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계약은 양날의 검이다. 과감한 투자로 즉시 전력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선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위험부담이 크다.
지난 2000시즌 선수들을 대상으로 처음 개장한 KBO리그 FA 시장. 최근에야 몸값에 걸맞은 활약으로 'FA 모범생' 소리 듣는 선수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지만, 초창기에는 이른바 '먹튀' 선수들이 많았다. 한 때 FA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로 활약상이 저조했다. FA 계약이 끝난 선수들을 기준으로 역대 먹튀 선수 5명을 꼽았다.
▲ 홍현우, 2001년 LG 4년 18억원
FA 대박이란 용어가 처음 나온 게 홍현우의 계약이었다. 해태의 1990년대 주축 타자로 활약한 홍현우는 2001년 시즌을 앞두고 LG와 4년 총액 18억원에 계약했다. 당시로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대형계약. 오른손 거포이자 3루수를 찾던 LG에는 최상의 퍼즐이었다. 그러나 펜스거리가 짧은 광주 무등구장을 떠나 가장 먼 잠실구장에서 홍현우는 힘을 쓰지 못했다. 설상가상 무릎 부상까지 겹치며 그라운드에서 보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2001~2004년 4년간 221경기 타율 2할4리 129안타 14홈런 63타점. 연평균 55경기에 그쳤지만 성적도 최악이었다. 2005년 친정팀 KIA로 트레이드됐지만 끝내 재기하지 못한 채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 진필중, 2004년 LG 4년 30억원
2003년 시즌을 마친 뒤 LG는 이상훈과 더블스토퍼를 구축할 진필중을 FA로 영입했다. 4년 총액 30억원은 당시 투수 최고 대우. 이상훈이 SK로 트레이드되면서 진필중이 LG의 단독 마무리로 낙점됐다. 그러나 2004~2006년 3년간 72경기 3승14패15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 5.03에 그쳤다. 첫 해 마무리로 실패한 뒤 선발-중간도 맡았지만, 어느 자리에서도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결국 계약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1군 마운드에 설 기회가 없었고, 연봉감액 조치에 반발하며 구단과 법정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08년 히어로즈 육성선수로 재기를 노렸지만 끝내 1군에 오르지 못하고 마운드를 떠나야 했다.
▲ 정수근, 2004년 롯데 6년 40억6000만원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27세 국가대표 외야수. 역대 가장 어린 나이에 FA가 된 정수근은 최초로 6년 장기계약과 40억원대의 대박 계약을 터뜨렸다. 그러나 롯데에서 6년은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2004년 계약 첫 해부터 해운대에서 음주 후 시민에게 방망이를 휘둘러 벌금과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고, 2008년에는 아파트 경비원 폭행혐의로 입건돼 무기한 실격 처리됐다. 1년 후 복구했으나 술집에서 음주 시비에 휘말린 뒤 다시 무기한 실격돼 은퇴를 선언했다. 6년간 성적은 484경기 타율 2할8푼2리 469안타 10홈런 147타점 249득점 101도루. 크게 나쁘진 않았지만, 연평균 80경기 출장만으로도 FA 먹튀였다.
▲ 심정수, 2005년 삼성 4년 60억원
2005년 심정수의 4년 총액 60억원 계약은 2014년 강민호가 75억원에 계약하기 전까지 9년간 역대 FA 최고액 몸값 기록으로 깨지지 않았다. 2002~2003년 현대 시절 이승엽과 홈런 경쟁을 벌이며 무시무시한 포스를 자랑한 심정수는 지금도 엄청난 대우인 60억원에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2005년과 2007년만 시즌을 소화했을 뿐, 2006년과 2008년은 어깨·무릎 수술로 각각 26경기·22경기 출장에 그쳤다. 4년간 성적으 296경기 타율 2할5푼4리 257안타 63홈런 202타점. 2007년 홈런과 타점 1위에 올랐지만 역대 최저 타율(.258) 홈런왕 꼬리표가 붙었다. 결국 2008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했다.
▲ 손민한, 2009년 롯데 1년 15억원
롯데는 2009년 손민한과 1년 15억원의 FA 계약을 맺었다. 당시 다년계약이 금지돼 공식발표는 1년 계약밖에 할 수 없었지만, 실제로는 3년 총액 27억원의 계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의 에이스이자 자존심이었던 손민한 그러나 FA 재계약 선수 중 최악의 먹튀로 전락했다. 계약 첫 해인 2009년에만 14경기 69⅓이닝 6승5패 평균자책점 5.19를 기록한 뒤 어깨 관절경 수술을 받았다. 그 길로 나머지 2년은 1군 등판 기록이 전무하다. 기약 없이 어깨 재활만 반복하다 계약기간을 다 보냈고, 선수협회장으로 비리 문제에 휘말리며 도덕성에도 흠집이 났다. 결국 계약기간이 끝난 뒤 롯데에서 방출 당했지만 2013~2015년 NC에서 3년간 재기에 성공한 뒤 은퇴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