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현 시국, 100년 후 사극 '장희빈' 되지 않겠어요?" [인터뷰]
OSEN 이소담 기자
발행 2016.12.16 08: 35

 현실이 영화를 이기는 믿지 못할 풍경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다. 영화계 많은 관계자들도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시국에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개봉만으로도 큰 주목을 받은 영화 ‘판도라’(감독 박정우) 관련 배우들도 저마다 인터뷰나 공식석상을 통해 소신을 드러내고 있는 중. 사회에 대한 관심을 언제나 놓지 않는 정진영도 최근 인터뷰를 통해 “우리 작품은 꼭 필요한 이야기다”며 망설임 없이 작품 출연 의지를 드러냈음을 밝혔다.
‘판도라’는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노후된 원전이 폭발하면서 벌어지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을 그려낸다.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아무리 고발해도 안전보단 편의와 경제성을 위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소위 ‘윗분’들의 모습은 우리네 삶에서 너무나도 익숙해서 씁쓸한 풍경이다.

현실과 다르지 않은 풍경과 밀접한 이야기로 다가온 지진과 원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판도라’에서 정진영은 발전소 소장 평섭 역을 맡아 우리 삶에서고 꼭 필요한 리더상을 제시했다.
“제가 맡은 역은 어찌 보면 내부고발자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분들 덕에 비리가 폭로되는 게 굉장히 많다. 그러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비밀이다. 평섭은 원전을 사랑한 사람이다. 그런데 납품비리를 통해 인가 받지 않은 부품으로 A/S를 하는 게 우리 나라 현실이었다. 극중에서 도저히 회사 루트로는 전달이 안 되니까 이른바 투서를 한 셈이다. 원전을 사랑한 평섭 입장에선 애인이 악마가 되는 걸 바라본 것. 애인이 악마가 된 모습을 봤을 때 이 사람은 그 악마를 없애야했던 거다. 복잡하게 생각할 여지가 없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이 다 그러했다. 주춤주춤할 상황이 아니었다. 극중 청와대는 그랬을지 몰라도 발전소 사람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절망적인 상황이 펼쳐지지만, 가장 밑바닥에 희망이 있기 마련이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존재로 통해 발현되는 인간애와 평섭과 같은 정의로운 인물을 통해 희망적인 메시지도 전달한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 관객 역시 박스오피스 1위로 화답하며 현재 2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열심히 다들 고생해서 찍은 거라 아무래도 기분이 좋다. 그래도 12월이 성수기라서 영화가 계속 나올 거라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개봉이 밀린 건 아니다. 작년 7월에 촬영을 완료했다. 아무래도 대작이다 보니까 후반 작업이 오래 걸렸다. 주변에서는 이게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개봉이 늦어진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해주셨다. 처음에 이 영화를 제작하려고 할 때 그런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원전 사고를 다룬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이번이 처음이고 우리나라 원전 정책에서도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2014년 6월 책을 처음 받았는데 아주 짜릿했다. 읽자마자 바로 출연을 결정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더욱 많은 관심과 평소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정진영은 개봉 날짜를 정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런 시국이 될지 몰랐다는 설명. 그는 촛불 집회와 관련해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고,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며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현 시국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않나. 사실 그 어떤 것이라도 촛불 집회와 시국 이상의 이슈가 될 수 없었다. 몇 백만 명이 촛불을 드는 게 더 뜨겁고 필요한 일이었으니까 영화 홍보 자체를 위해서는 오히려 불리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겠다만, 다행히 지난 주 영화를 개봉한 이후에 입소문이 도는 것 같다. 관객 분들이 이 영화를 지지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직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정치적인 일들이 놓여있는 것 같다. 이 영화가 갖고 있는 뜨거운 면이 관객 분들에게 많이 다가가고 있길 바란다.”
영화 시나리오보다 더욱 믿지 못할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훗날 지금 일련의 사건들이 반드시 영화화되지 않을까, 바라보는 반응도 있는 바. 정진영은 이와 관련해 이슈에 그치지 않고 사회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면 좋겠다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시국을 경험하면서 정치적인 학습이 됐을 거다. 설마 이럴 리가 했던 게 다 드러났다. 앞으로 드러날 게 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현실적인 것 같다. 이토록 뜨겁게 받아들일 거라곤 찍을 당시는 생각을 안 했다. 왜냐면 원전 이야기를 하는 것이 우리의 주안점이었기 때문에 그 외의 이야기는 거리를 좀 두고 표현했던 경향이 있는데, 이게 바로 현실이 되니까 사실 당혹스럽다.”
“100년 지나면 지금의 일들은 사극의 ‘장희빈’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이번 이슈로 우리 사회가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국회에서 탄핵안은 가결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 시스템을 리셋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 besodam@osen.co.kr
[사진] 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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