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시네마]‘판도라’는 왜 매일 30만 명을 울리는가?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2.13 13: 14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영화 ‘판도라’(박정우 감독, NEW 배급)가 흥행에 크게 성공한 가운데 온라인에 관객들의 관람평이 줄을 잇고 있는데 대체로 ‘현실과 닮았다’는 것이고, 그래서 ‘남 얘기 같지 않아 슬프다’는 결론이다. 흔히 영화의 후기라고 하면 재미 완성도 취향 등을 따지기 마련이지만 이 영화만큼은 감정에 치우치는 경향이 크다.
이혼율과 자살률이 수년째 1위고, 저출산율이 정상을 향해 내달리는 가운데 아래쪽이 지나치게 팽창한 극부와 극빈의 피라미드 구조를 이룬 경제상황에서 민심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라는 무자비한 이념의 편가르기로 치닫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 와중에 권력 측근의 국정농단과 그를 통한 엄청난 비리의 의혹이란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은, 중차대한 현 시국을 영화에 대입한 이유다.
무대는 한별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한반도 동남쪽 월촌리. 한때 도시 사람들을 끌어 모은 관광지이자 고즈넉한 농어촌이기도 했던 이곳은 원전 탓에 이제 관광업도 농업도 어로도 불가능하다. 자영업 역시 될 리가 없다. 당연히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별이란 기업의 눈치를 보며 원전에서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원전 하청업체 직원 재혁(김남길), 그의 어머니 석 여사(김영애), 형수 정혜(문정희), 조카 민재, 여자친구 연주(김주현), 원전소장 평섭(정진영), 대통령(김명민), 국무총리(이경영), 원전 신임본부장(송영창) 등이다.
월촌리는 이 사회의 거울이다. 재혁은 아버지와 형을 방사능 피폭으로 잃었지만 어쩔 수 없이 원전에서 일하는 가운데 하시라도 이곳을 뜨고자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석 여사는 안전을 강조하는 정부와 한별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재혁을 자꾸 주저앉힌다.
이 대치는 마을사람들의 갈등구조와 똑같다. 한쪽에선 원전가동중단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다른 쪽에선 그들의 ‘가족’이 이를 비웃듯 “그만 좀 하라”며 원전에 출근한다.
정부와 한별이 단합해 동남지대의 상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원전에 충성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 석 여사가 운영하는 식당이 월촌리식당이란 건 식당이 거의 없다는 의미다.
정부와 한별은 원전이 규모 7의 지진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됐다고 떠들어대지만 규모 6에 한별 1호기가 맥없이 폭발한다. 더 위험한 것은 그곳에 매장된 400톤 규모의 폐연료봉의 연쇄폭발이다. 매번 인재가 발생할 때마다 등장하는 안전불감증의 절정이다. 대통령은 국무총리에게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을 묻자 국무총리는 “없다”고 간단명료하게 답한다. 대한민국이 죽음의 땅이 될지도 모를 원전을 설치하고도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지 않는 정부와 기업이다.
대통령은 젊고 청렴하며 의욕이 넘치지만 결정적으로 판단력이 흐려 기지나 해결사 능력이 부족하다. 국무총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지만 능력은 오로지 자신의 이득이나 안위에만 쏟아 붓고, 국민의 눈을 가려 또 다른 국민을 희생시키는 따위의 혹세무민이 해결책의 전가의 보도다.
평섭은 수차례 원전 안전설계 미비의 위험성을 정부에 알리지만 총리에 의해 이 보고서는 대통령 책상위에 못 가고 묵살된다. 그러자 그는 청와대 부속실을 통해 대통령에게 알린다. 이 사실을 안 총리는 바로 평섭을 해고하고 새 본부장을 낙하산으로 내려앉힌다.
신임 본부장은 원전의 ‘ㅇ’자도 모른다. 막상 1호기가 폭발하자 우왕좌왕한다. 피란민 임시대피소인 체육관을 지키는 경찰도 마찬가지. 주민을 통제한다는 구실로 체육관 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는 어이없는 ‘보호’를 하더니 위험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잠긴 문을 열어줄 생각도 안 하고 자기들만 살고자 도망가느라 바쁘다.
피란길의 고속도로 역시 바로 그런 무책임과 무질서의 연장선이다. 월촌리 주민들의 퇴로는 오로지 한 곳 고속도로뿐이니 당연히 그곳은 주차장이 된다. 석 여사 등은 할 수 없이 걸어서 도망가는데 뒤에서 이성을 잃은 군중들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바람에 압사할 위험에 처한다.
사실 영화는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의 형식을 따르는 한국형 신파극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평균 30만 명씩 동원하는 흥행력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바로 현실반영이다.
경주를 중심으로 지진이 자꾸 발생하고, 1986년 체르노빌은 모르더라도 가까운 시대 2011년에 가까운 곳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사고는 안다. 우리나라는 인구 당 원전 밀집도가 세계 1위고, 아직도 신규 원전을 짓고 있다. 사드배치도 결정 났다. 이건 동네에 화장터나 쓰레기소각장을 짓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날 술이나 퍼마시고, 뜬구름 잡는 얘기나 해대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출퇴근을 반복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던 재혁이 갑자기 영웅이 된다. 이 ‘황당한 시추에이션’에 관객이 눈물을 쏟는 이유는 철부지 노동자가 일순간에 슈퍼히어로로 변신하는 판타지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은 아늑한 청와대에서 “죄송합니다”만 되풀이할 때 정작 피해자인 노동자들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에 앞장선다는 점과 그 이유가 ‘나라님’이 아니라 가족, 즉 내일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데 있다.
그래도 ‘월촌리’ 대통령에게는 준법정신과 양심은 살아있다. 구시대적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다. 평섭에게 마지막 부탁을 하기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을 때 “나, 대통령입니다”가 아니라 “저, 강석호입니다”다./osenstar@osen.co.kr
[칼럼니스트]
<사진>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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