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윤복희의 미니스커트& 빨갱이& 사탄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6.12.02 07: 15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가수 윤복희가 귀국할 때 미니스커트를 입고 비행기 트랩에서 내렸다는 얘기가 한때 회자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신세계가 대역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혀 마치 기록영상인 것처럼 연출한 기업이미지 CF에서 비롯된 헛소문이다.
사실 윤복희는 1967년 1월 6일 미국으로부터 귀국할 때 미니스커트를 가져왔고, 몇 개월 뒤 열린 패션쇼에서 이를 입고 런웨이에 섰으며, 앨범 재킷에 그것을 입은 사진을 실어 우리나라에 미니스커트를 전파했다.
미니스커트는 1966년 영국의 디자이너 매리 퀀트가 발표한 뒤 여성해방의 표상이 됐다. 이를 받아들인 초창기에 박정희 정부는 풍기문란을 이유로 벌금형 대상 경범죄로 규정했다.

해외진출과 미니스커트 그리고 사생활로 인해 윤복희는 대중에게 여성해방의 선두에 선 신여성의 이미지로 소비됐다. 폐쇄적이던 당시 윤복희는 유부녀인 상황에서 남진과의 열애설 스캔들(추문) 파문과 이혼 ‘파혼’ 등으로 기성세대의 눈엔 문란하게 비쳤지만 젊은이들 특히 여자들에겐 규정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즐기고 사랑하는 파이오니어로 떠받들어졌다.
만 70살의 윤복희가 요즘 손자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정적인 이슈로 화제다.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에 게재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 빨갱이들이 날뛰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주소서”라는 글이 발단이다.
일부 누리꾼이 ‘빨갱이’ ‘사탄의 세력’ 등의 단어가 촛불집회 참가자들을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며 논란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윤복희는 글을 삭제했지만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의혹과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윤복희는 각 매체를 통해 해 “편을 가르는 건 사탄이 하는 일이다. 이 편, 저 편 가르는 일 없이 다 같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자는 취지에서 올린 글이다. 나는 촛불이라는 단어 자체를 언급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암울했던 박정희-전두환 군부독재 시절 경찰은 지나가는 여성을 붙잡아 자를 허벅지에 대곤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재 벌금을 부과하는 성추행을 자랑스럽게 ‘공무집행’했다. 거리 곳곳에선 경찰이 죄도 없는 청년을 붙잡아 그의 긴 머리를 마구 자르는 인권유린이 당연한 듯 횡행했다.
그때 자유와 여성해방의 아이콘이었던 윤복희가 이제 삽시간에 인권과 인격 더 나아가 국격마저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꼰대’가 돼버린 분위기다.
해명은 오해를 풀 수 있는 확실한 팩트(사실)와 트루쓰(진실)가 뒷받침될 때 그 기능을 완성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궁색한 변명이 되고, 그건 또 다른 옹색한 핑계를 낳은 뒤, 치사한 구실의 반복으로 이어짐으로써 허언증과 자기망상증의 양치기소년의 말로를 맞을 수밖에 없다.
그녀의 설명이 대중에게 쉽게 해명으로 와 닿지 못하는 이유는 ‘빨갱이’와 ‘사탄의 세력’이란 단어 때문이다. 윤복희가 안타까워하는 이 시국과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라 그렇다.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가 빚어질 수 있었던 환경에는 이승만 시절부터 이어진 맹목적 집권세력과 그 추종자들의 ‘보수 대 빨갱이’라는 이분법적 편 가르기의 프로파간다와 반상이라는 시대착오적 망령이 자리 잡고 있음을 제대로 된 사관을 지닌 이들은 다 안다.
스스로 ‘나라의 아버지’라 칭하며 국민 위에 군림했던 이승만은 지지기반을 탄탄히 다지기 위해 부유하고 행정과 사법의 경험이 풍부한 친일 매국노들을 다수 요직에 배치하고 특혜를 줬다. 친일 매국노들을 처벌하고자 하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비롯해 그들을 지지하는 애국자들 다수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움으로써 종신집권의 사탄 같은 야욕을 불태운 것 역시 각종 사료가 증명한다.
그 행태가 박정희로 이어졌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커넥션으로 연계된 것 역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다수가 ‘빨갱이’라고 얘기하는 대상은 북한의 세습독재 통치자와 그 추종자들이지 수많은 애먼 북한 주민들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남북이산가족찾기 등의 휴머니즘적 운동을 벌이고 있고, 구호물자를 보내는 것이며, 북한에 산업적 기술지원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통일은 대박’이란 대통령의 말은 우리가 그토록 부르대던 평화통일이 아니라 흡수통일일 것이다.
윤복희의 해명을 믿자. 애국심에서 비롯된 ‘기도’일 따름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뜻을 거스르면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가는 마녀사냥은 이제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겐 안 통한다. 광화문에 나온 수백만 명의 국민들 중 집권여당과 박근혜 후보(대선 당시)에게 투표한 이들도 상당수라는 게 그 증거다. ‘빨갱이’란 말 자체가 구시대적일 뿐만 아니라 다분히 정치적, 집단이기주의적 꼼수에 근거한다는 증거다.
사탄의 세력 역시 부적절한 표현이다. 기독교가 신도 수가 압도적이고 세계의 헤게모니를 쥔 것은 맞지만, 자유민주주의공화국엔 엄연히 종교의 자유가 존중되고, 그래서 불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가 공인돼있으며, 토테미즘이나 샤머니즘도 그 값어치가 재평가된 게 현대다.
만약 세상의 모든 성향과 이념과 취향을 천사와 사탄의 이분법적 구조로 나눈다면 그 역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아귀 야마 아수라 등은 사탄 하데스 루시퍼 등으로 대체돼야 할 것이다.
윤복희의 ‘편 가르는 이는 사탄’ 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상당수가 사탄이다. 특히 정치인부터 기업인과 공무원은 그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선 사람은 모두 사탄이란 이론이다.
‘억울한 분들의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문장 역시 수년째 화제인 유체이탈화법처럼 비친다. 전체 문장의 흐름에 따르면 빨갱이와 사탄 때문에 억울한 사람이란 맥락이 읽힌다.
해명은 오해를 바로잡고 논란을 잠재우기 위함이 그 목적이다. 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구하는 수단은 기독교식 기도만 있는 게 아니라 예불 참선 오체투지 108배도 있고, 토론도 있다. 종교 사상 이념 주장 주입식교육 등에서의 일방통행식 아집이 항상 문제다. 기독교와 불교의 지도자가 화합하고 협력하는 우리나라인데./osensta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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