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토마' 이병규(42)가 정든 LG 유니폼을 벗게 됐다. 이병규는 25일 오후 잠실구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LG 유니폼을 입고 뛴 잠실구장과 작별이었다.
20년 프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자리에 그는 노타이 차림에 검정색 외투를 입고 나타났다. 그는 잠실구장 기자실을 향하며 "좋게 보이려고 헤어숍을 다녀왔다"고 웃었지만, 취재진 앞에 서자 담담한 심경으로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공교롭게 하루 전 11월 24일이 그의 음력 생일이었다. 이병규는 "어제 생일이라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은퇴 결정을 밝히자 아이들이 서운하고 슬퍼하고. 아내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담담하지만 명쾌하게 말을 이어가던 이병규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순간이 있었다. 지난 10월 8일 정규시즌 최종전, 잠실구장에서 대타로 들어섰을 때 심정을 묻는 질문을 받고서였다.
한참 생각에 잠긴 그는 "솔직하게 말하면, 마지막 타석일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냥, '앞으로 잠실구장에 설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복잡해지면 멍해지는 게 있더라. 그날 가족들이 잠실구장에 와서 지켜보는데,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고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병규는 올 시즌 내내 2군에 머물렀다. '리빌딩', '세대교체'에 밀려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는 묵묵히 기다렸다고 한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묻자 이병규는 "잠실구장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여기 와서 경기 하고 싶어서 열심히 버텼다"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봤다.
'선수 생활을 더 한다면 어떤 것을 이루고 싶었나'라는 질문에도 그의 솔직한 심정이 드러났다. 어떤 기록, 우승이 아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잠실구장'이었다.
이병규는 잠실구장 기자실 창문 너머로 그라운드를 한번 쳐다보고는 "단지 여기서, 잠실구장에서 뛰는 것"이라며 "여기서 뛰면서 마무리를 잘 하고 싶었다.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정말 열심히 뛰겠다는 생각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병규는 잠실구장에서 많은 기록을 세웠고, LG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2013년 7월10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NC전에서는 10연타석 안타 신기록을 작성했다. 지금도 KBO리그 최다 기록이다.
2014년 5월 6일, 잠실 한화전에서 상대 투수 윤규진을 상대로 통산 2000안타를 달성했다.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에 이은 KBO 역대 4번째 기록이자, 최소 경기(1653경기)만에 달성한 2000안타 기록이었다.
멀리는 1999년 9월 30일 잠실 롯데전에서 시즌 30홈런을 쏘아올리며 역대 5번째 '30홈런-30도루'를 달성했다.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는 타자로는 최초 기록이었다. 지금까지 '30-30'에 성공한 잠실구장 홈팀 선수는 이병규가 유일하다.
지난 10월 8일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LG팬들은 이병규의 응원가를 부르며 연호했다. 이병규는 "지금까지 팬들의 함성 중 제일 큰 거 같더라. 저 함성을 또 들을 수 있을까. 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한 심경을 드러냈다.
이병규는 여전히 후배들과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했다. 질의 응답을 마치고 핸드폰에 준비해 온 메시지를 읽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글귀 중 한 대목이다.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결심한 게 있었다. 후배들에게 밀리면 무조건 옷 벗자. 창피하지 말자. 그런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지금도 말씀 드리면 (후배들에게) 안 질 자신이 있다. 그래서 더 아쉽다."
그는 '다른 팀에서 뛸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뛰고 싶다'는 마음으로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답은 LG였다고 했다. LG에서 은퇴하는 게 답이라고. 아마도 잠실구장에서 LG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선수 생활 마지막 장면이길 원했던 것 같다. 아쉬움이 남아도.
잠실구장을 바라보는 이병규의 눈빛은 여전히 많은 말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내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잠실구장에서 이병규의 은퇴식이 열릴 것이다. 그날 잠실구장에서 그는 또 무엇을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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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잠실=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