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미국통신] 제레미 린, 한국 선수들에게 던진 메시지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6.12.26 06: 34

‘황색돌풍’ 제레미 린(28, 브루클린)이 한국선수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브루클린 네츠는 24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벌어진 2016-17 미국프로농구 정규시즌에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게 99-119로 대패를 당했다. 3쿼터 한 때 무려 46점을 뒤진 브루클린은 일찌감치 항복을 선언했다. 
주전가드로 나선 제레미 린은 10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턴오버도 5개를 범했다. 전날 브루클린에서 골든스테이트를 상대한 네츠는 다음 날 챔피언 클리블랜드를 상대하는 가혹한 일정을 치렀다. 비행기를 타는 것만도 힘든 상황. 린은 전날 스테판 커리를 상대로 10점, 8리바운드, 11어시스트, 2스틸, 2블록슛으로 맹활약하고도 101-117로 크게 졌다. 이날은 상대가 무려 카이리 어빙(13점, 10어시스트, 6스틸)이었다. 린은 이틀 연속 세계최고 가드를 상대하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OSEN에서 한국 언론 최초로 제레미 린과 만나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유일한 아시아계 선수로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 소수자들의 희망 ‘린새니티’ 
린은 중국계 아버지와 대만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국 이민 2세다. 국적은 미국이지만 분명 아시아혈통이다. 야오밍이 “아시아인은 NBA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트렸다면 린은 “동양인 가드는 NBA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편견을 지웠다. 
2004년 타부세 유타(일본), 2008년 쑨유(중국)가 NBA입성을 노크했다. 하지만 그들은 동양인 특유의 신체적 열세를 딛지 못하고 NBA 문턱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 린은 언드래프티임에도 불구하고 10일 계약과 D리그부터 시작해 골든스테이트와 계약에 성공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2012년 뉴욕에서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키며 야오밍의 뒤를 잇는 최고의 동양인 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린새니티 광풍이 불어 닥친 또 다른 이유는 린의 출신배경 때문이다. 미국대학농구에서 동양인 선수의 비율은 0.5%에 불과하다. 린은 천문학적으로 희박한 확률을 뚫었고, NBA에서 주전가드로 살아남았다. 
여기에 린이 명문 하버드출신이라는 점도 화제성을 낳았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고 있는 아이비리그 출신 엘리트들은 동문선수가 뛰는 NBA팀을 응원하는 재미는 절대 느낄 수 없었다. 이들은 하버드대학을 나온 린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온갖 편견을 오직 실력으로 극복한 린의 성공신화는 한국선수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 린의 조언 “피부색보다 중요한 것은 실력”
OSEN: 한국에서 온 OSEN이다. 반갑다.  
린: 나도 반갑다. 한국기자와는 처음 인터뷰를 해보는 것 같다. 
OSEN: 어제는 스테판 커리와 만났는데 오늘은 어빙을 상대했다.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린: 그렇다. 두 명의 좋은 가드와 연속으로 상대하니 힘든 하루였다. 
OSEN: NBA에서 활약하는 유일한 동양인 선수다. 아시아를 전체를 대표해서 뛰는 기분은 어떤가? 
린: 아시아를 대표해서 뛴다는 것은 좋은 기분이다. 매년 NBA에서 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OSEN: 동양인으로서 숱하게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해왔나?
린: 일단 농구를 하러 코트에 들어서면 인종차별이나 편견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이즈가 작은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 더 좋은 기술을 발휘하려고 연습을 하다보면 언젠가는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능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다. 
OSEN: 당신처럼 NBA선수를 꿈꾸는 수많은 동양인 선수들이 있다. 한국 선수들에도 조언을 부탁한다. 
린: 가장 먼저 경기를 즐기면서 뛰라고 조언하고 싶다.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기량도 향상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도 한국인 친구들이 많다. 한국음식도 먹고, 한국음악도 듣는다. 
▲ 편견을 깨지 못하고 있는 한국농구의 시스템 
한국농구는 암울하다. 프로농구의 인기는 매년 제자리걸음이다. 선수들의 신체조건은 좋아졌지만, 기량은 퇴보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외국선수들과 비교하면, 신체조건도 열세고, 기본기도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점은 틀에 박힌 농구를 정답이라 여기고 편견을 깨지 못한다는 점이다.  
 
미국선수들은 왜 농구를 잘할까. 한국선수들은 ‘미국선수들은 우리와 유전자가 다르니까’라고 선천적 원인을 꼽는다. 린은 우리와 똑같은 동양인이다. 그는 과학적 식이요법과 트레이닝, 다양한 스킬훈련 등으로 신체적 한계를 극복했다. 린은 웬만한 흑인들과 부딪쳐도 밀리지 않는 191cm/91kg의 단단한 신체를 만들었다. 동양인이 후천적 노력으로 NBA에 갈 수 있다는 것은 린이 증명했다. 
한국선수나 지도자들이 ‘동양인 NBA선수가 나왔으니 우리도 언젠가 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그래서는 영원히 한국인 NBA선수가 다시 나올 수 없다. 제레미 린 농구의 핵심은 탄탄한 개인기와 창의성에 있다. 육체적으로 대등한 조건이 됐을 때 결국 승부를 가르는 것은 기술이다. 린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근본에는 하버드를 나올 정도로 명석한 머리, 동료들과 문화적 이질감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과 과학적 훈련, 엄청난 노력이 더해져야만 동양인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아직도 어려서부터 맞아가며 농구를 한다. 항상 맞고 혼나는 선수들은 주눅이 든다. 암기식으로 외워서 뛰는 농구에 익숙하다. 어떤 상황에서 지역방어를 서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한 채 그냥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농구를 하고 있다.   
선수들은 프로가 되려는 독기는 있지만, 응용력이 없다. 2-30년씩 농구를 해왔지만 픽앤롤을 제대로 할 줄 아는 프로선수가 몇 없는 이유다. 2미터가 되지 않는 신장보다 더 암울한 것은 한국농구의 틀에 박힌 선수육성 시스템이다. 
뭐든지 자신이 좋아서 신나서 해야 실력도 쑥쑥 느는 법이다. 제레미 린이 강조한 ‘즐기는 농구’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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