍 시작해 사전 교섭 금지 위반 사례가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아무리 비밀스럽게 교섭을 하더라도 소문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소속 구단에서 항의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이적시장의 한 관계자는 "서로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을 위반하는 상황에서 문제 제기는 쉽지 않다. 지금은 피해자이지만 언제든지 피의자가 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이쯤되면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이 유명무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FA 사전 교섭 금지 규정을 먼저 도입했던 프로야구 KBO리그도 17년 동안 해묵은 해당 규정을 올해부터 폐지했다. 의혹만 있고 처벌은 없는, 사실상 사문화 된 규정을 존속시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프로축구연맹도 현실과 동떨어진, 스스로 권위를 깎아내리는 규정은 하루빨리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sportsh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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