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의 대명사’ 크랙 새거는 왜 화려한 정장을 입었을까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6.12.16 10: 58

‘사이드라인 리포터’의 대명사 크랙 새거(65)는 왜 늘 화려한 정장을 입었을까.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던 새거는 16일(한국시간) 병상에서 생을 마감했다. 새거가 숨을 거두자 곳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새거가 속했던 TNT의 데이빗 레비 회장은 “새거는 지난 30년 동안 터너의 가족으로서 우리에게 진정한 영감을 주었다. 그는 스포츠계에서 최고로 재능과 열정이 넘쳤던 방송이이었다. 또 다른 크랙 새거는 없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아담 실버 NBA 총재는 “모든 NBA 가족을 대신해 새거를 잃은 것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새거는 모든 감독과 선수들에게 생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NBA의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한 산증인”이라며 애통함을 표했다. 

새거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그의 업적을 돌아보고자 한다. 아울러 새거와 기자의 추억도 소개한다.  
▲ 44년 동안 놓지 않았던 마이크 
새거는 노스웨스턴 대학에 다니던 1972년 플로리다 사라소타의 작은 방송국 WXLT에서 방송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데뷔 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MLB의 전설 행크 아론이 통산 715호 홈런을 때려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종전기록을 깼을 때였다. 그는 3루에서 홈으로 향하는 아론과 인터뷰를 시도해 성공했다. 플레이 중인 선수와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새거의 과감한 시도로 야구역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탄생했다. 새거는 당시에 대해 “총 맞을 각오를 하고 시도했다”고 밝혔다. 그는 70년대 중반까지 캔자스시티 로얄스, 캔자스시티 치프스 등의 중계를 맡았다.  
새거는 1981년 CNN에 입사하며 전국구로 활동하게 된다. ‘스포츠 투나잇’을 진행해 인기를 얻게 된다. 그는 터너스포츠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1990 FIFA 월드컵, 1992년 동계올림픽, 대학풋볼, 월드시리즈, 2000년 올림픽, 대학농구 파이널포 등 지구상 최고의 스포츠이벤트를 도맡아 중계하고 취재했다. 
▲ NBA 사이드라인 리포터, 혁신을 일으키다  
새거가 가장 유명세를 떨친 분야는 역시 NBA 사이드라인 리포팅이었다. 80년대 중반만 해도 사이드라인 리포팅에 대해 개념이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딱딱하게 정보만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새거는 80년대 중반부터 NBA 리포팅을 시작했다.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의 라이벌전, 마이클 조던의 돌풍으로 NBA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발돋움하던 시절이었다. 
화려한 정장을 차려입고 수려한 언변을 자랑했던 그는 어느새 NBA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신인선수들이 “데이빗 스턴과 악수하고, 새거와 인터뷰를 하니 비로소 NBA선수가 된 것이 실감났다”고 말할 정도였다. 새거는 현장에서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뿐만 아니라 예능의 요소까지 더해 최고의 리포터로 자리를 굳혔다. 
경기 중에 등장하는 감독 및 선수들과 새거의 ‘밀당’은 어느새 NBA를 보는 새로운 재미로 자리를 잡았다. 새거를 놀려먹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됐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선수들이 왜 턴오버가 많았냐는 새거의 질문에 “당신 정장을 쳐다보느라 그런 것 같다. 이런 옷을 입고 일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놀렸다. 선수들이 올스타전에 화려한 정장을 입고 나타나면 ‘새거 스타일’이라고 놀리는 경우도 많았다. 
▲ 벽혈병을 딛고 30년 만에 선 NBA 파이널 
NBA에서 새거는 공기와 같은 존재였다. 늘 옆에 있었지만 소중함을 몰랐다. 그런데 새거는 2014년 돌연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시즌 전체를 쉬게 된다. 그가 없는 코트는 너무나 허전했다. 포포비치 감독이 새거의 아들 새거 주니어와 한 인터뷰는 유명하다. 포포비치는 “젊은 친구, 너도 물론 잘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의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코트에 서주길 기대한다. 새거, 빨리 회복해서 다시 나랑 인터뷰를 하세” 평소 리포터를 돌같이 보기로 유명했던 ‘츤데레’ 포포비치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엄청난 감동과 눈물을 선사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새거가 거짓말처럼 병을 털고 리포터로 복귀한 것. 하지만 통통했던 그가 비쩍 마른 얼굴로 나타나자 팬들은 마음이 아팠다. 그가 다시 마이크를 잡은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었다. 
