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환의 사자후] 가드외인 멸종위기...실패로 끝난 장단신제도
OSEN 서정환 기자
발행 2016.12.14 07: 55

외국선수에게 포인트가드를 맡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KBL이 야심차게 도입한 외국선수 장단신 제도가 각종 부작용한 양산하며 실패로 끝나는 모양새다. 안양 KGC인삼공사는 지난 11일 외국인 선수 마커스 블레이클리(28, 192.5㎝)에 대한 가승인 신청을 했다. 아직 블레이클리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은 상태다. 그가 예상대로 KGC행을 선택한다면 포인트가드 키퍼 사익스는 13일 KT전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난다. 그럴 경우 외국선수 중 포인트가드는 오데리언 바셋(30, 오리온, 190cm) 한 명만 남게 된다.  
▲ 사익스와 바셋이 보여준 한계

지난 시즌 KBL은 외국선수 장단신제를 도입했다. 가드형 외국선수의 도입으로 화려한 볼거리를 늘리겠다는 의도였다. 화려한 드리블과 덩크슛을 보여준 조 잭슨은 오리온의 우승에 기여했다. 제도의 순기능이 돋보이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각 구단은 가드형 외국선수를 뽑기보다 신장이 작더라도 빅맨역할을 해줄 수 있는 ‘언더사이즈 빅맨’을 선호하는 추세다. 웬델 맥키네스(동부), 마이클 크레익(삼성), 커스버트 빅터(전자랜드), 에릭 와이즈(KCC), 마커스 블레이클리(KGC)가 이런 유형에 해당되는 선수들이다. 상위 6팀 중 이들을 보유한 팀이 4팀이나 된다. 성적을 위해서라면 언더사이즈 빅맨을 뽑는 것이 당연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제도를 바꾸는 강수를 둔 KBL의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는 흐름이다. 
포인트가드형 외국선수들은 국내선수에 비하면 월등한 기량을 보여줬다. 바셋(15.1점, 3.3어시스트)과 사익스(13.8점, 4.5어시스트)는 주로 2,3쿼터에 투입되는 제한적 출전시간에도 나름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이들은 국내선수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월등한 돌파력과 화려한 드리블, 덩크슛 실력 등을 선보였다. KBL이 흥행을 위해 이들이 필요하다고 보는 시선도 일리는 있다. 
문제는 승리를 위한 효율성이다. KGC는 데이비드 사이먼, 오세근이라는 부동의 빅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을 보좌해줄 선수가 부족한 상황. 언더사이즈 빅맨이 있다면 이들의 체력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또한 가드형 외국선수가 출전했을 때 상대 언더사이즈 빅맨을 수비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사익스가 출전해 국내가드들을 상대하는 것은 분명 이점이다. 하지만 언더사이즈 빅맨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더 크다는 뜻이다. 
장신센터가 다쳤을 때 가드형 선수의 가치는 더 떨어진다. 애런 헤인즈의 부상 후 오리온은 모비스에게 81-74로 발목을 잡혔다. 바셋이 30분 이상 뛰면서 17점을 넣었지만, 블레이클리에게 31점, 13리바운드, 7어시스트를 허용했다. 감독들이 왜 빅맨을 선호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경기다. 가드형 외국선수가 살아남으려면, 매 경기 25점 이상은 거뜬히 찍을 수 있는 초특급 득점기계라야 한다. 특히 포인트가드형 외국선수가 KBL에서 살아남기란 매우 어렵다. 조 잭슨의 이탈, 사익스의 퇴출로 이런 경향은 굳어질 가능성이 높다.    
▲ KBL, 이러다 몸무게 제한 도입하나 
김영기 KBL 총재는 언더사이즈 빅맨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 “섭섭하다”는 속내를 비친바 있다. 재밌는 농구로 흥행몰이를 해야 하는데 감독들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애초에 갑작스러운 제도변경으로 가드형 외국선수의 선발을 강제하려는 시도부터 무리수였다. 승리가 최우선인 구단과 감독 입장에서 언더사이즈 빅맨을 뽑을 것은 당연히 예상됐던 반응이었다. 
그간 KBL은 새로운 제도에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제도를 땜질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김민수, 이동준 등 초창기 혼혈선수는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통해 데뷔했다. 이후 KBL은 전태풍 등을 데뷔시키기 위해 혼혈선수제도를 도입했다. 이 선수들은 FA등에서 국내선수들보다 많은 특혜를 누렸다. 물론 3년 마다 팀을 무조건 옮겨야 하는 등 이상한 제도로 피해를 보기도 했다. 이들의 은퇴가 다가오고, ‘첼시 리 파동’이 불거지자 KBL은 돌연 혼혈선수 제도를 폐지했다. 잦은 제도변경으로 팬들은 물론 관계자들까지 혼선을 빚고 있다. 
외국선수제도도 마찬가지다. 트라이아웃과 자유계약을 오가며 문제점을 반복하고 있다. 외국선수 장단신제의 경우 또 다른 손질을 할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신장은 물론 몸무게까지 제한해 덩치 큰 선수를 못 오게 해야 한다’는 발상이다. 맥키네스, 크레익 등은 작은 신장에도 불구 110kg이 넘는 거구들이다. 몸무게를 제한하면 이들은 KBL에 올 수 없게 된다.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구단의 선호도는 바뀌지 않는다. KBL과 구단이 제대로 소통하지 않는다면 제도를 바꿔도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어떻게든 편법은 나오게 마련이다. A 구단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외국선수에 게 큰 돈을 투자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이럴 바에 외국선수에 대한 출신, 연봉, 신장 등 각종 제약을 모두 없애고,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자유계약제로 가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또한 다른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 KBL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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