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서는 1군 무대에 엄청난 긴장감이 몰려왔다. 돔구장이라는 낯선 환경은 이건욱의 어깨를 더 짓눌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포수 미트만 보였다. 다른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난 9월 1일이었다. 넥센과 SK의 경기가 열린 고척스카이돔에는 생애 첫 1군 무대를 경험하는 투수가 큰 화제를 모았다. SK 팀 내 투수 최고 유망주인 이건욱(21)이었다. 성적은 좋지 않았다. ⅔이닝 동안 안타 2개를 맞고 2실점했다. 수비가 도와줬다면 좀 더 무난하게 1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수비마저도 말썽을 부려 결국 실점으로 이어졌다. 이건욱은 당시 등판에 대해 “너무 긴장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정도였다”며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단 1경기, 4타자를 상대했다. 이건욱의 2016년 1군 등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곧바로 교육리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그 1경기가 가져다 준 효과는 적지 않다. 이건욱은 그 1경기를 잊지 못한다. 더 뚜렷한 목표를 세우는 계기가 됐고, 그 목표를 향해 맹렬히 전진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2군에 머물지 않겠다는 각오도 엄청나다. 어쩌면 잠자고 있던 ‘에이스’의 자존심을 깨운 소중한 경기였다.
동산고 시절 고교 최정상급 투수 중 하나였던 이건욱은 2014년 SK의 1차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프로는 올 시즌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입단하자마자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2015년 막판이 되어서야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퓨처스리그에서는 들쭉날쭉했다. 23경기에서 3승8패 평균자책점 7.54에 그쳤다.
구위 자체는 퓨처스리그 관계자들이 호평할 정도로 뛰어났다. 김경기 전 2군 감독은 “던지는 것을 보니 왜 1차 지명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겠더라. 공이 들어오는 라인이 아주 좋고 슬라이더도 괜찮다. 제대로 제구만 되면 2군 타자들이 칠 만한 공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그런 이건욱이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것은 역시 제구 때문이었다. 야구를 시작한 이후 가장 제구가 흔들렸다. 스스로도 ‘내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 시기였다.
이건욱은 “내 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흔들렸다. 한 번 좋았을 때 팍 치고 올라갔어야 했는데 굴곡이 심했다. 결국 거기에서 멈췄다”라고 올 시즌을 돌아봤다. 올스타 브레이크를 전후해 가장 좋은 컨디션을 뽐냈던 이건욱이지만 벽을 뚫는 데는 실패했던 셈이다. 이건욱은 “스트라이크 넣기 바빴다. 스스로에게 여유가 없었고, 시야도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멀리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라고 입술을 깨문다. 자신에게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교육리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운 이건욱은 주저앉기보다는 앞을 향하고 있었다. 오히려 “지금 빨리 시즌이 시작됐으면 좋겠다”라고 미소 짓는다. 그만큼 누구보다 간절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팀의 기대치는 여전히 크다. 최상덕 투수코치는 “에이스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다. 선발 로테이션 진입 후보로 볼 수 있다”며 이건욱이 가지고 있는 그릇에 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서서히 가고시마 유망주 캠프를 마무리하고 있는 이건욱은 “올해 안 됐던 것을 생각하면서 보완에 전념하고 있다. 꾸준히 연습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맞아 가면서 크는 것 아니겠나”라면서 “제구 하나만 신경 쓰고 그것 하나만 파고들려고 생각 중이다. 아무리 볼이 좋아도 타자들이 안 치면 볼넷이다. 다 괜찮다고 하는데 생각한대로 볼이 들어갈 수 있는 만큼의 제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팔꿈치 부상 이후 구속은 조금 떨어졌다. 이건욱은 “아직도 한창 좋을 때보다는 1~2㎞ 정도가 안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몸에 문제는 완벽히 사라진 만큼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이건욱은 “한 해 공부를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 상태가 너무 좋다. 지금 좋으면 안 되는 데 고민이다”라고 웃으면서 “하나하나 던질 때마다 집중하고 던지고 있다. 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만큼 잘해야 한다”며 모든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겠노라 다짐했다. 3년간 상했던 자신감을 찾는 2017년이 될 수 있을지, 모든 구단 관계자들이 이건욱의 어깨에 주목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