2016년 3월 새거는 백혈병이 재발해 앞으로 3~6달 밖에 살 수 없다는 판정을 들었다. 그가 한 일은 죽는 순간까지도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일이었다. 새거는 아픈 몸을 이끌고 마치 ‘은퇴 투어’를 하듯 경기장을 돌았다. 선수들은 ‘Sager strong’이라는 팔찌를 차며 모금을 해서 오랜 친구를 도왔다. 드웨인 웨이드는 새거와 만난 마지막 경기에서 “새거를 존경한다. 그 없는 NBA는 상상할 수도 없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새거가 신념을 지킨 이유는 또 있었다. TNT소속인 새거는 30년이 넘는 경력에도 단 한 번도 NBA 파이널 무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중계권을 라이벌 회사 ABC-ESPN이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새거는 꿈을 이뤘다. ESPN는 2016 파이널기간에 새거를 잠시 임대하기로 TNT와 계약을 맺었다. 새거는 마침내 NBA 파이널 6차전에서 꿈의 코트에 설 수 있었다. 
6차전을 승리로 장식한 르브론 제임스는 “이번에는 내가 질문을 해보겠다. 어떻게 이런 분이 30년 넘게 NBA 파이널에 서지 못할 수 있느냐?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이제라도 당신을 보게 돼서 행복하다. 존경하고 사랑한다. 오늘 나도 다른 팬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증인이 될 수 있다. 그 동안의 노력에 대해 정말 감사드린다”며 새거에게 존경을 표했다. 선수가 리포터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다. 
▲ 새거는 왜 늘 화려한 정장을 입었을까 
2016년 7월 새거는 2016 ESPY 시상식에서 스포츠 분야 공로자에게 주어지는 ‘Jimmy V Award’를 수상한다. 새거는 “내가 무슨 병이라고 진단을 받든 정신력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삶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 그래서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못생긴 병을 몸에서 빼내기 위해 난 계속 싸울 것이다. 나는 사랑과 재미를 가득 담아 끝까지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소감을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새거가 공식석상에 선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후 새거는 병상에서 신음했고, 의사의 예상보다 3개월이나 더 살다가 숨을 거뒀다. 새거의 절친 찰스 바클리는 의사의 만류를 마다하고 병상의 그와 만나 수다를 떨기도 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기자도 현장에서 NBA를 취재하며 새거와 얽힌 일화가 있다. 2010년 NBA 서부컨퍼런스 파이널 LA 레이커스와 피닉스 선즈가 맞붙었다. 경기시작을 3시간 앞두고 피닉스 기자실에 들어섰을 때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백인 남성 한 명이 앉아있었다. 복장이 너무 평범해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알고 보니 새거였다. 
사실 화려한 복장 때문에 그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많았다.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눈인사만 나누고 선뜻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막상 대화를 시작하자 그는 굉장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복장이 화려하지 않네요?”라고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새거는 “저는 프로페셔널 방송인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저에게 ‘잠 잘 때도 실크팬티를 입고 자냐?’고 물어보곤 하는데 아닙니다. 평소에는 편한 옷을 입어요. 하지만 방송에서는 최대한 튀어 보이려고 하죠. 오늘 입을 정장도 뉴욕에서 맞췄어요. 아무도 저 같은 정장을 입으려 하지 않아서 기성복을 살수가 없더라고요”라며 껄껄 웃었다.   
간단한 대화를 마치자마자 그는 화려한 정장으로 갈아입고 우리 모두가 아는 리포터로 변신했다. 모든 것이 방송을 위한 컨셉이었다. 일을 마친 그는 여느 미국 아저씨와 다를 바가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40년 넘게 한 분야에서 일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비결이었다. 
비록 몇 경기에 불과했지만, 그와 같은 경기를 취재하며 현장에 있었던 것은 기자에게도 큰 영광이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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