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안 볼래요?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2.17 10: 5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후안 솔라나스 감독의 영화 ‘업사이드 다운’(2112)은 위와 아래가 상반되게 맞닿은 두 행성에 각각 사는 두 남녀가 금지된 사랑을 나눈다는 게 기둥줄거리다. 빅뱅에 의해 탄생됐을지도 모른다는 ‘거울 우주’ 이론에서 모티프를 얻은 듯하다.
이렇듯 시간과 공간의 이론과 그에서 비롯된 타임 슬립은 슈퍼히어로와 함께 영화가 가진 판타지를 극대화시키는 최적의 조건인지라 할리우드의 단골상차림이다. 국내에도 올해만 ‘가려진 시간’에 이어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홍지영 감독,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가 개봉돼 현재 흥행 2위를 질주 중이다.
방송에선 동양적 환생이 소재인 ‘푸른 바다의 전설’과 서양적 드라큘라의 영생이 소재인 ‘도깨비’가 절찬리에 방송 중이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2015년의 외과의사 수현(57살, 김윤석)이 30년 전으로 되돌아가 레지던트 수현(27살, 변요한)을 만나 당시 죽고 못 사는 연인 연아(채서진)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내용이다.
과거의 수현에겐 오로지 연아가 전부지만 그토록 결혼과 출산을 원하는 연아의 애원을 외면한다. 이는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해 가정을 망가뜨리고 어머니를 자살로 이끈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 탓이다.
현재의 수현은 폐암으로 곧 죽는다. 그는 그런 과거의 미안함 때문에 생애 딱 한 번만이라도 연아를 다시 보고 싶어 과거로 자꾸 여행을 떠나는 것. 현재의 수현은 원나잇스탠딩으로 얻은 20살의 딸 수아(박혜수)가 삶의 전부고, 수아의 존재를 모르는 과거의 수현은 수아의 안위 따윈 관심 없고 오직 연아다. 이렇게 ‘나’와 ‘나’는 상충한다.
그건 아무리 해도 풀리지 않는 고르디아스의 매듭이자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30여 년 간 피워온 담배 때문에 곧 죽을 것을 아는 수현의 ‘귀차니즘’의 관성은 매우 이기적이다. 단지 죽기 전에 첫사랑을 보고 싶을 따름이다. 과거의 자신과 연아가 혼돈에 휩싸일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과거의 수현은 미래의 나에 반발해 “내 미래는 내가 결정한다”며 실존의 자유를 외친다. 감독이 선택한 알렉산드로스의 해결책이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루퍼’ 역시 역사를 바꾸기 위해 킬러들이 부지런히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가운데 미래의 ‘나’와 과거의 ‘나’가 서로 총구를 겨눈다. 모든 타임 슬립 영화에서 공통적인 것은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바뀜으로써 카오스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기준할 때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는 해피엔딩이다. 오히려 금연홍보 영화 같기도 하다. 따뜻한 가족영화이기도 하다.
인간이 지루함을 느끼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과학도 개입한다. ‘가려진 시간’에서 성민(강동원)은 멈춰진 시간의 틀에 갇혀 10년 이상을 홀로 성장한 뒤 되돌아온 시간 속으로 투입된다. 그 지루한 시간이 수린(신은수)에겐 가려진 시간이었다. 없는 찰나였다. 그녀가 느낀 건 따분함이 아니라 유일하게 마음을 틀 수 있는 성민이 갑자기 사라짐으로 인한 긴장과 공포와 슬픔이었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현재의 수현에겐 삶이 얼마 남아있지 않지만 의외로 그 짧은 시간이 지난하다. 과거의 수현에겐 긴장의 연속이다. 연아가 죽은 것을 아는 현재의 ‘나’는 얼마 안 남은 시간마저 지루하지만, 연아가 죽을 것이란 가까운 미래를 알게 된 과거의 ‘나’는 다급하고 두려울 따름이다. 이렇게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는 절망과 지루함, 희망과 두려움이란 각기 다른 감정으로 나뉜다.
이 영화는 거창하게도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에른스트 마하의 인식론에서 출발한다. 시간의 대칭을 무시하고 시간의 화살에 집중해 우주의 구조가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간다는 엔트로피의 법칙을 말한다.
현재의 현수는 과거의 자신에게 “과거를 바꾸면 미래가 뒤틀린다”고 경고하면서도 자신조차 과거를 바꾸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그리고 2015년은 모든 게 행복하게 바뀐다. 과거의 사람에겐 무질서가 질서를 만든 것이 맞지만 현재의 사람에게도 그럴지는 미지수다.
상위 포식동물일수록 대부분의 시간을 나른하게 있거나 잔다. 각자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따분하고 심심한 걸 싫어한다. 신체조건을 떠나 사회활동에 역동적인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동물의 생각과 사람의 그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동을 안 할지라도 생각으로 움직인다. 현재가 어려울수록, 절망적일수록 후회하고 회한을 품게 된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출발점이다. ‘만약 그때 그러지 말았다면’이다.
그런 인간의 매우 1차적인 판타지에서 시작된 이 영화가 ‘가려진 시간’만큼의 화려한 CG나 눈부신 강동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다. 인간에겐 시간과 공간처럼 사이 ‘간’ 자가 붙는다. 한국에서 시간과 시각이 구분된다는 점은 분명히 서양보다 앞선다. 모처럼 철학적인 영화가 나왔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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