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뮤직] 정승환 ‘이 바보야’, 상실의 시대의 발라드
OSEN 박현민 기자
발행 2016.11.29 14: 27

[OSEN=유진모의 취중한담] 지난해 초 SBS ‘K팝스타 시즌4’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정승환의 데뷔앨범의 첫 싱글 ‘이 바보야’가 8개 차트를 석권하며 발라드계의 판도를 바꿀 듯 크게 요동치고 있다.
‘K팝스타4’ 방송 때부터 정승환의 가능성이 세 심사위원들의 입술과 침을 통해 익히 설파됐지만 이렇게 현실화될 줄은 그 누구도 쉽게 점치지 못했을 것이다. ‘K팝스타’가 배출한 가수 중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례는 악동뮤지션이 최고인 데다 안테나뮤직은 YG엔터테인먼트나 JYP엔터테인먼트에 비해 실적이 미미했기 때문에 그 의의가 각별하다.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이 바보야’는 딱히 음악적으로 엄청난 완성도를 지녔거나, 전혀 새로운 형식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그냥 1980년대 변진섭 최호섭 등에 의해 유행했던 ‘방배동계 팝발라드’의 분위기나 그 이후의 신승훈 등이 추구한 발라드의 구성을 답습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이런 정통(?) 발라드가 흔치 않아서 변별성과 변별력을 갖춘 셈이다.

‘K팝스타6’ 1~2회를 보면 그 답이 있다. 거의 모든 여가수들은 소울이나 R&B를 추구한다. 성유진은 ‘가요+이지리스닝+록’의 한국적 발라드의 선두주자 이선희의 ‘그 중에 그대를 만나’조차 R&B로 불렀다. 훈제이는 정훈희의 ‘꽃밭에서’를 힙합으로 바꿨다.
마이클 잭슨의 전성기만 하더라도 랩은 비제도권의 언더그라운드용 콘텐츠였고, 고집스런 평론가들 사이에선 음악의 장르로도 인정받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주류 중에서도 선두권이다. 록이건 애덜트&컨템퍼러리(이지리스닝, 발라드)건 모두 R&B 아니면 힙합 스타일로 표현되는 세상이다.
우리 민족도 오래전부터 음악과 유흥을 즐겼지만 관절을 꺾는 춤보다는 어깨를 덩실덩실 움직이는 ‘흥’의 정서에 익숙하고, 누가 뭐래도 타령조의 한의 정서에 깊게 빠져드는 속성을 지녔다. 유독 발라드를 좋아하는 이유다. 백의민족답게 단순명료한 걸 선호하기도 한다.
‘이 바보야’는 피아노와 정승환의 체이스(둘 이상의 교차 독주) 혹은 코러스(합주 혹은 후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편곡을 취했다. 인트로에서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피아노 솔로는 안정감 속에서 슬픔의 서막 같은 갈등을 예고한다. 이에 ‘콜&리스펀스’로 화답하듯 이어지는 정승환의 보컬은 크레센도로 벌어지며 피아노 기타 드럼 스트링 등의 오리지널 인스트러먼트들과 어우러지는데 다른 악기는 최대한 톤을 낮추고, 피아노만 보컬보다 한 단계 밑까지 올리는 믹스다운으로 처리했다.
아우트로는 기타다. 피아노가 감정의 고조의 시동이었다면 기타는 격정의 마무리요 여운의 메아리다.
뭣보다 이 곡의 매력은 정승환의 보컬이다. 이미 그의 음색은 차별화를 인정받았고, 창법과 표현력은 기성가수와의 변별성을 입증했다. 딕션(음을 정확히 찍기)과 벤딩(음 끌어올리기)의 정중앙을 정확히 지키는 그의 소화력은 아마추어리즘을 견지한 프로페셔널의 궁극을 추구해서 감동을 배가시킨다. 보조보컬을 배제한 자신감의 배경이다.
믹싱과정에서 정승환의 보컬엔 그 흔한 에코나 딜레이 등의 이퀄라이저조차 쓰지 않고 오로지 그 톤에 승부수를 띄웠으며, 유희열이 쓴 가사는 흔한 사랑타령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서도 ‘왜 또 옷은 춥게 얇게 입었어’라는 단 한 줄로 청자의 가슴을 들쑤셔 파낸다.
뮤직비디오 속 정승환의 연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 꺼풀 없는 눈두덩에 수수한 셔츠와 니트 그리고 외투의 차림새는 그냥 가사 대로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자책하는 스무 살 평범한 남자다. 소주 따르는 소리와 탁자의 타격음 등 소음조차 음향효과로 활용한 믹스다운도 훌륭했다.
게다가 초겨울이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은 상실의 시대에서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 바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 osenstar@osen.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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