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그랜저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현대차가 야심차에 내놓은 신형 그랜저(IG)는 지난 11월 판매실적서 2위를 기록했다. 현대차중에서는 상용차를 제외하고는 1위다. 기아차 모닝(9256대)에 이어 7984대를 판매했다.
7984대의 그랜저 11월 판매실적 중 신형 그랜저는 4606대를 차지했다. 기존 그랜저(그랜저 HG)는 3145대, 하이브리드는 233대다. 신형 그랜저가 지난달 22일 출시돼 실제 판매기간은 약 열흘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판매실적은 더욱 놀랍다. 물론 사전 예약을 통해 판매 물량을 미리 확보하기는 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전 예약자들의 엔진 선호 변화가 눈길을 끈다. 모델 별 분류를 해 봤더니 가솔린 2.4가 42%, 가솔린 3.0이 31%, LPi 3.0이 19%, 디젤 2.2가 8%였다. 현대차는 애초에 디젤 비중을 15%로 예상했지만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동안 중형 세단에서 디젤 엔진이 돌풍을 일으켰지만 신형 그랜저에 와서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디젤이 희귀모델이 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디젤 게이트에서 촉발 되기는 했지만 비단 그 문제만은 아니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정숙성과 세단에 어울리는 가솔린 엔진만의 특성 등 여러 다른 요소가 더해지면서 디젤차 수요가 줄어 들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중순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KAIDA 오토모티브 포럼(KAIDA Automotive Forum)'을 개최했다. KAIDA 오토모티브 포럼의 주제는 '디젤 자동차의 미래(The Future of Diesel)'였다.
당시 KAIST 배충식 교수는 디젤의 전망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현재 디젤 엔진이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기술적 문제를 정의하고 디젤이 수송용 에너지원으로서 향후 전망과 미래 친환경 디젤 엔진을 위한 신기술을 소개하고자 한다”며 “디젤을 이용한 엔진 기술은 여전히 수송 분야 에너지 기술 중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 기술이며 고효율/저배기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유망한 친환경 기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충식 교수의 말과는 다르게 디젤의 전망은 밝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 메이커들도 디젤 게이트로 생긴 폭스바겐 공백을 파고들며 점유율 높이기에 나섰다. 포드 자동차 등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은 고출력 자동차까지 한국 시장에 들여오며 반전 기회를 잡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폭스바겐과 아우디 등이 빠진 자리에서 확실하게 입지를 굳힌다면 까다로운 한국 시장 공략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노후 경유차에 대한 압박도 가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5일 낡은 경유차를 새 차로 교체하는 사람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노후 경유차 폐차 지원 제도'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미세먼지 발생의 주범으로 찍힌 노후 경유차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관련 대책을 발표한 지 5개월여 만에 취해지는 후속 조치다.
이에 따라 낡은 경유차를 말소등록하고 신차를 구입하는 소비자는 개별소비세(개소세)나 취득세를 감면받는다. 내년 6월 30일까지 새 승용차를 사는 사람은 개소세의 70%, 최대 100만 원을 감면받는다. 여기에 교육세(30만 원)와 부가가치세(13만 원)를 더하면 혜택은 최대 143만 원까지 늘어난다. 개소세가 부과되지 않는 화물·승합차는 내년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취득세의 50%, 100만 원 한도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추가 할인 혜택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차종별로 30만∼120만 원을 추가로 깎아 준다. 르노삼성자동차와 한국GM은 개소세 잔여분 30%를 추가로 할인해 주기로 했고, 쌍용자동차도 주요 차종에 대해 50만 원을 추가로 할인해 준다.
돌풍의 주인공부터 국내법까지 디젤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말 그대로 가솔린 엔진의 역습이 시작 되는 모양새다.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